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식을 치르나 봅니다. 이번 달에만 벌써 청첩장을 석 장이나 받았네요. 그 중 한 명인 B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흔 줄이 다 되어 장가를 갔습니다. 실은 피앙세와 2년 전부터 살림을 합쳐서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신부는 미국 유학 중 만난 친구라고 했습니다. 저만 느끼는 건줄 모르겠으나 결혼한다는 사람들은 어찌 그리 인상이 닮은 걸까요. 결혼식장에서 본 B군과 신부도 무척 닮아 있었습니다. (물론 신부는 털북숭이 B군과 달리 무척 미인이었습니다.)


B군과

는 20년째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20년 전 저는 군대를 제대하고선 잘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입시전문학원에 들어갔었습니다. 같은 반 학생 중 친했던 이들이 ‘충정학파’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B군도 그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우악스런 부산 말투와는 달리 소녀처럼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식 내내 B군과의 추억이 떠오르더군요. 서로 진학한 대학은 달랐지만 가끔 만나면 참 반가운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강원도 폐광촌으로 여행을 갔던 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마지막 회를 보다가 B군이 눈물을 줄줄 흘리던 일, 장충체육관에서 신해철 콘서트를 함께 즐기며 황홀해 했던 일 등등. 여섯 살이나 많은 저를 살갑게 대해주던 B군이 좋았습니다. 늦장가를 가는 그를 보니 마치 제가 아들을 장가보내는 아버지처럼 뭉클하더라구요.


B군은 셀프 축가로 오소영이라는 가수의 노래 ‘소울메이트’를 신부와 함께 불렀습니다.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나 셀 수 없는 발자욱을 내며 난 무언가를 찾아 헤맸죠. 이제야 나타난 그대는 나의 소울메이트” 이런 살짝 오그라드는 노랫말로 시작합니다.

오소영은 B군이나 제가 20대 시절부터 좋아하던 가수입니다. 과거 오소영은 ‘덜 박힌 못’이라는 곡에서 ‘난 언제나 어디에서도 늘 덜 박힌 못 같은 존재였지’라고 노래했었죠.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한편으론 냉소적이던 아웃사이더들에게 그 노랫말은 꼭 자신의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더랬습니다. 식장 맨 뒤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B군과 신부가 축가 부르는 모습을 찍고 있던 저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덜 박힌 못’이 ‘소울메이트’를 찾았구먼.” 한 가수의 노래들로 인생의 한 챕터가 완성되는 그 순간이 참 묘한 감동을 주더군요.

결혼식이 끝나고 충정학파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20년전 더벅머리 소년들은 이제 아내의 등쌀에 시달리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코골이가 심해 각방을 쓴다고 했고, 누구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아내와 밥을 함께 먹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혼자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라네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 들었던 축가의 원곡을 유튜브로 찾아보았습니다. 거실에서 한참을 되풀이해 들으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와이프가 한 마디 하더라구요. “흠… 난 이런 노래 스타일 별로야. 뭔가 잔뜩 허세가 들어가 있어.” 저는 ‘아 넵넵. 나도 그렇게 생각해. ㅎㅎ’하고 재빨리 음악을 껐습니다. B군아, 아내 말을 잘 들어야 무탈하단다. 알지?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