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인복 덕분에…상복도 터졌다

-동아일보  하승희 차장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신문도 마찬가지다. 지면 하나를 만들려면 온 편집국과 편집부가 필 요하다. 기사도 사진도 좋아야 하고, 레이아웃도 뒷받침해줘 야 하며, 무엇보다 적확한 제목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야 한다. 그날도 그랬다. ‘사브르 F4’라는 펜싱 남자 대표팀이 도쿄올 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그날이었다. 출근 전부터 마음을 졸여가며 경기를 지켜봤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대표 팀은 오전부터 16강, 8강, 4강까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올라갔던 것 같다. 기세등등하게 상대팀을 몰아붙여서 환호했던 기억도 있고, 또 이러다 지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마감 시간이 가까웠기에 다른 기 사 읽고 제목 달랴, 경기 지켜보랴 눈과 귀와 손이 바빴다. 곧이어 전해진 낭보, 금메달이었다. 사실 16강을 지켜보던 오전부터 금메달이면 레이아웃을 어떻게 할까 제목은 어떻게 달까, 은메달이면 또 어떻게 할까, 수백 수천 가지 조합을 생 각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늘 그렇 다. 욕심을 내고 힘을 있는 대로 주면 오히려 생각이 멈춰버린 다. 더 잘해야지, 더 잘하고 싶다 할수록 실력은 뒷걸음질 치 는 기분이다. 그날도 색다른 지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정작 떠오르는 제목은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것들뿐이었다. 

그때 나의 구세주, 우리 김남준 부장이 툭 힌트를 던져 주셨다. 내가 지면에 힘을 빡 하고 줄 때마다 우리 부장은 슬쩍 그 힘을 빼주신다. 부장 의 힌트를 받고 제목을 뽑고 정신없이 사 진을 찾았다. 다행히도 펜싱은 다중촬영 이미지가 많았고, ‘그들의 손보다 빠른 우 리의 발’이 잘 보이도록 찍힌 맞춤형 사진 을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직장 상사 때문에, 동료 때 문에 상처받는 지인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헌데 나는 그런 적 이 거의 없었다. 모두 동아일보 편집부 멋진 선후배 덕분이다. 이번엔 그 인복이 상복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간 상은 나와 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인복이 상복까지 불러들인 기 분이다. 

한 지면을 만들려면 온 편집국이 필요하듯, 이 상도 나 혼 자 받은 상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올해 1월부터 1면이라는 중책을 맡고는 어깨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 겁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선후배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이었다. 그 부담을 기 꺼이 나눠서 져주신 황준하 부장께 감사드린다. 또 지면을 짜 다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으면 기꺼이 손 내밀어 길을 알려 주시는 김남준, 박재덕 부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 부족 한 후배 예뻐해 주시고 코로나 속에도 어떻게든 술 한 잔 사 주시는 우리 선배들께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 무심한 선배인데도 잘 따 라와 주는 우리 후배들한테도 정말 고맙다. 정말이지 한분 한 분 이름을 다 쓰고 싶은 마음이다.



달고 싶다…무릎 탁 치는  가슴 탁 울릴 제목

부산일보  김동주 차장


원인 모를 무기력감에 몸도 마음도 축 처진 요즘이었다. 그 러던 중 간사인 나에게 날아온 편집기자협회의 ‘한국편집상 투표지 송부’ 문자메시지. 이번엔 어떤 작품들이 후보가 되었 을까,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열어 본 메일의 첨부파일 목록 에 언뜻 ‘부산일보’가 보였다. ‘설마, 혹시?’가 ‘헉, 내가!’가 되 었다. 무기력한 나에게 던져진 당근이면서 채찍이었다. 일할 때 아주 평온해 보인다는 주위 평이 많지만, 사실은 성 격이 매우 급한 편이다. 기사가 늦게 출고되거나 제목이 잘 나 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파닥파닥 그런 난리가 없다. 이번에 상 을 받은 지면을 편집한 날은 그나마 난리가 덜한 날이었다. ‘코로나 시대 바뀌는 결혼식 풍속’이라는 기사 주제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예전 내 결혼식의 북적북적했던 로비와 하객석을 떠올리 며, 거리 두기 때문에 썰렁해진 결혼식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하객이 중계 영상으 로 결혼식을 지켜본다는 기사 내용에서 ‘아, 사회자 멘트를 고 쳐 보자’ 싶었다.

이 제목으로 이미 신문사 식구들의 칭찬을 넘치게 받았다. 특히 맞은편 자리 1면 편집 선배님이 “아침에 우리 딸이 신문 보고, 3면 제목 재밌다고 하더라” 전해주신 말이 참 좋았다. 독자를 향한 ‘편집’이 응답을 받았으니 말이다.

8년 만이다. 한국편집상은 이번이 두 번째다. 나에게 한국편집상은 찬장 높은 곳에 놓인 달콤한 쿠 키 같았다. 까치발을 들고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데 늘 손마디 하나 쯤 모자란 기분이었다. ‘상 복’이 그 모자 란 실력만큼을 채워 준 것 같다.

수상 소감을 써야 한다니, 가장 먼저 떠 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쌍둥이를 육아하면서 직장 생활을 무사히 해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공이다. 아이들이 12살이 된 지금까지 직장맘들이 공감할 만한 위기 들을 수없이 겪었고 또 겪고 있다. 아이가 아프니 데리고 가 라는 전화, 갑자기 아이들이 등교할 수 없게 되는 상황, 엄마 회사 가지 말라 통곡하는 아이. 내 새끼들 마음 아프게까지 하면서 일해야 하나 흔들릴 때마다 잡아준 건 엄마였다. “애 들은 금방 큰다, 자기 일을 해야 보람 있다, 힘 닿는 데까지 도 와 주겠다.” 딸 여섯을 키우고 손주까지 키우는 엄마를 생각 하면 늘 울컥한다.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좋은 제목 좋 은 지면도 여러 사람의 손길이 만들어낸다. “잘한다, 좋다” 기 운 올려주는 칭찬, “그건 아니지 않나” 뼈 때리는 충고, “이렇 게 하면 어떨까” 길 밝혀주는 조언. 편집국과 편집부 식구들 모두의 관심과 연륜이 차근차근 쌓여 이 상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고맙습니다.

‘종이신문이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까’라는 물음이 던져 진 현실에, 종이신문 편집기자로서 암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 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고 싶다. 무 릎 탁 치는 제목과 가슴 탁 울리는 제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