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윤규의 편집단상 -
“난 엄마 맘 모르겠어”
“그건 당연한 거란다
엄마도 엄마 맘 잘 모르는 걸^^”
엄마는 내가 엄마 맘 모르겠다고 했을 때
서운해하지 않았어
대신 자신도 자신 맘을 모르겠다고
되레 고백을 했지
그런 다음
“아들, 남의 맘 아는 것보다
내 맘부터 아는 게 먼저야
아들, 이제부턴 아들 맘 알아가는 공부 좀 해보시지”
그렇게 난
날 알아가기 공부를 시작했어
날 알아가면서
내 옆의 남도 보이기 시작했어
마치 내가 내 그림자 알아채듯 말이야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하늘과 땅으로 돌아갔어
날 낳아준 엄마가
날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말이야
날 알아가면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보이더라
유리창밖 하늘 보이듯이 선명하게
난 기다림을 싫어했어
지루하잖아
날 알기 위해 혼등(혼자 등산)을 하게 됐지
이파리가 나야 꽃도 피고
꽃 피어야 열매 맺을 수 있고
그러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
봄 되면 잎새 돋겠지
얼마 뒤 살구꽃이 필거야
그 뒤엔 살구가 주렁주렁 달릴 거고
맛있는 밥이 되려면
뜸을 반드시 들여야 하고
기다림이 설렘이 되더라
이젠 기다림이 싫지 않아
날 알아가면서 내 일도 보였어
집처럼 밥도 짓는다고 하잖아
밥처럼 옷도 짓는다고 하고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의식주는 말이야
모두 지어야 마련되는 공통점이 있더라
편집기자인 나는
제목을 매일 짓고 있어
정보와 뉴스는 예나 지금이나
시대의 빵이자 밥이었어
밥 짓는 것
옷 짓는 것
집 짓는 것
모두 복 짓는 거래
독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엄마가 해주는 밥 같은 제목 짓는 것 또한
나와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복짓기 아닐까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
엄마 같은 일이었어
중앙일보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