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31> 漢字는 必要惡인가? ‘대한민국 4연패’



“어? 이상하다. 분명히 우리나라가 우승했는 데 4연패라니, 이 헤드라인 잘못 단 것 아니야?” 이렇듯 어떤 헤드라인은 한자로 쓰지 않으면 의미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대 한민국 4連覇’라고 떡하니 헤드라인을 달아놓으 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아예 해 독 못할 외계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말과 글을 쓸 때 한자를 빼놓고는 이야기 가 안 된다. 우리 문화는 역사적으로 한자 문화 권 안에서 성장과 소멸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좋건 싫건 간에 한자는 우리말 속에 깊숙이 배어 있으며, 특히 신문 헤드라인에서는 더욱 유용하 다. 기사의 핵심을 짧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는 한자만큼 편리한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 디로 한자 헤드라인의 묘미는 ‘압축의 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자는 단 한 자만으로도 중의적 내용을 전달  만약 한 단어로 의미가 통하는 헤드라인을 달

아야 한다면 글자 하나하나마다 어의가 풍부한 한자가 ‘제격’이다. ‘아∼’나 ‘와!’ 같은 감탄사는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이지만 단순한 감탄사이지 제대로 의미를 담은 완성된 말이라고 보기는 어 렵다. 하지만 한자는 단 한 글자만으로도 수많은 뜻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편집기자들에게는 편리한 언어적 수단이다.

문민정부 때 유행했던 ‘팽(烹)’도 의미가 함축 된 한자 헤드라인이다. 이 글자는 한 유명 정치 인의 입에서 나와 유행어가 됐던 고사성어 토사 구팽(兎死狗烹)에서 따온 말이다. 이 문제의 고 사성어 끝말은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출 사태가 잇따르 자 유사한 의미 때문에 새롭게 빛을 보게 됐다. ‘팽’은 어려운 한자지만 강렬하고 의성어적인 억 양까지 갖춰 한글로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한글의 음과 한자의 뜻을 적절하게 조합시킨 헤드라인들도 인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스 포츠신문들은 독특한 한자 조합형 헤드라인으로 수용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와의 경 기를 앞두고는 ‘伊잡자’, 프랑스가 패하자 ‘佛꺼졌 다’ 등의 한자어와 우리말의 서술어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부드러운 구어체 바람을 일으켰다. ‘新 들린 바벨쇼’ ‘日낸다’ ‘미국 美워’ 등도 비슷한 예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사성어나 관용 한자의 일 부 글자만 바꾸는 조어 재료로도 한자가 그만이 다. 有備無患을 응용한 ‘有錢無罪’, 多多益善을 변 형한 ‘高高益善’ ‘巨巨益善’ 등이 그런 것들이며 ‘美스터리’ ‘喜喜Rock樂’ 등은 한자와 영어가 조 합된 형태로 편집기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헤드 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한자는 한글이면 한글, 영어면 영어에 잘 어우러져 헤드라인의 뜻 을 넓고 깊게 해주는 조커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공급자 중심의 한자 표기는 의미 전달 어려워 하지만 쓰기 편하고 뜻이 풍부하다고 해서 생경 하고 난해한 한자를 남발하면 의미 전달을 더 어렵게 만든다. 앞에서 언급한 ‘연패’라는 단어도 한글로 쓰면 의미가 혼동된다. ‘연달아서 패했다’는 말인지, ‘연달아서 우승했다’라는 말인지 분간이 안 간다.

사랑해‘乳’

또한 ‘사랑해乳’도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랑해유’의 ‘유’자를 한자 ‘乳(젖 유)’로 써 서 기교를 부렸다. 편집기자는 수용자들이 ‘乳’자 를 ‘젖 유’로 다 읽고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편집기자의 공급자 중심 적인 사고일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수용자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水盤’ 위의 명품 ‘壽石’

이 헤드라인은 수용자의 한자 실력을 과대평 가한 듯하다. ‘水盤(수반)’과 ‘壽石(수석)’이라는 한자 자체를 읽기도 어렵거니와 의미를 이해하 기도 힘들다. 물론 ‘수반’과 ‘수석’의 운율이 맞아 유려하다. 하지만 한자를 읽을 줄 알고 의미를 잘 아는 수용자들에게는 아주 운치 있는 헤드라 인이 되겠지만 읽지도 못하는 수용자들에게는 궁금증과 답답함을 유발하는 ‘외계어 헤드라인’ 이 되는 것이다. 편집기자의 일방적인 소통이라 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어려운 한자 헤 드라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고민의 산물’인지 편집기자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요즘 은 어려운 한자 헤드라인 밑에 작은 포인트로 설 명해 주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지면 성격과 기사 내용에 맞는 언어적 마술로 수용자 시선을 사로 잡고 메시지까지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언 어적 컬래버레이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yyk202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