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광고와 바꾼 백지선언문…훗날 역사를 바꾼 지면으로 남길


판단은 국장, 평가는 독자의 몫
촛불정국때 손도장 지면 애착
원칙보다 기자로서 신념 중시
휴일엔 애보다보면 하루 다가


아무래도 수상작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 싱가포르 선언문이라는 테마와 함께 닉슨-마오쩌둥과 레이건-고르바쵸프의 담대한 악수 사진을 함께 넣은 편집은 강렬했다. 이렇게 멋진 지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다.
먼저 졸작에 큰 상을 주신 편집기자 동료들과 협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싱가포르 '세기의 회담'을 하루 앞둔 날 국장과의 1면 편집회의는 큰 이론 없이 속전속결로 끝났어요. '마오'를 찾아간 닉슨과 '고르비'와 교감한 레이건의 사진. 그 자체로 강렬했고 냉전 종식 출발점의 상징이니까요. 마지막 1945년 냉전체제를 해체할 키를 쥔 두 당사자인 북·미 정상 간의 만남 역시 흐르는 역사의 수레바퀴인 거죠. 이 사진 둘을 공란의 선언문과 대비하는 편집 방향은 정해졌고 광고를 가감하게 털고 갈 것이냐의 문제만 남았죠.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었다는 당시 닉슨의 훗날 평가처럼 김정은과 트럼프가 담대한 내용들로 꽉 채워 넣길 바라며 '싱가포르 선언문' 한 장 통 크게 쐈습니다.
북미 정상의 담대한 악수만큼 ‘기사 없는 1면’을 만들기까지 담대한 결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편집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기사 없는 1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과거 저항으로의 백지 신문. 미래 가능성을 비워두었던 밀레니엄 신문 1면. 활자가 불필요했던 남북 두 지도자의 포옹사진. '꽂힌' 무언가가 타당하다면 설득 못할 이유는 없어요. 텍스트냐 이미지냐는 지난한 편집의 숙제고요. 다만 어디까지가 남용이고 지면 낭비이고 업자의 자기 만족인가, 경계부터 할 필요성이 있어요. 종종 편집국장과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어쨌든 최종 판단은 국장의 몫이고 평가는 오롯이 독자의 것이죠.
경향신문 1면을 2년째 잡고 있다. 남북 관련 이슈가 유독 많은 한 해였는데, 1면 편집자로서 굉장히 바쁜 한 해 였을 것 같다.
그렇습니다. 김여정을 앞세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부터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그 사이 북미 정상회담 등 '평화' 이슈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게다가 사상 최악의 폭염까지 참 쉽지 않은 한 해였어요. 뭐 특별한 고생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신문 편집쟁이로 세 번의 정권교체도 지나쳐 왔는데요. 그리고 한반도 평화 논의는 이제 시작 아닙니까. 동북아 이슈로 확장되면 더더욱 쉬운 길도 아닐테니 여전히 낙관은 이르다고 봅니다. 숱한 변곡점이 있을 내년은 새로운 1면 편집자의 고뇌로 남겨 드려야죠. 개인적으론 평화 체제가 불편한 세력이 소수가 되길 바랄 뿐이에요.
면을 맡기 전 주로 어떤 면을 담당했는지.
주로 정치·종합면 편집을 했습니다.사회, 스포츠, 문화 등 두루 맡긴 했지만, 길지는 않았어요. 경제는 젬병이고, 문화는 문외한 아니었나 모르겠네요. 이게 편식이겠죠? 편집 초년병 시절부터 '시인 데스크'를 만나 정치면을 붙들고 3,4 4,4조 운율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기억이 새롭네요.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불의는 퇴장 ‘이게 나라다’ 등 대작을 많이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과 그 이유는 뭔가.
참 쑥스럽네요. '대작' 칭호를 해주시니. 그럴 만한 지면이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어느 역사에··· '손도장'은 제겐 통증이에요. 동의 안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16년 12월 탄핵정국에서 당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보지 않아요. 광장 합류도 늦었고, 탄핵 주장도 망설였고, 탄핵소추안 표결 전략도 엉망이었죠. 광장의 분노는 그렇다 치고, 당장 국회라는 제도가 작동되었어야 할 판이었잖아요. 당시 오락가락하던 비박들 때문에 가결이 불투명한 2일 투표가 무산되자 당장 편집국 안에서도 화살을 엉뚱한 곳에 겨누더군요. 9일 표결 전날 점심때 시국을 논하던 동료와 '열사의 손도장'을 떠올렸어요. 입법권을 위임 받은 자들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오판 가능성에 압박, 즉 민심의 '경고 카드'로 소환하기로 한 거죠. 애초 이 파격적 의도는 '손도장'에 촛불 이미지를 투사하여 시각화하고자 했지만, 손도장 원본 초안이 데스크 회의에서 덜컥 채택된 겁니다. 초판이 나오자 내부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민족주의적 선동' '파격의 강박'.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비판이었기에 아팠습니다. 야근 상황에 교체 논쟁 등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에 나갔고, 다음날 아침 국회 앞에서 경향신문 '손도장'을 높이 들고 있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짝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편집기자가 떠안아야 할 책임의 무게도 다시 곱씹었습니다.
굵직한 현안들을 마주할 때 마다 경향신문 1면을 주목하게 된다. 올해 한국편집상 대상을 받은 북미회담 관련 지면이라던가 앞서 언급한 열사의 손도장을 넣은 편집이 대표적인 예다. 1면 편집자로서 ‘특급 재료’들이 상에 올랐을 때 부담감도 클 것 같다.
네, 부담이 맞습니다. 모든 편집자들처럼요. 경향이 정말로 동종 업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라면 그것만큼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손도장'의 경우는 앞서 설명했듯이 좀 예외이긴 한데요, 저는 특히 스트레이트 지면(요즘은 구분이 모호하지만)에서 어떤 '장치적 요소'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사실에 정치되지 못한 재료는 오히려 팩트의 직관성을 왜곡할 우려가 커지는데 그 예를 찾기가 어렵지 않는 거 같아요. 촛불 이후 1면이 쉽게 흥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키워야 커 보이는 강박증이 우리 안에 작동하는 건 아닌지 저부터 반성은 해보지만…
야근조 조장도 오래했다고 들었다. 더욱이 1면 편집도 오래하고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 것 같은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쌓인 야근 햇수로만 따져보면 우리 부서에서는 제가 가장 많지 싶어요. 2002월드컵과 2008베이징올림픽 기간 등 잠깐잠깐 빠져나온 걸 제외하고 야근 조장까지 여기서 15년 정도는 올빼미 생활을 해왔네요. 잠을 잘 자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만성피로를 달고 지낸듯 해요. 누가 알아 주기는 할는지. 그 불면의 밤 골병을.
휴일은 보통 어떻게 보내나. 취미가 있다면.
아들만 둘인데, 아이들이 어렸을 땐 주말이면 캠핑을 가거나 자전거를 함께 탔어요. 애들이 크고 나니 옛일이 되어버렸네요. 결혼 전까지는 낚시 관련 미디어를 꿈꿀 만큼 마니아였죠. 지금은 가끔 한강 라이딩을 나가는 정도인데, 현재 토요일 육아는 온전히 제 몫이라 기회가 많지는 않네요.
편집기자의 길은 어떻게 들어서게 됐나.
저는 언론 관련 전공도 아니고 학보사 경력도 없습니다. 다만 '자보'와 '플래카드'는 좀 써봤지요. 일찍 사회로 나가야 했고, 1990년대 중반 광주 지역 마지막 신생 신문사에 올라타게 됐어요. 1기로 입사해서 교육 받고 나자 회사는 모두 취재로 배치하길 바랐지만 저는 편집에 남았습니다. 취재는 약간 시시했어요. 하, 농담이고요. 당시 '오찌' 관례를 감당할 자신이 당최 없었어요. 무엇보다 편집이란 마법에 이미 빠져버린 것이겠지요.
한국편집상 시상식 소감 발표 때도 그렇고 유독 권유신 부장에 관한 언급을 자주 하며 애정(?)을 과시 했다. 권 부장과 관계가 돈독해 보이는데 평소 소통을 자주 하는지.
하하하. 사실 권 부장이 부원들에게 썰렁한 농을 잘 던지시는 편인데, '수상 소감에 내 노고는 절대 밝히지 말라'며 넌지시 특명을 주던데요. (하하) 저도 눈치란 게 있으니까. 권 부장과 저는 2000년 1월 경향에서 제2의 편집 인생을 시작한 경력 공채 입사 동기입니다. 물론 권 부장이 편집 선배입니다. 애정이라? 글쎄요, 공생한 시간만큼 '애증'이 더 부합하지 않을까요? 여담이지만 권 부장에게 1면 러브콜을 받고 나서 저는 당시 '연인'을 잃기도 했답니다(오해마시길, 통상의 그 연인이 아니니까). 함께 1면을 시작한 이후 거의 날마다 '음주 뒷담화'의 연속이었어요. 말로라도 풀어야 할 '사람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저의 말 분량이 상대적으로 늘면서 소위 '심기 경호'에 대한 기대는 접으신 듯하네요(흐흐). 지켜보는 편집부장의 잡무가 너무 많아졌어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마지막 질문  편집에 대한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역질문을 먼저 드리자면, 우리가 지켜야 할 편집의 원칙은 무얼까요? 과연 편집에서 '금기'란 게 얼마나 여전히 유효할까요? 저는 어떤 원칙보다 기자로서의 신념을 나름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최초 독자로서 절제된 감성과 적확한 뉴스 흐름의 맥, 이 판단의 원론이 편집의 큰 무기라고 여겼어요. 잘 실천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진보'를 내세운 편집국 리더들일수록 되레 편집을 손에 쥐고 흔들려는 경향이 강해요. 편집을 하수로만 보는 걸까요? 이건 지금 정부 권력에서도 나타나는 점인데, 옳음에 대한 강박과 자기 맹신이 지나쳐 '괴물'을 닮고 결국 시스템을 망치는 경우와 같다고 봐요. 기사는 기근이고 취사선택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기획이 지면을 채워가면서 후배 기자들이 뉴스를 판단할 기회가 줄어버려요. 옆 동료는 온라인팀으로 차출되어 갑니다. 이젠 종이신문을 '영수증'으로 치부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역질문을 드린 이유는 이거예요. 누가 정한 편집 원칙이던지, 개인의 철학이던지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당장의 현실을 어떻게 편집의 미래로 수렴해야 하냐는 것에 대한 고민. 디지털과 편집, 십수년째 모두의 고민 아니었습니까. 우리에게 '편집이 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