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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뻘’은 사라져도 ‘뻘배’는 남았다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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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1-09-06 18: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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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0

    일반화의 함정 ① 갯벌


     # 익은 말이라고 사전을 멀리했다가 교열에서 덜컥수에 말려드는 때가 종종 있다. 온라인 사전이 보편화하면서 말의 변화를 사전에 담아내려는 사전 편집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기 때문이다. 어느 말이 세력을 얻어 규범어 영역으로 편입되기도 하고, 의미 변별성을 잃고 일반화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존중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여전히 눈에 밟히는 것이 ‘갯벌’과 ‘서식(棲息)’이다.

    한때 갯벌 체험이냐, 개펄 체험이냐를 두고 매체들이 설왕설래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교열인들에겐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환경용어에서 ‘연안습지’라고도 하는 갯벌의 한자어 간석(干潟) 潟자의 새김말이 개펄이다. 개흙의 풀이말 ‘갯바닥이나 늪 바닥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흙’은 곧 펄이다. 갯밭(개흙밭), 갯골(갯고랑), 감탕(감탕밭), 해택(海澤: 택은 ‘물이 질퍽질퍽하게 고여 수초가 잘 자라는 못’) 역시 펄이 아니고서는 갯벌과 의미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사전에서 갯벌과 개펄의 구분이 사라진 지금에도 갯벌이 그리는 심상은 여전히 개펄이다.

    갯벌은 조류에 의해 충적된 토질(모래·점토)에 따라 펄 갯벌, 혼합갯벌, 모래갯벌로 나뉜다. 또 간석의 ‘물 빠질’ 간(干)에서 보듯이 건지와 습지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할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강과 하천이 열려 있는 서·남해안에 펄 형질의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 언어의 풍경에서 갯벌은 태생적으로 개펄이다.

    표준국어사전에 개펄은 곧 갯벌이고, 갯벌·개펄·펄·간석·해택의 뜻풀이가 모두 같다. 영어로 치면 ‘mud flat’이 아니라 ‘tidal flat’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 별 차이 없이 쓰이는 것을 반영하여’ 동의어로 인정하였다는 것이 국립국어원 설명이다. 사전에서 우리 갯벌의 대표 격인 ‘펄’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펄이 갯벌에 묻히면서 경남‧전남 사투리로 사전에 올라 있던 ‘뻘’도 사라졌다. 언젠가는 펄과 의미 연관성이 있는 개흙, 갯밭, 갯골, 감탕, 해택, 이런 어휘들도 본디 뜻을 잃거나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뒷북 상상을 해본다. 갯벌을 상위 개념으로 삼고 개펄과 갯벌을 구분하여 썼으면 어땠을까. 그도 아니라면, 펄(또는 펄 갯벌)을 제 뜻풀이와 연관어를 묶어 표제어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펄을 가리키는 ‘뻘’ ‘뻘밭’ ‘뻘땅’ 등은 규범의식이 워낙 강했던 터라 대접 받지 못했을 뿐, 펄을 끼고 있는 경남·전남·충남에서 토속어처럼 폭넓게 쓰이는 어휘들이다. 사전에서 펄이 살아 있었다면 뻘, 뻘밭은 말의 어감과 세력으로 보아 지금쯤 규범어 영역에 들어왔을 법하다.

    세계 5대 갯벌이라는 순천만에 가면, 그 갯벌에서 아낙들은 여전히 ‘뻘배’(손널·널배)를 굴리며 바지락을 캔다. 

    세계일보 교열담당


    첨부파일 민종현의 글부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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