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종이의 집>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아세요? 

박진감 넘치게 조폐국을 털어대는 범죄 드라마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가을에 나올 시즌5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제 마음 속에도 '종이의 집'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드라마 속의 종이(지폐)보다 훨씬 크지만 물건을 살 순 없는 종이로 지었단 점이겠습니다. ‘그 집'엔 방이 여러 개 있습니다. 맘에 쏙 들어오는 지면들을 담고 또 담다보니 많아졌어요. 여길 살짝 소개해달라는 낯선 부탁을 받았는데, 한 곳만 고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왕 손님을 들인 김에 문 세 개쯤은 열어도 괜찮겠지요?



한 눈에 들어오는 ‘쉬운 편집’ / 글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듯

언제나 어려운 기획기사 편집 / 잘 만든 연출사진의 힘에 감탄

동경했던 촌철살인 비유 제목 / 이렇게도 뽑을 수 있다니…

 

1. 어린이의 방<지면 1>

편집부 발령 초반, 전 잔뜩 힘을 주거나, 극도로 무덤덤한 제목 밖에는 내질 못했습니다.(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쉬운 게 좋은 거라던데, 오히려 그 쉬운 것 만드는 게 왜 그리 어려운지요. 애타는 마음으로 ‘쉬운 편집’ 사례를 쌓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말랑말랑한 게 이 기사였습니다. 첫 눈엔 “아! 귀엽다!”하는 생각이, 바로 다음엔 “아! 정말 문제겠다”라는 생각이, 퍼뜩퍼뜩 연달아 들었습니다. ‘안구 손상’ 같은 한자어로 대충 설명하는 대신, 단순한 이미지 두 개와 “어른 ‘손 높이에 있는 / 손 소독제 / 아이 눈이 위험해요”라는 직관적인 세 줄 제목으로 ‘위아래’를 구현해낸 아이디어에 감탄했습니다. 이 정도면 신문을 못 읽는 어린이, 아니,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슨 내용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2. 연출가의 방<지면 2>

기획기사 시각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화려하든, 강렬하든, 최선을 다해 ‘포장’해야 할 것 같아서요. 특히 부담스러운 건 사진이 애매할 때입니다. 과거 DB사진을 넣자니 심심하고, 통신 사진을 쓰자니 ‘그래도 본보 기획인데!’ 싶고, 삽화를 그리자니 현장감이 떨어지고… ‘미리부터 머리를 맞대면 답이 나올 것이다’ 생각에 사전회의도 해봤지만, 늘 비슷한 이야기만 맴도는 듯 했습니다.

"당신의 재활용 수고 / 60%는 / 그대로 버려진다” 이 선명한 머릿기사는 아우라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재활용 마크 모양으로 ‘확실히’ 구겨놓은 페트병들. 심지어 병들의 색깔은 아이러니하게도 친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입니다. ‘잘 만든 과감한 연출이 현장사진보다 강렬할 수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3. 시인의 방<지면 3>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향수를 좀 겪는 편입니다. 제가 편집부에 왔을 때, 대세는 이미 ‘촌철살인 비유’가 아닌, ‘온라인에서도 먹힐 쉽고 정확한’ 제목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한 선배가 “편집부에 왔으니 시집을 많이 읽어!”라고 하니 다른 분이 “언제적 얘기냐”라고 핀잔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막연히 저는 ‘그 옛적은 멋졌겠다’ 생각했죠.

이날 ‘오늘의 지면안내’를 봤을 때, 그날의 시 이야기가 생각난 건 왜일까요? 메인 제목과는 전혀 달랐지만, 전 “달 한입 베어물고.”라는 이 짧은 한 마디가 더 좋더라고요. 만일 월식 기사에 이런 제목이 달렸다면 그냥 ‘예쁘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탐사선은 정말로 달을 ‘한 입 베어 물고’ 돌아왔잖아요. 언제나 신비스러운 우주의 기사에 이런 아름다운 제목을 달다니요. 

이 분은 어쩌면 정말 시인이 아닐까요?

동아일보 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