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는 노처녀 캐릭터였다. 그의 나이 방년 스물아홉. ‘올드미스 다이어리’ 여주인공들은 몇 살이었을까. 서른, 서른하나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창인 나인데 2005년 당시엔 결혼 못한 나이 많은 여자로 그려졌고, 나 역시 스물아홉은 그런 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12년에 방영된 ‘신사의 품격’은 또 어떤가. ‘저 나이에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하면서 봤는데 이제 와 다시 보니 꽃중년 4인방은 불혹을 갓 넘긴 지금의 내 나이였다.

스무살이 되길 고대한 이후로 나이 듦은 반갑지 않은 일이 됐다. 이십대 초반엔 푸른 봄을 만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중반엔 마지노선 생각에 한 살을 얹는 게 무서웠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과 출산이란 과정을 수료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리고 두 번의 부케를 받아들면서 내 삼십대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어라 일만 한 것도 아닌데 내 삼십대는 ‘일’만 남았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지나고 보니 더. 

사십대에 들어서니 문득 문득 지난 시간들에 미련이 남는다. ‘응답하라1997’ 속 성시원처럼 HOT 오빠들을 더 열렬히 쫓아다녔어야 했는데. ‘삼순이’처럼 사랑 앞에 당찼어야 했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처럼 일 말고 즐거운 일을 찾았어야 했는데. 난 왜 화면 속 오빠들에 만족하고, 다가오는 사랑을 잡지 못했으며, 회사만 열심히 다녔을까. 

초등학교 때 ‘마지막 승부’를 보면서, 중학교 때 ‘느낌’을 보면서 캠퍼스의 낭만을 꿈꿨더랬다. 대학교에 가면 장동건, 손지창, 이정재, 김민종 같은 남자들만 가득할 줄 알았다. 물론 나는 심은하나 우희진이 되고(이런 착각을 오래 하진 않았다). 연애든 뭐든 하고픈 거 다하는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지만 내게 타임슬립의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캠퍼스로 돌아가고 싶다. 모두가 빛났던 시절이니까.

오십을 앞둔 싱글 선배에게 물었다. 나이 듦이 두렵지 않냐고. 돌아온 답은 “아니, 난 지금이 전성기야” 우문현답이었다. 어차피 나이는 먹는 거고, 뻔한 얘기지만 앞으로 남은 날들 중 오늘이 가장 젊고 예쁜 날이니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 행복의 기준은 어쩌면 이토록 간단한데 난 왜 숫자에 천착했던가. 오십, 육십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할 고민이라면 지금은 하지 말자. 칠십이 넘어도 어느 배우는 오스카를 거머쥐는데 더 큰 꿈을 꾸어도 모자란 게 마흔 즈음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내 일이 있으며, 여전히 꿈꿀 게 있다는 거. 그걸로 충분히 빛나는 시절일 것이다. 지금이란 시간은. 

경향신문 임지영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