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서울경제 황원종 기자

 

결국 건강검진 예약을 했다. 아니 ‘당했다’는 표 현이 더 정확하겠다. 더 이상 버티면 가정 평화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우리 떡순이 돌도 안 지났는데, 당신 잘못되면 난 어쩌라고…흑흑흑” 와이프의 메마른 눈물연 기와 “그렇게 술 퍼마시고 다니는데 몸이 멀쩡할 리 있겠어. 올핸 꼭 대장 내시경 받아봐”란 엄마 의 걱정 섞인 으름장에 둘이 빤히 쳐다보는 앞에 서 전활 걸어 예약을 당해버렸다. 나처럼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서두르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연 말까지 비어 있는 날짜가 많지 않았다. 속으론 ‘예 약이 꽉 차 버렸음 좋겠다’ 했지만, 그래도 내 몫 은 남겨뒀더라.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나 는 유독 좀 심한 편이다. 어떻게든 안 가려고 버틴 다. ‘좀 누워 있으면 괜찮아져’ ‘이정도로 무슨 병 원이야, 좀 쉬면 돼’ 몸에 어떤 이상 신호가 오더 라도 ‘잠깐 누워 있는 게 만병통치약’이란 내 신념 이 아직까지 크게 틀린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굳 이 병원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건강검진도 그렇 다. 딱히 아픈 데도 없는데 때 연례행사처럼 병원 에 가는 게 싫다. 찜질방 가운 같은 걸 걸치고, 그 사이로 가슴털이 삐져 나올까봐 연신 옷깃을 저 미는 모습이 싫다. 내시경 검사 받는다고 엉덩이 까고 누워있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절 대 잠들면 안 돼’ 다짐해보지만, 눈떠보니 회복실 에서 비몽사몽 하는 꼴도 싫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진짜 이 유가 뭘까. 워낙 켕기는 구석이 많아서 아닐까. 의사들이 하라는 것은 죽어라 안 하고, 하지 말라 는 짓만 골라서 하는 생활습관에 혹시나 ‘불의의 선고’를 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받으 러 갈 때마다 공부하지 않고 놀다 시험 치러 가는 기분이다. 기억을 되돌리면, 시험을 앞둔 1주일 은 나름 술도 끊고 공원도 돌며 벼락치기를 해본 다. 하지만 막상 시험 당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몇 수치로 가채점을 해보면 올 시험 점수도 바닥 권을 맴돈다. 유전이라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았 던 고혈압은 오늘도 쭉쭉 치고 올라간다. 주식과 코인이나 이렇게 올라가지란 푸념도 잠시, 키와 몸무게를 재며 왜 늘어야 할 것은 줄고 줄어야 할 것은 늘었는지에 대한 후회로 시무룩해진다. 상 담해주는 의사는 하나같이 술 줄이고 운동 하라 는 말만 20년째 되풀이 한다. 다양한 그래프로 수 치화된 내 몸의 성적표는 어느 것 하나 정상치에 근접한 것이 없다. 평소에 공부 좀 할 것을, 반성 의 연속이다. 

 

몸이고 마음이고 100%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 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보이거나 혹은 안 보이는 병을 숙명처 럼 안고 사는 것이 인간 아닐 까. 굳이 그걸 이 잡듯이 뒤져 서 기필코 찾아내고 말겠다 는 의욕 과잉이 문제 아닐까. 부정 해봐도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검진 고사는 치러야한다. 병원에 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 이다.

 

서울경제 황원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