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2> 웹툰작가 하일권

 9월 9일 부천만화진흥원에서 만난 하일권 웹툰작가는 모바일 콘텐츠 한편을 소비하는 데

15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며 소비의 스피드보다 읽기를 통한 삶의 생산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부천시 만화진흥원에서 만난 하일권 작가는 날씬한 체구에 조용한 성격이었다. 얼굴에 수줍음이 많아 보였지만 모바일 리딩에 관한 생각을 말할 때만큼은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하 작가는 읽기 문화의 감동과 여운을 통해 생산성을 말하며 이미지와 결합했을 때 텍스트의 생산력은 상상이상으로 증가한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생산성은 어떤 것인지 물어 봤다.


―최근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웹툰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화가에게 ‘텍스트 읽기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 평소 이미지를 다루던 생각이 환기되는 느낌입니다. 저에게 읽기 문화라는 것이 전혀 생뚱맞은 분야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책을 읽는다 하지 않고 본다고 그 행동을 설명하죠. 하지만 최근 독자들은 읽다와 본다의 차이점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전 유병언씨의 변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각 언론사에서 변사체 발견 현장을 이미지화 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 일간지의 그래픽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저 역시 놀랄 정도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읽기의 측면에서 시각적 만족감을 얻은 독자들이 새까만 활자를 직접 확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 봤어, 확인했어’라고 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겠죠. 이러한 독자의 읽기 태도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문산업처럼 만화 역시 종이에서 웹으로 전환하면서 진통을 격은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맞습니다. 신문산업이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모바일로 변화하는 것처럼 만화산업 역시 잡지 연재와 같은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모바일로 전환됐습니다. 최근에는 PC보다 모바일을 통해 만화를 보는 숫자가 늘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진통을 격은 세대는 아니었습니다. 웹툰을 통해 데뷔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습작 기간 만화 문법을 배우던 시기에는 종이였습니다. 저 역시 웹툰에 적응할 어느 정도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 했었죠. 이때 가장 어려웠던 건 호흡의 문제였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 문법의 패턴에서 마우스로 스크롤을 주르륵 넘기는 환경이 낯설었던 것이죠.


―웹툰은 대중의 심리와 반응에 민감한 분야다. 디바이스의 진화에 읽기 문화도 변했다고 보는지?
디바이스의 변화 과정에서 독자의 태도가 변했다고 봅니다. 기존 종이 만화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극화, 서사 등의 스토리 라인에 피로감을 보이고 웹 환경에 맞는 개그툰, 생활툰에 재미는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즉 페이지 문법에서 스크롤 문법으로 호흡이 변한 것이죠. 혹시 모바일로 웹툰 한 편을 보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 것 같으세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서 내리는 시간. 길어야 15초 정도면 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 읽기의 현주소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를 소비하는 변화된 모습이죠. 과거 만화를 보기 위해선 만화책을 보는 일정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보는 건 적어도 컴퓨터 앞으로 와 앉아야 합니다. 모바일은요 이동하면서 아무 때나 제약이 없어요.


―텍스트와 이미지 결합의 사례로 학습만화를 대표적으로 생각해보자. 텍스트 소비에 있어 이미지의 가치와 한계, 또 다른 지향점이 있을까?
학습 만화의 경우 읽기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으로 메시지의 전달 효과를 극대화 합니다. 특정 목적을 갖고 읽는 독자를 위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인데, 누구는 주어진 콘텐츠에서 텍스트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아 오히려 깊이 있는 메시지 전달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또한 일정부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미지의 가치는 도입부에 있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도록 눈길을 잡아 놓는 것이죠. 미끼라고도 할 수 있죠.

―이미지의 강조로 읽기 문화를 약화시키고 이로 인해 읽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데.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없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읽기가 피로감을 주는 이유를 다른 쪽에서 찾고 싶어요. 이 시대는 스크롤 호흡을 통한 텍스트를 직접적인 대화로 혹은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고 공유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고 다시 정보가 형성되는 모습입니다.
빨리빨리 문화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느림의 미학을 강조해도 몸속에 배인 빨리빨리 소비하는 습관이 읽기에도 나타납니다. 빨리빨리 읽어야하는 데 텍스트를 읽자니 만족할 만한 속도감이 없는 것이죠.


―웹툰작가로서 ‘우리시대의 읽기’ 혹은 읽기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읽기의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동감, 감흥, 여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각자의 삶에 생산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죠. 빠른 소비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부문입니다. 이시대의 읽기는 빨리빨리 본다는 것에 있어요. 스피드죠.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현상입니다. 이 현상 속에서는 수준 높은 생산성으로 갖추기는 힘들어요. 텍스트를 음미하는 읽기, 예를 들자면 음식을 먹기 전 맛을 기대하고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며 나름의 입맛 데로 음식을 평가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나누겠죠. 이처럼 각자의 입맛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 각자의 입맛이 있습니다. 입맛을 각자의 기준이라고 하죠. 이 기준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철학이라 할 수도 있겠죠. 독자들이 이러한 과정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