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취재-편집 서로 간의 존중이 식어가던 열정을 깨웠다”

-경향신문 임지영 차장


#‘능력은 성별순이 아니다.’

제26회 한국편집상 대상(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이 산업재해 ‘노동자’의 아픔을 다뤘다면, 제27회 대상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경향신문 임지영 차장의 대상 수상작 ‘당신의 회사는 어디에 있습니까’는 국내 2246개 상장사 중 60% 이상이 여성 임원을 단 1명도 두고 있지 않다는 유리천장의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임지영 차장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취재와 편집 서로 간의 존중이 남달랐던 작업이었다”면서 “각자의 의견에 엄지를 치켜세우는 과정에서 식어가는 열정이 다시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올해의 편집 주인공인 임 차장을 만나 봤다.

 

-전국 52개 회원사에서 한해 대략 40만 개의 지면이 생산된다고 누군가 수십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최고의 지면으로 뽑혔다.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해 달라.

상은 종류를 막론하고 받고 싶고, 받으면 기쁘다. 그런데 대상은 좀 다른 것 같다. 마냥 기뻐하기엔 뭔가 중압감 같은 게 있다. 어렸을 때 선배들 시상식에 숱하게 따라다녔다. 찍사로, 꽃순이로. 연말 시상식은 특히 남달랐다. 유명 정치인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기도 했고, 얼음조각상 아래 맛있는 뷔페가 차려진, 당시 내겐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상을 받는 선배들은 또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풍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연말에 상을 받는다는 건 여전히 그런 의미다. 그래서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럴만한 지면을 만들어냈는가.’ 취재팀, 나의 데스크, 디자인팀 후배가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그저 나는 덜고 빼고 채웠을 뿐인데. 그리 겸손한 인간이 아님에도 왜 이리 한없이 겸손해지는지…. 물론 기쁘다. 그리고 영광이다.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를 기획한 송현숙 논설위원이 <신문과 방송>(10월호) 취재기에 “취재와 편집, 디자인팀의 피·땀·눈물이 배어 있는 지면”이라고 썼다. 또한 “편집과 디자인팀이 기사의 보는 맛, 읽는 맛을 살렸다. (중략) 가장 적절한 지면 구성과 친근한 제목으로 가슴에 확 와닿는 멋진 지면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대상 지면이 나오기까지 제작 과정을 얘기해 달라.

편집기를 쓰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좋은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고 쓴 기획팀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면이었다. 송현숙 선배의 의지와 열정이 편집자와 디자이너를 회의실로 불러들였고, 그렇게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기획면 편집을 많이 해봤고 해 오고 있는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다 만들어진 결과물(기사, 그래픽)을 받아들고 그들의 주문을 참고하거나,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지면을 고민하는 것. 물론 전자가 90% 이상이다.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기획은 후자였다. 

개인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창간이나 신년기획처럼 미리 언질을 받은 것도 없던 터라 회의가 달갑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더 그랬다. 어쨌든 첫 회의가 열렸고, 기획팀과 편집 데스크인 덕균 선배, 디자인팀 덕기 후배까지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댔다. 이번 팀이 좀 남달랐다던 건 존중이었다. 보통의 회의는 자기 주장이 난무하고, 결국은 취재의 요구에 맞춰가는 형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 서로의 의견에 엄지를 치켜세워주고, 의견에 의견을 얹어 보완해가는 식이었다. 그러니 식어가는 열정이 다시 타오를 수밖에. ‘잘해보고 싶다.’ 사실 이 마음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지면은 이미 예정된 거였다.

 

-신문사에도 여성 편집국장이 많지 않은데, 언론의 유리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단 다른 회사의 분위기를 알지 못하기에 언론사의 유리천장에 대해 논할 자격은 없는 것 같다. 2007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올해로 15년째 드나들고 있는데 여성 국장은 1명 있었다. 적은 숫자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오지 않겠는가. 예전엔 성비 측면에서 남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이 기획의 첫 회 문패인 ‘능력은 성별순이 아니다’처럼 언론사에서 취재든 편집이든 여자라서 남자라서 더 잘할 수 있는 건 없다. 개개인의 능력 차가 존재할 뿐이다. 

 

-제239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 소감에서 직접 밝혔듯이 명단 나열식 구성은 전혀 새롭지 않은 편집 패턴이다. 새롭지 않은 방식에서 새로운 결과를 끌어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는 없었나.

‘이류가 될지언정 아류는 되지 말자’가 나름의 인생 모토다. 어릴 때부터 딱히 잘하는 건 없는데도 남을 따라 하는 건 그렇게 싫었다. 작년에 명단 나열식 지면으로 경향신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기획팀에서도 사실 그 지면을 들고 오긴 했었다. 그래서 바로 얘기했다. 그렇게는 안 할 거라고! 근데 호기롭게 말은 뱉었는데 이미 한 면은 명단으로 채우기로 된 상황이었기에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만큼 많다’를 보여주는 측면에선 그 지면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회의는 여러 날 했지만 답은 첫날에 찾았다. %. 비율이었다. 빼곡한 명단 속에 누구라도 찾아보고 싶은 회사들의 이름이 있었고, 여성 임원이 제로인 회사가 60%가 넘었다. 제목은 절로 따라왔다. 나 홀로 무게 잡는 제목은 달 수 없었다. 여기서만큼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했다. ‘당신의 회사는 어디에 있습니까’로 낙점. 그리고 또 하나. %가 관건이었다. 60%냐 0%냐. 첨엔 여기 이 넓은 검정 부분이 몇 %다라고 보여줘야 할 거 같아서 60%로 했었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친절한데 강렬하지 않았다. 회사의 비율이 아닌 여성 임원의 비율로 접근했다. 0%. 이거였다. ‘이 회사들은 빵점이다’.

 

-미디어매체가 관련 기사를 쓰고 SNS에서도 호응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신문이 나가고 기억에 남는 후일담이 있나. 

여성 임원 하위권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에서 반응이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잘 아시겠지만 편집이 아무리 잘했더라도 편집자에게 그 기사의 피드백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내가 내 편집에 흡족했으면 그걸로 족하는 편이다. 댓글을 보긴 봤는데 경향신문도 여성 임원 제로라며 공격한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되짚어 보면 편집상이 생긴 이래 경향신문이 유독 큰 상, 작은 상 할 거 없이 많이 가져간다. 

경향 편집의 비결은 뭔가.

탄탄한 선배들이다. 내가 보고 배운 선배들, 그들의 선배들, 그 선배들의 선배들. 우리의 일은 정답이 없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물음들이 오간다. 누가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누가 가장 최선의 답을 내놨는지는 알 수 있다. 그런 과정들이 실력으로 쌓이는 거 같다. 

 

-편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편집 철학이나 ‘이것만은 안 돼! 이것만은 꼭!’하는 철칙이 있나.

기사가 별로일 때 편집은 더 고민스럽다. 포장이라도 그럴싸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과 어쨌든 내 이름 걸고 하는 일인데 기사가 별로라고 별로인 편집을 하고 싶지 않은. 이럴 때 주로 악수를 둔다. 제목도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고, 레이아웃도 길을 잃는다. 

편집은 독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이미 기사를 읽었다. 객관적일 수 없다. 편집을 해 놓고 다시 내 편집의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정보가 있는 제목인가,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인가,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인가. 레이아웃도 마찬가지다. 시각적으로 눈을 붙들 방법은 많다. 하지만 뉴스를 내포하는 그림인가. 제목을 얼마나 서포트해 주느냐를 따져보자면 역시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완벽했다 싶은 제목도 데스크들이 기가 막히게 고쳐오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내 제목의 첫 번째 독자로서 오류를 잡아낸 것이다.

철학이라고 할 거까지는 없고, 내 만족에 그치는 편집 말고 모두가 만족하는 그런 편집을 하고 싶다.

 

-평소 편집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 나만의 편집 노하우가 있다면 공개해 달라.

기사와 사진에 답이 있다. 아니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이 잘 읽히는 날은 고민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하면 70점 이상은 되는 거 같다. 나도 편집을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타지는 물론 외국 신문도 많이 보고 관련 서적도 읽고. 지금은 하지 않는다. 내가 잘해서는 당연히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라고 하기엔 핑계고,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오늘을 꾸리고 나아진 내일을 만들려고 한다. 일이든 삶이든. 

 

-수상 소감을 다시 인용하자면 ‘신문이라 가능한 걸 하자’라고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 현실은 무게 중심이 점차 온라인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의 미래와 할 일을 진단해 본다면. 

기본을 생각하면 된다. 지면 편집엔 제목도 있고, 레이아웃도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기사와 사진의 표정을 읽고 하나의 표정으로 완성하는 게 편집이다. 딱 떨어지는 편집으로 뉴스를 마주할 때의 쾌감을 온라인 뉴스에선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지면도 변해야 한다. 어제의 뉴스에 호감을 느낄 독자는 많이 없다. 새것의 매력을 신문도 가져가야 한다. 기록에 집착하는 기사를 새것으로 포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포장조차 포기한다면 그 신문은 볼거리가 없는 것을 떠나 볼품없어질 것이다. 내가 오늘 만든 신문을 내일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이 지면에서 얻을 게 있는가. 갸웃했다면 그 신문의 미래는 어둡다.

 

-지난해와 올해는 팬데믹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업무 방식에 변화가 있었나.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7월부터 간간이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일은 하되 출근하지 않는다’는 건 입사 이래 경험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하이텔, 천리안이 등장해서 채팅에 눈을 뜨던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신기해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원래 내가 꿈꾸던 재택근무의 장소는 한적한 제주 마을 어딘가의 숙소였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앞에 자리를 잡고, 철 지난 가요를 크게 튼 다음 바다 내음 맡으며 일필휘지로 레이아웃을 그리고 제목을 써 내려가는 것. 책상 위에 달달한 우도 땅콩 라떼도 한 잔 있으면 좋겠다. 현실감 제로라고? 상상으론 뭔들 못하겠나. 현실은 방구석이었지만 세수 안 한 눈곱 낀 얼굴로 경건한 지면을 마주하는 것도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근무시간 외에도 언제든 조판기를 열 수 있다는 것도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직접 조판의 시대가 된 지 오래라 손 가는 대로 아이디어를 만들 때가 있다 보니 기획 담당인 나한테는 딱이었다. 물론 근무시간 외에 일을 하는 건 매우 옳지 않다. 하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면 일이라도 충분히 기껍다. 참 이 청개구리 심보란.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고, 코로나가 종식돼도 재택근무는 없어지지 않기를 조심스레 희망해 본다.

 

-편집기자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반대로 편집기자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언제였나.

기자여서, 직함이 기자여서 후회가 된 적은 있다. 다들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기자 취급 안 하면 속상하고 기자라고 하기엔 뭔가 찝찝한. 이 모호함이 불편할 때가 있다. 여전히. 

저녁 먹을 때 내일 일을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일이 적성에 맞아서 편집을 업으로 삼은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편집기자가 안 됐다면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 것 같으신지.

카피라이터가 꿈이었다. 졸업 때가 되니 준비해 놓은 건 없고 전공을 살려 고향 언론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편집의 맛을 알게 됐다. 1년 만에 관두고 다시 언론고시에 2년 반을 매달렸다. 물론 편집기자를 뽑는 곳에만 원서를 냈다. 회사의 로고는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편집기자가 안 되지는 않았을 거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를 떨어뜨린 회사들이 후회하고 있기를 바란다.(웃음)

 

-편집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덧붙여 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대상 받아서 다 이뤘다고 하면 재수 없을 것 같고. 제목과 레이아웃이 혼연일체가 된, 단 1명도 이견을 달지 않는 완벽한 지면을 한 번쯤은 만들어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대충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니 될 말이지만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할 때도 있다. 그날은 물론 데스크께 죄송하다. 그 수많은 날들을 채찍과 당근으로 보듬어준 선배들과 후배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고맙고,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선배로, 후배로 지금처럼 함께 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