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일반화의 함정 ② 서식(棲息)


- 야생 동식물의 생태적 특징을 변별하여 드러내 는 말이 자생(自生)과 서식(棲息)이다. 자생은 식물 이 적응할 만한 곳에 뿌리 내리는 것을 뜻한다. 서 식은 동물이 적응할 곳을 찾아 깃들이는 것을 이 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식의 풀이말에서 ‘동 물’ 대신 ‘생물’이 들어앉았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사정이 똑같다. 짐작건대, 영어 ‘habitat’(해 비탯)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세계자연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전신이 세계야생동물기금(WWF: World Wildlife Fund)이다. 그때의 보호 대상인 ‘wildlife’(야생동물)와 함께 쓰인 말이 해비탯이다. 야생동물 서식지(wildlife in its habitat),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the destruction of wildlife habitat) 등 서식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명칭 변경에서 보듯, 자연보전의 관심 영역이 넓혀지면서 ‘living things’ (organism·생물)로 쓰임새가 확장된다.

이와 달리, 자생은 야생식물의 생태, 서식은 야생동물의 생태를 확연히 구분하여 이르는 말이다. 특히 서식은 새가 나무에 깃들이는 형상에서 번 진 말이다. 영어는 어떨까. 사전을 찾으니 자생은 ‘wild grow’로 검색된다. 제 구실이 아니다. 한마디 로, 동식물을 아우르거나 동식물이 함께하는 생태 를 표현할 말이 궁했던 게다. 의미가 확장된 해비 탯에 상응하는 번역어도 필요했겠고.

일본의 경우 오래전 서식의 ‘棲’를 음(세이)이 같 은 상용한자 ‘生’으로 교체하여 생식(生息)으로 쓴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추세적으로 절묘해 보인다. 위의 고민을 일거에 날려 버린 까닭이다. 따라 하 자는 건 아니다. ‘생식’과 ‘생식하다’는 우리 사전에 도 표제어로 올라 있다. 그런 만큼 ‘야생 동식물 생 식지’, “비무장지대는 멸종위기종인 검독수리와 산양 등이 생식하는 생태의 보고다”처럼 생식(서 식·자생)을 한정하여 써 보는 것은 어땠을까. 의미 분화와 일반화는 사물의 의미 변별에 중요 한 구실을 한다. 특히 개펄·갯벌처럼 의미 변별성 을 잃게 하는 일반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일본어 ‘다치바’의 한자음 ‘입장’을 보자. 아무리 태도, 처 지, 자세, 견해, 주장, 의견 등 문맥에 맞는 말로 가 려 쓰고자 해도 이 두루뭉술한 표현이 대세다. 언 어의 편의성이랄까, 쓰면 빠져드는 ‘일반화의 함 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