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9>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우리시대 대표 논객으로 손꼽히는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그는 ‘우리시대 읽기’를 이제 막 첫발을 뗀 새로운 출발점 그 언저리에 있다고 진단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읽기는 과거의 읽기와 명확하게 구별된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텍스트와 영상, 음향이 결합된 콘텐츠를 터치스크린을 넘겨가며 소비하면서 읽기에 관한 고민만큼은 조선시대의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필터링이 부재한 읽기, 현재성이 사라진 읽기는 오늘날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진 교수의 핵심이었다. 그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고 강조하며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과거의 뉴스 본질과 오늘날의 뉴스 본질은 같아야 한다고 착각하며 그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전했다.

편집기자라면 한번쯤 고민해 봤을, 그래서 그만큼 낡아버린 ‘뉴스 콘텐츠 생태계’. 그 속에서 우리시대 읽기의 현주소를 진 교수에게 물었다.


―최근 정치인, 연예인의 SNS, 네티즌의 댓글 등을 기반으로 자극적인 뉴스가 생성되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관한 생각은.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콘텐츠보다 표현의 자극성을 좇으니까요. 기사를 쓴다는 행위자체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 있기 때문에 클릭을 많이 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이고, 그러면 본질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당연한 것이죠.


―가능한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려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디어는 선정성을 강조한다. 이는 뉴스뿐만 아니라 읽기의 질도 떨어뜨리고 있는데 이를 당연하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웃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악은 ‘지루함’입니다. 재미없는 글을 써서 누구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콘텐츠에 있어 재미는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요소입니다. 다만 콘텐츠의 질을 떨어뜨리는 재미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지 재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죠. 재미의 요소를 적대시 하면 콘텐츠에 관한 고민, 소비에 관한 고민, 읽기에 관한 고민 그 무엇이든 해결 방법이 없다고 봐요.


―재미와 흥미를 통해 읽기를 자극하는 경우 정보의 깊이가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카드 뉴스’가 있죠. 저도 보거든요. 누구는 이를 가볍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저는 깊이가 낮다고 판단하진 않아요. 모든 정보에 관해 깊이 있는 견해를 가진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거든요. 또한 소비자에게 모든 정보에 관한 숙고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도 무리고요. 그래서 개인마다 적절한 필터링이 필요한 것이죠. 재미와 흥미를 이끄는 카드 뉴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진화된 재미를 가미한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EBS 지식채널’ 있잖아요.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쉽고 의미 있게 전달하고 있죠. 카드 뉴스는 좀 더 간단한 구조이고요. 이러한 과정이 필연적이라고 봐요. 데이터를 처리하면 정보가 되고, 정보를 조직하게 되면 지식이 되고, 지식을 더 높은 차원에서 적용하면 지혜가 되죠.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게 정보이잖아요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지 현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뉴스 콘텐츠 소비자 역시 뉴스 큐레이션 과정을 거친다. 이들이 갖는 기준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지 누가 기준점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카드 뉴스를 예로 들더라도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원한다면 그것에 머물러 있지 않겠죠. 소비자가 어떤 큐레이션의 과정을 거치든 그것은 필연적인 진행이고 불가피한 방향이죠. 불가피한 것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뉴스 시장은 오래전부터 콘텐츠 생태계에 관한 고민을 지속했다 새로운 변화 포인트가 있을까.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라인의 몰락은 당연하고 신문기사도 이미 온라인을 통해 다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모바일이나 태블릿PC를 통한 뉴스 공급, 종편도 뉴스 콘텐츠 생태계 속에서 수익성을 고민하다 내놓은 것이고요. 다른 신문사들도 작은 방송사를 운영하고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잖아요. 이미 저마다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읽기 생태계 측면에서도 긍정적 작용한다고 생각하나.
아, 개인적으로 어떤 현상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란 틀로 들이대는 것이 낯설어요. 필연적인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봐야죠. 그렇다면 해답을 찾기도 수월하겠죠. 그래서 전 널널하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렇다면 종이의 종말이 필연적이라 생각하는지.
이미 많이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죠. 그렇지만 종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넘겨주고 있는 것이죠. 뉴미디어가 등장했다고 올드미디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찾아 들어가죠. 종이도 마찬가지고요. 음…. 온라인 검색을 해 논문자료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제가 그렇게 하고 있고요. 전체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죠. 그래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면 도서 등을 구입하고요. 종이로 구성된 도서관이 가상화된다고 봐야죠. 저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요. 또한 이 검색의 힘은 엄청나요. 강력하죠. 다만 온라인의 허점, 깊이 있는 자료를 골라내야 하는 것이 중요해요. 종이의 종말… 종이는 남겠죠. 종이든 온라인이든 우리가 고민할 건 필터링이에요. 워낙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에 필터링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거든요.


―개인의 필터링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있을까.
이건 고전적인 문제인데…. 키워야죠. 책들 중에도 좋은 책, 허접한 책. 신문들 중에도 좋은 신문, 허접한 신문들이 많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도 온라인에 좋은 기사가 있으면 올리잖아요. 일독을 권합니다하고…. 옛날식으로 보면 안 된다는 거죠. 디젤아트라고 있잖아요. 디젤아트에 대해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개인 같은 경우도 글을 쓸 때 일단 글을 퍼요. 그리고 다시 쓸데없는 부분을 지우고 재배치하면서 원고를 완성하거든요. 차원이 다르죠. 개인 필터링도 같은 것이라고 봐요.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고 두 세 개 정도 훑는 수준이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데, 안타까워요. 디지털이야 말로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공간이에요. 예로 삼국지를 소설로 읽은 사람과 게임으로 하는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소설은 기승전결, 스토리텔링으로 보고 게임은 캐릭터의 능력치, 전술 등 구조적 공학적으로 보죠. 디지털 읽기로 진화를 해야 하는데 테크놀로지에 막혀 테크놀로지를 활용할지 몰라요.


―지금 현재 한국의 언론시장,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를 바라보면.
전체적으로 질이 떨어져요. 쉽게 말하면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죠.


―디지털의 장점이라면 어떤 부분을 말하는 것인지.
가장 큰 것은 검색입니다. 그런데 검색의 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있죠. 또 하나는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옛날하고 다르다는 것이죠. 옛날의 콘텐츠는 곧 텍스트였고 이 텍스트는 선형적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논리 이게 깊이가 있다는 느낌을 줘요. 이에 반해 현재는 그냥 데이터베이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레고 블록 만들 듯이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새로운 글쓰기이고 새로운 글 읽기이지요.


―혹자는 진 교수의 글쓰기, 읽기 과정이 새로운 창작, 생산적 영역이 아니다 의심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니죠. 새로운 것은 창작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이는 모더니즘 이후 상당히 보편화된 인식인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쓰고 싶은 것은 누군가가 이미 써놨고 찍고 싶은 사진은 누군가 다 찍어놨어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도 누군가가 다 그려 놨다는 거죠.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있어요. 그런데 새로운 창작을 말하는 게…. 스티븐잡스도 자신이 발명한 건 없어요. 재배치한 것이지. 그게 창조력이죠.


―우리시대 읽기의 수준은 어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읽기를 못해요. 인터넷으로 소통하다보면 문맹자가 많다는 것을 느껴요. 인터넷 이전에 기본적으로 읽기가 안 되는 것이죠. OECD 국가 중 독해능력이 꼴찌라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초등학생의 경우 하나의 정보를 두고 사이트 방문하며 검색하는 횟수가 월등히 많아요. 그만큼 다양한 정보에 접근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인터넷정보 활용은 초등학생이 우리보다 진화론적으로 앞서있어요. 다만 이것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읽기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정보의 바다에서 자신의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인어공주의 물방울처럼 해체되는 현상이 우려스럽죠. 읽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요약이에요. 그것을 자신의 지성 위에 올려놓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하는 것. 그게 진짜 읽기입니다. 이런 훈련이 필요하죠.


―과거 텍스트가 중심이던 읽기에서 이미지 읽기로 전환되면서 본질적인 읽기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
활자의 지배, 이미지의 지배 같은 접근은 소비구조 속에서 느끼는 착각이에요. 고전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읽기는 천박해보이지만 이것이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없어요. 진화론적으로 앞서있는 것이죠. 사진 한 장에 캡션으로 사건을 요약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새로운 능력입니다. 헉슬리의 말을 빌리자면 ‘10년 전 1년에 책이 10권 출판됐다. 지금은 1년에 100권의 책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인간의 지혜가 10배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론은 현재 책 한 권에 담긴 지혜의 양은 과거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는 거죠. 하지만 이것은 진보적이지 않죠(웃음). 디지털 환경이 갖춰져 누구나 글을 쓰고 읽고 한마디씩 하잖아요. 이를 두고 읽기의 겉모양이 변했기 때문에 읽기의 힘이 약해졌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백 년 전에는 글쟁이만 글을 썼으니 수준이 높았고 사진도 소수의 사진가들이 지닌 고가의 카메라 장비 탓에 질이 높았죠.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누구나 5분만에 유명해질 수 있어요. 누구나 쓰고 읽는 것. 중요하죠.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참여하는 것이 읽기의 진화라는 것인가.
귀여니의 소설이 나왔을 때 문단에서 문학적 수준을 언급하며 욕을 많이 했는데 저는 귀여니를 옹호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당신들은 등단하고도 유명해지지 못했는데 귀여는 등단도 못하고 유명해졌어요. 이것이 대중들의 읽기라는 것이죠. 너희는 너희들끼리만 쓰고 읽는 것 아니냐는 거죠. 한쪽에서 보기에는 후져 보인다 할지라도 독자들이 보기에는 귀여니는 수준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민주화, 읽기의 민주화가 된 것이죠.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통해 얻은 내용으로 정치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있어요. 물론 옛날에는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소수였고 그들의 견해는 대체로 정제되고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이다보니 수준도 높아진 것처럼 보였죠. 옛날의 대중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대중들 모두가 평론가가 됐어요. 얼마 전 아이유의 ‘제제’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제가 한마디 하니까 다른 쪽이 또 한마디 하고, 덤비고 이런 것이 좋다는 거죠. 과거 평론가 말에 아무 소리도 못하던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한 거죠. 물론 그들의 견해는 수준을 따지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견해를 낸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뉴스의 진화는 무엇일까.
지금도 진화를 위해 몸부림 치고 있잖아요. 앞서 언급한 카드 뉴스도 그렇고 다양한 뉴스의 형식 속에 재미 요소를 갖춘 콘텐츠. 이런 식으로 진화 해야죠.


―그렇다면 종이 신문들은.
종이신문들은 이보다 깊이 가야하는데….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죠. 종이 신문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적인 매체로 가야해요. 인터넷에 떠돌 수 없는 정보들. 지금도 언론사에서 프리미엄 뉴스를 특정 독자층에게 제공하고 있잖아요. 이것도 자기 나름의 진화한 방식입니다. 저는 전반적으로 신문의 질이 나빠졌다 혹은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0년 전 신문 기사를 봐도 그게 지금보다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올드 매체에 꽂힌 사람들이 지금을 말세로 보는 거죠. 저는 말세가 아닌 과제로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가하는 과제 말입니다. 사실 국내 검색창에 검색해서 좋은 정보 찾기란 쉽지 않아요. ‘맛집 좀 알려 주세요’ 같은 1인칭, 2인칭의 생활밀착형 정보일 뿐 그 이상으로 가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그것을 답답해하고 있고요. 제가 볼 때는 오타쿠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이 오타쿠인데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아마추어지만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죠. 새로운 지식층인 셈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우리시대의 읽기에 관해 종합적으로 언급하자면.
현재 우리시대는 전통적 읽기인 깊이 읽기, 전문적인 읽기 능력이 떨어져요. 해독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이유는 우리의 말과 글쓰기가 1인칭, 2인칭 친교적 기능이 강하기 때문이고요. 정서적 기능에 치중하다보니 정보적 기능이 약하죠. 그런 것들을 분간해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포맷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식해야죠. 인쇄의 문화가 아니란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 문화죠. 선형적이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것. 지금의 읽기 콘텐츠는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장치적 글쓰기이고 공학적인 읽기의 접근이 필요한 것입니다. 변화된 미디어 플랫폼에 맞는 쓰기와 읽기를 고민을 새롭게 시작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