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언제 이 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교열자로서 ‘우리말 축약과는 결이 다르지 않나’, ‘왜 물자운송 등 기존 용어와 의미 혼선이 심할까’, '쓰인 지 꽤 오랜데, 언제쯤 사전에 오르려나’ 궁금했다. 얼마 전 옛 생각에 표준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물류비, 물류비용은 표제어로 올라 있는데, 물류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말샘’에는 어림잡아 100개에 달하는 관련 어휘가 올라 있지 않는가. 물류없는 물류비라….

물류의 영어 본딧말은 ‘physical distribution’과 ‘logistics’ 두 갈래다. 굳이 갈래라 표현하는 것은 두 말의 ‘번역상 유입 순서’와 의미, 기능, 산업 파생 경로가 흡사하다는 생각에서다.

먼저는 ‘physical distribution’, 드물게는 ‘materials flow’가 일본에 유입되어 물적 유통(物的流通)으로 번역되고, 물류로 축약되면서 의미가 형성되었다. 당시 일본 사전에는 ‘수송, 배송, 보관, 포장, 유통가공, 정보처리 등을 포괄하는 말’로 정의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병참의 성격을 띤 ‘logistics’란 말이 유입되면서 물류의 기능이 설정되고 물류회사 이름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물류 관련 회사의 ‘로지스’란 상호는 로지스틱스의 줄임말이다. 종내는 물류라는 확장성 강한 축약어가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운수, 유통, 배송, 창고, 택배 등의 과정을 포괄하는 산업 명칭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금 물류라면 로지스틱스를 말한다. 로지스틱스가 번역상 먼저 유입되었다면 관련 산업이야 지금과 다를 바 없겠지만, 물류라는 말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물류가 GPS, 빅 데이터, 인공지능(AI)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지금도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륜(二輪) 물류, 우체국 물류, 항만 물류, 로봇 물류, 트랙 물류-. 예전에는 의미 혼선이 주였다면, 이제는 관련 업종에서 ‘선진성’을 덧대는 장식어로 굳어지는 듯하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의 앙금 탓인지 서로에 대한 평가에 박하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 문물 전파자를 ‘도래인’이라 했다. 한국은 근대 이후 일본의 영향을 ‘왜색’이라 한다.

교류는 문화의 본령 중 하나. 서구 문물 전래와 더불어 생성된 근대 시기의 전문용어는 일본이 그 숙주나 다름없었다. 일본 사람들의 언어적 감수성이 제대로 발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언어 축약 솜씨도 이미 숱하게 경험한 바다. 이제는 문화 영역에서만이라도 일본의 ‘선한 영향’은 일본색·일본풍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바다 건너 한류가 여전히 한류이듯이.

이 용어가 오래도록 사전에 표제어로 오르지 못한 이유가 상상하는 그런 것은 아니기를. 말이 사전에 정의된 대로 일상생활에서 풀려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전의 이름대로 언제든 ‘표준’은 되어주지 않겠는가.

세계일보 교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