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몰입하기 힘든 올림픽이 시작되다

 

# 우여곡절 끝의 올림픽이었다. 일본은 2016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난 뒤 일본내 여론이 뜨거워졌다. 올림픽으로 패전(敗戰)에서 일어섰듯 지진과 경제부진에서도 일어서자는 구호가 민심을 움직였다. 그 결과가 2020년 올림픽 유치였다. 하필 코로나가 덮쳤고 대회는 한 해 미뤄져 일본 국민 80%가 반대하는 가운데 개막을 강행했다.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다. 관중석은 텅 비었다. 마스크로 꽁꽁 싸맨 각국의 선수와 관계자 9만명이 이 나라에 입국했다. 무언극(無言劇)을 연상시키는 개막식, '적막의 올림픽'이 시작됐다. 

신문들은 데면데면했다. 개막 나흘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도쿄행을 포기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로 그렸다는 뉴스가 나오자, 일부 대선후보들은 올림픽 보이콧을 외쳤다. 거기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듯한 해프닝도 있었다. 선수촌 외벽에 대한체육회가 내건 현수막 시비였다. '이순신 장군 12척'을 언급한 글귀에 일본이 발끈했다. 도쿄올림픽을 '왜란' 수준으로 대하는 것이냐. 이런 분위기들이 이어진 가운데 개막한 대회이니, 신문 또한 이 대회에 '몰입'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올림픽은 신문편집의 치열한 게임

 

#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는 월드컵과 올림픽은 신문편집이 격돌하는 마당이기도 하다, 그간 기량을 갈고닦은 선수들의 비장한 도전장(場)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신문 편집기자들의 치열하고 노련한 게임의 승부처이기도 하다. 각 신문사의 편집 ‘선수’들이 혜성같이 등장한다. 대중의 영혼을 흔들고 관객의 심령에 파고드는 헤드라인과 비주얼로 인간 승리와 패배의 스토리를 아로새겨 각인한다. 

올림픽이 끝나면 메인스타디움에서 영웅이 탄생하듯 그와 함께 지면에선 스타편집자가 화려하게 태어난다. 하루하루 승부는 비장하고 비정하다. 날마다 쾌재만 부를 수는 없기에,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분발이 된다. 뼈를 깎고 칼을 갈아 만든 비주얼과 헤드라인이 나날이 등장한다. 보름동안 편집광처럼 전의(戰意)를 불태운다.

 

 

각본없는 스포츠··· 편집과 닮았다

 

 

 

 

#  이번엔 이런 편집이 기대난(期待難)이었을까. 광(狂, 열광)과 급(及, 다다름)으로 미치기에는 너무 멀뚱한 기분의 올림픽이었다. 개막식 분위기를 보도한 7월24일의 편집들을 보라. 저마다 팔짱을 끼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기분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조용한 올림픽, 막 올랐다(중앙선데이), 코로나 ‘위로’ 올림픽(한겨레), 안 가본 올림픽, 그래도 다 함께(경향), 가장 조용한 개막식(매일경제), 팬데믹 속에도 도전은 계속된다(동아). 

이렇게 분위기를 전달했다. 이날 사람들의 기분을 전하는 카피 하나는 경향신문 3면에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쓸쓸한 개회식, ‘스포츠의 힘’을 믿을 뿐’. 그래, 스포츠는 스스로 끓어오르는 힘이 있지 않은가. 이 어색한 ‘내림픽’을 ‘올림픽’으로 바꿔줄 스토리들이 곧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리라. 

 

'33년 개근' 금빛양궁··· '불멸'의 제목을 낳다

 

 

 

 

#  첫 탄성은, 문이 열리자마자 터졌다. 기대했던 대로 양궁이 해냈다. 33년 불패행진을 과시한 여자양궁 단체전. 

9연패 신화를 쐈다, 신궁 코리아(동아일보), 넘사벽 한국양궁(서울신문), 이 금메달, 33년간 한국이 휩쓸었다(중앙일보),

지역신문 편집자들도 신났다. 광주 신궁, 안산 올림픽 2관왕(광주일보), 장하다 광주의 딸(전남일보), 17세 예천소년의 열정, 도쿄 녹였다(영남일보). 

스포츠지도 뜨거워졌다. 신공 자매들, 신화를 쏘다(스포츠경향), 오케이 금자매(스포츠동아), 신궁코리아, 역사를 꽂았다(스포츠서울). 이중에 ‘33년, 불멸을 쐈다’고 뽑은 한겨레가 묵직하고 힘이 있었다. ‘맞힌 화살 또 맞힌다, 실력주의’라고 묘사한 중앙일보, ‘셔터 세례에도 금 명중시킨 안산의 얼음 멘털’이라고 뽑은 한국일보 제목도 인상적이었다. 아주경제도 살짝 거들었다. 구체적인 호명으로. ‘고맙다, 민희.채영.산아, 폭염을 쏜 금메달’. 

이 와중에,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동메달 앞에서 좌절한 태권도 간판 이대훈의 노메달. 한국일보는 ‘태권도 종주국, 금빛이 사그라든다’고 뽑아,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펜싱 어벤져스, 하늘을 찌르다

 

 

#  28일 펜싱 어벤져스가 콕 찔렀다. 상쾌한 칼바람이 불었다.

 

편집기자들은 남자펜싱 4인이 얼싸안은 가운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동작을 주목했다. 

최강 검객들, 올림픽 2연패 찔렀다(세계일보), 펜싱 어벤져스, 하늘을 찌르다(경향신문). 

조선일보 편집자는 구본길이 단체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선수를 상대로 득점한 뒤 포효하는 장면을 유심히 봤다. 그의 함성이 터져나온 입에서 글자가 뿜어나온 듯 ‘9년을 기다린 포효’라는 헤드라인을 흐르게 한 인상적인 편집을 선보였다. 

동아일보는 연속동작이 겹친 경기 사진을 메인으로 썼다. ‘우리의 발은 그들의 손보다 빨랐다’ 이 헤드라인은, 찌르기 공격으로 달려드는 오상욱의 번개같은 기세를 언어로 포착해낸 드문 수작(秀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9일엔 유도 100킬로그램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조구함이 있었다. ‘무릎연골도 없이, 17년만의 은메달’이라고 뽑은 중앙일보의 스토리텔링이 오래 남는다. 

 

 

도마에 오른 감칠맛 나는 제목들

 

 

#  8월이 열리자, 스토리가 하나 솟아올랐다. 1996년 체조 은메달 감격을 안긴 여홍철(경희대 교수)의 열아홉 살 딸 여서정이 1일 여자체조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땄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녀의 개가에 편집기자들은 살짝 흥분했다. 올림픽 도마, 부녀의 전설(중앙일보), ‘‘아빠, 나도 메달 땄어요’’(한국일보), 아빠, 나도 날았어(조선일보), 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활용한 제목, 아빠처럼 날아 ‘별’이 됐어요(경향신문), 그 아버지에 그 딸(서울신문). 이런 제목들이 감칠맛나게 다가왔다.

 

2일은 도마의 신이 탄생한 날이었다. 올림픽 체조에서 ‘도마의 신’으로 불린 양학선의 뒤를 이어 신재환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뜀틀황제로 날다’(동아일보) 도마 결선에서 난도 6.0의 요네쿠라 기술을 선보인 신재환의 연속동작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철심 박힌 허리로, 도쿄서 날아올랐다’고 인간스토리를 가미한 조선일보의 편집도 눈에 띄었다. 

3일은 남자다이빙 우하람의 날이었다. 한국 올림픽 최고성적인 4위에 오른 그의 담대하고 화려한 연기는 눈길을 끌었다. ‘다이빙 한국 이것이 역사다’(아주경제), 그가 뛰어내릴수록 기록은 올라갔다(조선일보)

 

 

4등 드라마에 여름밤이 짧았다

 

 

 

 

 

#  올림픽 열광의 마무리는 여자배구였다. 입을 하염없이 크게 벌린 김연경의 환호와 함성은 오랜만에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8강전에서 세계4위 터키에 역전승을 거두면서 9년만에 4강에 올라 메달권에 다가간 여자배구는 , 이어 맞붙은 브라질과 세르비아의 강습에 속수무책인 채 4위에 만족해야 했다. 승부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지만, 이 게임들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김연경은 많은 ‘맹렬편집’들을 생산하게 했다. 

기적도 반복되면 실력입니다(경향신문), 시작도 끝도 김연경, 우리 모두 같은 꿈을 꾸게 했다(조선일보), 4등 드라마에 여름밤이 짧았다(중앙일보), 원팀은 간절했다ÿ그래서 강했다(서울신문). 감성이 뿜뿜했다. 스포츠신문도 거품을 물었다. 갓연경 라스트댄스는 골드를 향한다(일간스포츠), 9년만의 4강ÿ갓연경이 갓연경했다(스포츠서울) 기적을 지휘하는 캡틴 김연경의 깡(스포츠동아) 아직 5천만의 응원이 남아있어요, 대한민국을 들썩인 150분 아침드라마(스포츠경향)

이번 올림픽은 안산으로 시작해 김연경으로 끝났다. 과연 끝까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던 게임은 다행히도 큰 탈 없이 막을 내렸다. 우리로선 유쾌하기만 한 대회는 아니었다. 한국은 45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16위였다. 일본은 종합3위였다. 

수영 황선우나 탁구 신유빈같은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고, 선수들의 투혼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했지만, 도쿄와의 ‘거리감’은 온전히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약한 게 아니라 올림픽이 무거운 것

 

 

 

#  이번 올림픽 편집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체조 여제로 불리는 24세 미국선수 시몬 바일스가 경기의 중압감 때문에 경기를 기권하다가 마지막 평균대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장면을 부각시킨 편집이었다. 조선일보는 ‘나약한 게 아니라 올림픽이 무거운 겁니다’라는 카피로, 이 ‘기권’을 음미하게 했다. 

성적이 기대에 못미치기도 했고, 뭔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경기들에 대해 국민들의 응원을 담으려는 편집도 눈에 띄었다. 

‘즐!림픽-선수도 국민도 메달보다 유쾌한 도전 즐겼다’(한국일보) ‘벅찬 기쁨도 멋진 올림픽이지만, 격한 오열도 값진 올림픽입니다’(아주경제)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세월도, 영웅의 무게도’(서울신문) ‘해보자는 도전은 멋졌다’(경향신문) ‘그대들 모두가 주인공, 고맙다 즐겼다’(한겨레)와 같은 위로의 메시지가 자주 등장했다. 

대한민국 신문 편집은 어느 정도였을까. 메달은 땄을까. 4일 서울신문은 독특한 박스기사 하나를 실었다. ‘피 땀 눈물엔 차별없다ÿ4위, 그대들 모두 챔피언’이란 제목의 기사다. 노메달이지만 뜨겁게 싸운 선수들을 위한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기사에는 ‘‘선수들의 간절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끝까지 온힘을 다한 선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는 멘트도 들어있다. 이 말을 한국의 편집기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올림픽 편집, 메달권이었던가

 

그들은 어려운 여건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폭염과 싸워가며 올림픽의 ‘기분’을 제대로 포착하여 지면에 담느라 머리를 쥐어짜며 달리고 뛰었다. 지난 올림픽들에 비하면, 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최악조건들 속에서도 분투했다. 눈에 띄고 마음이 가고 울림이 남는 편집들이 있었지만, 시상대에 세워 메달을 걸어주기엔 망설여지는 점도 있다. 스포츠는 비정하다. 올림픽에는 격려상이 없다. 자기반성과 또다른 분발과 재도전만이 있을 뿐이다. 편집 또한 프로의 세계이니만큼 비슷하지 않을까.

왜 편집흥행이 제대로 불붙지 못했을까. 우선 선수의 기량과 감정과 정신에 대한 감정이입, 게임에 대한 몰입, 스포츠가 지닌 과학과 인간승리를 그리는 생생한 스토리가 이전의 올림픽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 감이 있다. 

물론 상황과 조건들은 최악이었다. 폭염과 코로나의 지속, 독자의 주목도 저하, 편집의 위상 하락, 그리고 스포츠편집만이 지니는 호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의 위축.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대략 난감한 올림픽’이니 면피만 해도 본전이라는 의식이 있었을까. 그렇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비록 영예로운 단상에까진 오르진 못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노메달의 그늘 속에서 희망과 절망을 곱씹는 선수들처럼, 편집에도 치열한 자기반성은 필요하다. 올림픽 편집도 금은동의 뜨거운 각축이어야 한다.

수고했습니다. 영원한 ‘갓편집자’. ‘편집 어벤저스’들이여. 다음 올림픽에서의 빛나는 메달을 기대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

                                                    아주경제 편집총괄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