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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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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대만 간사세미나 이모조모

      4명의 기미상궁이 필요해

      대만 여행은 먹방이 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식사시간마다 고역을 치른 간사들이 많았다는데. 10명이 둘러앉은 원형 테이블에서 모든 요리마다 가장 늦게 맛을 보는 간사가 있었으니, 4명이 오케이해야 수저를 들었다고.

      맛있어요?” “먹을 만해요

      괜찮아요?” “생긴 건 그래도 괜찮은데요.”

      진짜 괜찮아요?” “느끼해도 그 중 나아요

      거짓말 아니죠?” “정말이에요. 맛있어요

      그럼 4명이상이 오케이 했으니까 먹어봐야지

       

      돼지? ? 도마뱀? 이건 뭐지?

      화려했던 요리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까맣게 생긴 그게 문제였다. 먼저 맛을 본 간사들이 이건 무슨 고기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같은데요” “닭고기 맛인데갖은 추측이 난무했다.

      혹시 개고기 아닐까

      으악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모 여기자는 음식을 내동댕이 치기도 했다.

      결국 친절한 종업원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돼지고기라고 결론을 내려줬지만, 이미 입맛은 끝.

       

      오리 눈을 가려라

      그나마 만만한 베이징덕 요리가 나왔다. 한참 흡입을 하던 중 한국선 못 보던 오리 머리가 눈에 띄였고, 눈까지 생생했다. “여기선 머리도 먹나보죠?”

      먹는 거니까 나왔겠죠. 먹어볼까요?” 하고 젓가락을 들었던 막내 기자. 맛을 보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 뇌를 먹었어요.”

      순간 다른 반쪽을 들었던 모 간사는 슬그머니 냅킨으로 오리 눈을 가렸다고...

       

      가장 높이 난 로또 1’ ‘협회 발전

      폭우가 퍼붓는 가운데 체험한 천등(天燈) 날리기. 1m쯤 되는 빨간색 천등의 네 개면에 각각 소원을 적고 화약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띄우는 것. 시펑에서 천등에 소원을 빌어 날리면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가이드의 말에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적었는데.

      가족건강’ ‘00아 사랑해라고 쓴 가정파가 주류를 이뤘지만 몇몇 튀는 문구들이 있었으니...

      ‘00신문 만세, 부장님 사랑해요’ ‘000노조 교섭 성공’ ‘합격’ ‘다이어트 성공

      그런데 간사들의 간절한 소망에도 억수처럼 퍼붓는 빗줄기에 대부분의 천등들은 힘차게 솟아올랐다가 그대로 급전직하 하고 말았다.

      반면 폭우를 뚫고 까마득하고 떠오른 단 하나의 풍등이 있었다. 간사들이 가식적이라며 만류에도 강행했던 김선호 회장의 협회 발전 만사형통’, 마흔 넘어도 총각인 모 기자의 장가 간다’, 그리고 로또 대박이런 건 쓰지 말아달라는 가이드의 지침에도 로또 1이라고 쓴 천등이었다.

      로또의 부푼 꿈을 안은 주인공은 단번에 1등 되면 협회에 1000만원, 같이 천등 날린 분들에게도 1000만원씩 주겠다고 공약도.


      카드결제 불가의 행운
      단체로 들린 과자 가게에서 카드가 된다기에 맘 놓고 시식하고 고르고 골라 여러개를 샀건만 특정 브랜드 신용카드는 불가. 결국 본의 아니게 반품. 이후 101타워에서 멍때리다가 눈앞에서 기대없이 맛본 펑리수가 더 맛있고 값도 싸 운좋게 득템. 게다가 카드결제까지 OK. 


      여기자들의 소 혀 사랑

      4박5일의 세미나 마지막 밤 조별토론을 마친 D조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 일찌감치 침대에서 시체가 된 1명을 제외한 D조 전원과 슬며시 가출한 A조 2명 등 총 11명은 자정에 가까운 시각 숙소 앞 유일하게 문을 연 소고기 샤브샤브 집에서 마지막 밤을 찢어.
      재료가 바닥나 소꼬리와 도가니를 익혀 먹으며 고량주를 홀짝이던 그들 앞에 던져진 번외편 미션. 천상의 미각을 자랑하는 조장의 간곡한 권고로 소 혀를 주문하게 된 것.
      절대 먹지 않겠다던 여기자들은 마지못해 맛본 소 혀의 맛과 식감에 ‘금사빠’로 변신. 소 혀에 대한 무한 사랑을 다짐하며 행복한 회식을 마쳐.
      한편 자정이 넘어서면서부터 의자에 앉아 손님들을 쏘아보던 음식점 직원들은 데드라인인 새벽 1시 30분에 정확히 실내조명을 꺼버렸다고.  



    • 2017 대만 간사세미나 뉴시스 최현호 기자 후기

      아름다운 거리와 여성들...막내가 느낀 이국정취


      대만은 내게 'ACER의 나라' 정도에 불과했다. 대만은 ASUS, MSI, GIGABYTE, ACER 등 유명 컴퓨터 브랜드들을 보유한 나라다. 대만에 대한 나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컴퓨터 강소기업이 많은 국가라는 정도. 심지어 작년 동남아 여행 중에는 'Taiwan'과 'Thailand'를 헷갈려 작은 창피함을 겪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대만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감을 갖게 됐다. 대만은 아름다운 거리와 매력적인 여성들이 있는 흥미로운 나라였다.
      대만의 길거리엔 중국과 일본이 혼재돼 있다. 나는 해외여행을 떠나면 필름카메라로 길거리를 찍는 걸 즐긴다. 거리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현지인들의 행동양식 등이 녹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홍콩여행 중 그곳의 거리를 렌즈에 담으면서 중국과 유럽이 뒤섞여 있는 이국적인 느낌을 받아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대만여행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화련을 가기위해 찾은 기차역은 중국어로 안내가 되어있을 뿐 곳곳에서 일본의 냄새가 났고, 잠시 주어진 자유시간에 혼자 돌아다녀 본 골목길에는 일본 느낌의 건물에 중국어 간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조선과 달리 온건통치를 받은 흔적이 이런 양태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내게 대만의 장마는 약간의 걸림돌이 됐다. 비를 맞아가며, 또는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카메라를 들어보려 노력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비가 오히려 일부 명소에서는 멋진 풍광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인 지우펀 거리는 붉은 홍등들과 비, 사람들의 우산이 뒤범벅되어 내 머릿속에 잊지 못할 그림을 남겼다.  
      대만은 길거리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에서 남자 기자들 중에는 내가 가장 연차가 낮고 나이도 가장 어렸다. 남자 중 미혼인 사람도 거의 내가 유일한 듯했다. 젊은 남성이자 총각인 내게 '여성'은 언제 어디서나 큰 관심사다. 주간에 가이드를 따라 명소들을 방문하며, 야간에 선배들과 야시장과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마주친 현지 미녀들은 계속해서 내 고개를 돌아가게 했다. "트와이스의 쯔위가 대만사람이지 않느냐"는 전자신문 조원 선배의 말을 듣고 내 고개의 움직임을 이해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유여행으로 대만을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대만에 대해 이렇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좋은 선배들과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만음식의 향을 힘들어하면서도 모험가 정신을 발휘해 서문정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3차까지 함께한 파이낸셜 뉴스 박준서 선배와 전자신문 조원 선배. 막내라며 술자리 때마다 불러주신 김선호 회장님과 신인섭 부회장님. 담배가 떨어질 때마다 미리 챙겨온 담배를 공급해 주신 한국일보 전신재 선배. D조를 탈 없이 이끌어 주신 전북일보 김동일 선배. 곳곳에서 말동무가 되어주신 전라일보 정효정 선배까지. 이외에도 많은 선배들이 이번 대만 세미나가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이끌어 주셨다. 앞으로 더 잦은 교류를 통해 선배들과 이런 만남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17 대만 간사세미나 경기일보 이윤제 기자 후기

      비, 비, 비... 하지만 마음은 맑음


      #대만에 가기 전 날씨로 걱정했다. 주변 사람, 친구들 모두 엄청 더울 거라며 겁을 줬다. 그래서 반팔을 잔뜩 가져갔다. 하지만 망했다. 계속 비가 왔다. 대만은 다음주에 태풍이 온다고 했다. 긴팔을 더 챙겨오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대만 더워서 타죽을 거라더니 난 타 죽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니 여기가 더 덥다.
      #셋째 날 중국시보 견학을 갔다. 편집부가 지하에 있다고 해서 신기했다. 보통은 지상에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하에 있어도 인테리어를 잘 해놔서 그런지 지하 느낌이 들지 않았다. 벽 한쪽을 넓게 차지한 자료실도 있고 반짝반짝 깨끗하고 전체적인 환경, 시설이 좋아 보였다. 직원들 일하는 공간에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부러웠다.
      #호텔에 와이파이가 된다고 해서 로밍도 포켓 와이파이도 준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버티고 버티다 넷째 날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로밍을 신청했다. 역시 해외에 나갈 땐 뭐라도 해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나는 2호차를 타고 다녔는데 가이드분의 말투가 특이했다. 존댓말로 설명을 하시다가 중간 중간 ‘~~한 고야(거야)’라고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반말에 ‘뭐지?’ 했지만 들을수록 중독되고 웃겼다. 따라 하는 재미가 있었다.
      #비가 많이 와 구경하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우비에 우산까지 장착하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야류에선 바람이 너무 불어 우산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호텔에서 빌려온 우산 망가질까 조마조마해 하며 우산을 지켰다. 지우펀에선 다른 간사분들과 맛있는 망고젤리, 누가크래커 등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그거 어디서 샀어요? 얼마예요? 이 집이 유명한 집이 에요?” 함께 무리지어 다니며 비가 와도 완벽한 쇼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지만 나중에 버스까지 들고 오는데 죽는 줄 알았다. 우산도 들어야해 짐도 들어야해 그런데 버스는 또 멀리 있어... 다음날 팔이 아팠다. 평소에 너무 편하게 살았나 보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그렇게 사온 과자들이 벌써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엔 더 사 올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많이 사 온다고 사 왔는데 돌아와서 또 후회했다. “아 그때 더 사올걸...”
      #세미나 동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현지식 상요리만 보면 두려웠다. 종종 알 수 없는 재료의 음식을 보며 이건 무슨 맛일까. 음식 하나 먹을 때마다 다들 이건 괜찮다, 별로다 맛 품평회를 열었다. 한국에 와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사 먹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한국 음식이 최고다.
      #이렇게 저렇게 지나간 첫 간사 세미나, 낯선 사람들과 4박 5일을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떠났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친절하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 너무 즐거웠다. 언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함께했던 모든 분들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 2017 대만 간사세미나 중도일보 박새롬 기자 후기

      안녕하세요, 귀국날 공항 보따리 장수입니다


      거기 덥다던데.
      대만으로 간사세미나를 간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위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기우였죠. 대만에서 보낸 4박 5일 중 사흘이, 몰아치는 비바람의 연속과 추위였음을 출국하던 우리 중 누가 알았을까요.
      첫날 저녁만찬은 58도 금문고량주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찔끔 입대는 것보다 한입에 털어 넣는 것이 낫다는 쎈 맛. 마지막 날 이 술은 가성비로 선배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선물용으로 면세점에서 제법 팔리게 되죠. 양념된 고기, 생선찜, 탕국처럼 소고기가 들어있는 국 등 음식은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향신료를 좋아하는 제 입에는 대부분의 음식이 잘 맞았고요. 쉽게 젓가락을 대지 못하시는 선배들이 먹을만한지 물어보시기도 했는데, 뭐든 맛있다는 제 대답은 무용지물이었어요.
      제가 탄 2호차 가이드님은 세미나 기간에 가게 될 장소들을 소개하시면서 ‘~갈 꼬야’ 하고 자꾸 반말을 하셔서 우리들의 성대모사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1호차 가이드님은 자수가 놓여진 얇고 긴 재킷을 늘 입으셔서 홍콩 느와르 영화 속 조연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주구장창 내리는 비는 세미나 일정 몇 개를 놓치게 하고, 사진 속 우리를 젝스키스 팬클럽마냥 노란색 우비 물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궁중박물관에선 취옥백채라는 배추 조각을 찍느라 줄을 섰고, 타이베이 101에선 바다 풍경이 나오는 스크린 앞에서 일렬로 서서 사진을 찍었죠. 사실 야경이 배경으로 나올 때 단체사진 찍으려고 기다리다 시간이 길어져서 얼른 찍은 거였는데, 찍고 나니 금방 야경이 나오더군요. 참, 거기서 전 인생샷을 건졌습니다.<사진>
      서문정 거리에선 분명히 각자 먹고 싶은 걸 먹으라고 했는데 열 명 넘게 곱창국수집에 모였습니다. 마치 회식처럼 다 같이 비오는 처마 아래 서서 국수를 흡입했는데, 나중에 거기서 가까운 오리국수집이 더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아쉽기도 했죠. 망고빙수집의 한국어 낙서는 우리에게 명동 떡볶이집에 온 기분을 줬습니다. 100그릇 먹어도 맛있다는 낙서도 봤는데, 네, 정말 맛있었어요.
      귀국하는 날. 회사에 돌릴 선물이 한 짐이었던 저는 보따리 장사꾼 같다, 이문 많이 남기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문 대신 인연과 추억. 그게 잔뜩 남았네요. 빗속에서도 각자의 소원을 적은 빨간 천등이 잘 날아올랐었죠. 선배님들 후배님들 모두 적으신 소원 꼭 이뤄지시기를요.

    • 2017 대만 간사세미나 조선일보 이정도 차장 후기

      58도 ‘찐먼’ 꿀꺽... 에어컨 빵빵해도 대만은 화끈했다


      작년 일본 홋카이도에 이어 올해는 대만으로 간사세미나를 가게 됐다. 대만에 대해 ‘푹푹 찌는 습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던 차라 마음 속에선 이미 “가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
      처음 대만을 도착했을 때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대만의 첫 인상이 어떠세요?”
      우중충했다. 화려함과는 꽤 거리가 먼 도시였다.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대만에선 규모 6.3 이상 지진이 1년에 10여번 나고 태풍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여름철에 지진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온갖 상점의 간판들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대만에선 화려한 간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에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그들의 옷차림에서도 드러난다. 남자들, 특히 중년 아재들은 거의 다 ‘난닝구 패션’이다. 그것도 후줄근한... 주성치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형님’들이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나 런닝을 입고 거기에 ‘쓰레빠’로 마침표를 찍는다.
      여성들 옷차림도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매우 소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소박함’ 사실은 좀 촌스러웠다. 하지만 겉치레보다 내실에 더 신경쓰는 대만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던 그들의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대만에선 인테리어 사업은 하면 안될 일이다.


      #공포의 버스
      화련행 버스에 올라탔다. 듣던대로 빵빵한 에어컨. 추워서 바로 찬바람이 나오는 입구를 닫았다. 태국 혹은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보이는 ‘자칭 손지창’ 가이드 형님은 태로각 협곡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 알려주었다. 여기서는 돌덩이가 굴러 떨어져 죽었고, 저기서도 지진과 태풍이 불어와 죽었고... 좁은 산길을 구불구불 달리는 버스 맨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밖을 보니 바로 밑이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해발고도 2000m에 위치한 태로각 국립공원은 웅장한 대리석 절벽으로 이루어진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이었다. 산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가늘고 길게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다. 가뜩이나 에어컨 때문에 썰렁했는데 순간 ‘여기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발끝부터 전해졌다. 거기에 버스 운전사는 피를 토하며 운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좀비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대만에선 운전사들이 빈랑나무 열매를 많이 씹는다고 한다. ‘삥랑’이라 불리는 일종의 각성 효과가 있는 껌으로 볼 수 있다. 이걸 씹으면 붉은 즙이 나오고 처음에 다들 토하듯이 뱉곤 한다. “대만이란 나라는 운전사들이 먹여 살린다. 피를 토하며 일하니까”라고 오해를 할 정도다.


      #고량주 1일 1병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대만 세미나의 목적은 ‘찐먼’이었다.
      ‘58도 금문고량주, 1일 1병’ 물론 1일 1병은 아니었지만 생수통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식사때마다 홀짝 거렸다. 함께 방을 썼던 박재덕 선배가 내가 넣어둔 고량주를 물로 잘못 알고 홍삼 비타민을 타 주었는데, 그걸 나는 또 깜빡하고 꿀꺽 마셨다. 흑흑흑.
      일정이 끝난 밤엔 무작정 나와서 걸었다. 해장도 할겸 샤브샤브를 먹어보고 싶었다. 밤 12시였지만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맛집’에 찾아온 걸 흐믓해하며 얼큰한 국물에 피곤한 몸을 녹였다. 고량주와 함께 즐겨 먹었던 건 바로 ‘고수’. 화장품 향이 난다고 안먹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에겐 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아직도 입가에서 고수 향이 풍기는 듯하다. 서울로 돌아가는 공항길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찜통 더위로 인한 불편은 없었다. 대만을 이렇게 시원하게 다녀올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생각보다 정말 가까웠던 대만, 다음엔 혼자 와봐야 겠다.

    • [편집데스크 세미나] 비행기 타고 열차 타고 배 타고… 바이칼호를 만나다


       

      편집데스크 등 43명, 4000km 대장정 4박6일 ‘힐링 캠프’


      ‘2016 편집데스크 세미나’가 지난 5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 간의 일정으로 러시아에서 열렸다.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선호)가 주관하고 KT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전국 일간신문 및 통신사의 편집데스크 40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 새로 회원이 된 뉴시스(최효극 부장), 이데일리(전명수 부국장)와 3년 만에 재가입한 매일신문(이종민 부장)도 행사를 함께 했다.
      ‘한민족의 시원(始原)’으로 불리는 바이칼(Baikal)호(湖)를 찾아가는 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30분의 비행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야간 시베리아 특급열차를 타고 11시간을 달려 700km 떨어진 하바로브스크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하바로브스크에서 다시 밤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동안 2000km를 날아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이칼호는 길이 636km, 가장 넓은 곳은 80k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642m로 남한 면적의 3분의 1이 된다. 담수호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깊은 호 수이다.
      김선호 회장은 “바이칼호는 영적인 기운이 충만한 곳으로 유명한만큼 격무에 시달리는 편집데스크들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적합하다”며 “모두에게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편집상 해외시찰] 낮엔 ‘모델샷’ 밤엔 ‘원샷’… 7인7色 매력 폭발


       

      파리 테러에 초유의 여행지 변경 ‘천우신조’
      ○…해외 시찰을 1주일을 앞둔 11월 말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나 런던·파리를 시찰지로 정했던 협회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출발 1주일 전 여행지를 크로아티아 등 발칸 4개국으로 급히 변경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그러나 방문 기간 폭우가 휩쓴 런던과 테러로 어수선한 파리에 비해 발칸 지역은 대부분 화창한 날씨와 따뜻한 기온에 “여행지 변경이 ‘천우신조’였다”고 극찬.


      “독일 난민기금”으로 여행 액땜 솔선수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환승 중 협회 간부 박모씨와 최모씨가 담배를 1보루 초과해 입국했다가 1보루당 70여 유로씩 벌금을 내는 일이 벌어져. 귀국 후 지인들 선물용으로 산 한화 2만 원대 면세 담배에 7만 원이 넘는 벌금을 내게 된 것. 두 사람은 “메르켈에게 난민기금을 낸 것”이라며 ‘셀프 위안’을 해 웃음을 주기도. 아마도 긴 여행 기간 별다른 사고 없이 보낸 것은 이들의 ‘솔선수범 액땜’ 탓인 듯.


      첫날 부터 ‘삼국세끼’… 볼거리·먹거리 한가득
      ○…이문열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남녀 주인공의 마지막 재회 장소인 오스트리아 그라체. 유럽 중세?근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곳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흔적들을 둘러본 일행은 슬로바키아의 포스토이나로 이동,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카르스트 동굴을 꼬마 기차를 타고 구경 후 다시 2시간을 달려 이번 여행의 꽃 크로아티아로 들어오는 강행군을 했는데. 첫날부터 3개국을 누비며 아침은 오스트리아, 점심은 슬로바키아의 송어요리, 저녁은 크로아티아에서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 나왔던 ‘비프롤’을 맛보는 ‘먹방 행군’은 덤. 호텔에 들어온 일행들은 “‘삼시세끼’ 아닌 ‘삼국세끼’”라며 촌평.


      십리 못 가 발병난 자그레브 ‘버스 아리랑’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대성당과 시내투어를 마치고 영화 ‘아바타’ 촬영장으로 유명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길. 자그레브는 우리와의 너무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 걸까. 시내 한복판에서 일행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서. 1시간여 기다린 끝에 현지 여행사가 긴급 수배한 다른 버스를 타고 3시까지 입장해야 하는 플리트비체에 안전히 도착해 일몰 속에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을 만끽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별이 빛나던 밤… ‘깨소금’도 쏟아졌나?
      ○…서울의 절반 크기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주변 숲 속의 숙소엔 밤에 별이 쏟아졌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려 일부 수상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산책에 나섰는데,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부부 동반으로 여행에 참가한 박문홍 46대 협회장 내외도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고. 다음 날 “쏟아지는 별을 함께 걸었다”며 “아내에게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싱글벙글. 주변에 따르면 ‘환상적인 밤’을 보낸 두 사람의 얼굴엔 웃음과 피곤이 가득했다는 전언. 왜일까….


      수상자 ‘여행 작명 배틀’… 승자는 ‘데스크’
      ○…버스 타는 시간이 많았던 여행. 그만큼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러 간식과 커피 등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일이 잦았는데.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항구 스플릿을 향하던 셋째 날. “우리의 여행을 뭐라 명명할 것인가”를 놓고 작명 배틀이 벌어졌다. 예능 ‘꽃보다 누나’ 코스인 만큼 ‘꽃보다 편집’ ‘꽃보다 중년’ 등이 쏟아져. 그 중 김선호 신임 협회장이 대상 수상과 협회장을 배출한 안덕기 부장에게 바친 ‘꽃보다 데스크’가 큰 웃음과 박수를 받아.


      ‘이승기가 걷던’ 골목이 매력적인 스플릿
      ○…이승기가 머물렀던 그곳, 드디어 스플릿. 쏟아지는 햇살과 예상보다 높은 기온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변신한 일행들.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과 아드리아 해가 펼쳐진 해변의 중세풍 건물에서 골목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느라 비지땀을 흘리기도. 슬픈 건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만 이승기’였다는 후문.


      맥주 30병 주문한 두 여자… 바텐더 ‘멘붕’
      ○…발칸 4국 여행의 클라이맥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해 여행 중 첫 번째 오픈방 행사. 대상 수상자인 박미정 차장과 협회 강경남 차장이 호텔 바에서 맥주 30병을 방으로 주문하려는데 “thirty”라고 아무리 말해도 바텐더가 “three?” “thirteen?” 등 수차례 묻는 일이 벌어져. 결국 종이에 적어 주문하고 돌아온 그녀들. 후에 바텐더가 더 놀랄까 봐 침대를 치운 오픈방이 아닌 본인들 방으로 주문했는데 배달 온 바텐더가 “몇 명이 먹느냐?” 물어 “5명”이라 답하니 혀를 내두르고 돌아갔다고. 맥주 30병은 옆방 베란다 틈으로 다시 옮기는 작은 소동 끝에 성대한 오픈방 행사를 치러.


      “1유로” 구걸에 비친 아물지 않은 내전 상처
      ○…20년 전 내전 치유의 염원을 담은 보스니아 모스타르의 ‘모스타르 다리’를 방문. 이슬람과 동방정교 등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 간의 화해의 상징인 된 이곳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과 허름한 건물들이 눈길. 다리 양편에 기념품점과 카페가 즐비한 골목에서 20대 중반의 여성이 애를 안고 행인에게 “1유로”를 외치며 구걸하는 모습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의 단면도 엿봐.


      그 앞에 서면 모두가 모델… ‘최 작가’ 열풍
      ○…‘찍기만 해도 화보’가 되는 아름다운 발칸 4국의 모습에 사진찍기 열풍이 벌어져. 그 열풍을 주도한 이는 최덕현 당시 사무국장. 휴대전화 하나로 작가 뺨치는 사진을 선보여 일행들에게 “최 작가님”으로 불려. 최 작가는 “벌금 70유로를 벌기 위해서”라 했지만…. 사진 찍히는 것에 소극적이던 일부 수상자들은 물론 일행 모두가 그의 환상적인 폰카 사진에 놀라 여행 내내 ‘찍히려’ 안달. 자연스럽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근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박문홍 46대 회장은 “좋은 여행 분위기 만든 일등공신”이라며 최 작가를 ‘맨입’으로 극찬. 한편 그 뛰어난 ‘예술’의 비결은 ‘뽀샵’으로 밝혀져.


      낮엔 풍경에 취하고, 밤엔 분위기에 취하고
      ○…오전 내내 두브로브니크 오노플리안 분수, 스폰자궁과 시계탑, 렉터 궁전 등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돌아본 일행에게 여행 중 처음으로 3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어떤 이는 쇼핑을 하고, 어떤 이는 바닷가 카페에서 아드리아 해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너무 길었던 탓일까? 다들 어느 순간 한곳에 모인 일행들. 그대로 호텔 복귀를 작파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풍경이 가득한 골목 한쪽의 펍으로 몰려가 맥주잔을 부딪치며 두브로브니크의 밤을 만끽.


      눈 내리는 1차대전 현장서 100년 ‘타임슬립’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 반도’.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의 도시 사라예보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려. 우크라이나에서 따뜻한 봄 날씨를 겪었던 일행에게 발칸이 아닌 다른 유럽으로 공간 이동한 기분을 주었다. 내전 뒤 가시지 않은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보스니아의 상황과 구름 가득한 잿빛 하늘은 묘한 콜라보를 연출하기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피살당한 폭 4M 남짓의 ‘라틴 다리’를 건너며 100년 전 세계사의 한 장면으로 모두 ‘타임 슬립’한 듯 했다고.


      국경 검문 살벌함 깬 “불닭 볶음면” 외침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발칸반도 최대 도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로 이동하는 길은 장장 7시간의 험난한 여정이었다. 내전으로 앙숙인 된 두 나라를 국경 검문소는 다른 국가 간 이동과 달리 검문소 군인이 모든 이의 여권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는 등 통과에 긴 시간과 긴장된 상황이 연출 되기도. 버스 안에 사뭇 냉랭한 기운이 흐를 때쯤 일행 중 누군가가 “한식 먹고 싶다”라고 외치니 고요한 호수에 파도가 일 듯.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데 젊은 층들은 “불닭 볶음면”이라고 말할 때, 버스 앞쪽의 연배 높은 층들은 “삼겹살이지”라며 웃음.


      ‘대구댁’과 함께 발칸판 ‘미녀들의 수다’
      ○…‘흰 벽의 도시’ 베오그라드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대구에서 2년간 살았다”며 유창한 한국말로 자기소개해 모두가 깜짝 놀라. 일행들은 ‘미녀들의 수다’ 방청객이 된 듯 가이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대구댁’이라고 부르기로. 대구댁은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흰 벽의 칼레메그단 요새(베오그라드 도시명의 발원지)부터 시내 중심가 투어를 함께 진행해 귀국 날 소중한 추억을 선물.


      ‘쇼핑파’ ‘애정파’ ‘골목돌’… 개성 만점
      ○…수상자마다 여행 기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 어떤 수상자들은 짬짬이 주어지는 자유시간마다 한가득 쇼핑으로 본인 여행 가방에 못 담아 고생. 주변에 “쇼핑하는 나를 말려달라” 애원에 “여권과 지갑을 압수하겠다”는 장난스러운 협박이 오가기도. 한편 만삭 아내를 한국에 두고온 김휘만 서울신문 기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통화에 열중 ‘예비 아빠’ 점수 100점을 받고. 임윤규 중앙일보 기자는 새벽마다 전화도 모자라 “사랑한다”며 동영상을 전송하는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편 어떤 이는 골목이나 가로등만 보이면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골목돌’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 [간사세미나] 이슬만 먹을 것 같던 그녀들 ‘음료 부페’ 가자 ‘술 선녀’로


       

      한국편집기자협회 2015 간사세미나가 9월 1일부터 4일까지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렸다. 회원사 간사 33명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더위와의 싸움, 물개의 자유, ‘득템’의 순간 등으로 요약된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일행이 모두 입국 심사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남짓. 가뜩이나 오래 걸리기로 유명한 공항인데 그날은 유독 심했다. 입국 심사 직원이 적은 데다 관광객이 많이 몰린 탓이었다. 그만큼 오키나와가 ‘핫’하다는 방증일 터. 입국 심사만 마쳤을 뿐인데 평소의 저질 체력 덕에 순식간에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짐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첫 일정은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테마공원으로 꾸민 ‘오키나와 월드’. 야외 무대에서 ‘에이사’라는 민속 공연을 관람했는데 A간사는 공연팀에게 현장에서 간택돼 자연스럽게 연기에 동참해 박수를 받았다. 이후 ‘옥천 동굴’로 내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난 종유석을 눈에 담았다.


      #옆방 항의에도 은밀한 의기 투합
       첫날 일정은 협회 주최 공식 만찬으로 마무리됐다. 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다 어느새 모두들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취의 세계로 입문했다. 특히 이슬만 먹을 것 같은 미소로 온갖 주류를 섭렵하던 여기자 군단의 음주 문화가 일동의 눈길을 끌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한 뒤에도 비좁은 방에 모여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간사들은 시끄럽다는 호텔측의 항의로 강제 해산되고도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술을 더…” 라며 헤맸다는 후문이다. 그날 만취 상태로 박문홍 회장 방에 가서 자야 했던 B간사나, 슬리퍼를 잃고 맨발로 돌아다닌 C간사 등의 전설이 전해진다.


      #해양족 vs 힐링족 vs 쇼핑족
       둘째 날은 힐링 데이였다. 아시아의 하와이라는 오키나와의 별명에 따라 간사 25명이 스노클링에 도전했다. 배를 타고 나가 수심 5m의 바다 속을 자유롭게 탐험한 것이다. ‘물개’를 자처한 몇몇은 더 깊은 바다로 내려가고 싶다고 발버둥을 쳤을 정도. 이들이 잔잔한 파도에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하며 자유를 즐기는 동안 호텔 잔류파는 아담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땀을 흘리거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맑은 날씨에 갑자기 스콜성 강우가 퍼붓다가 금세 맑게 개는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날의 조연. 저녁 식사 뒤 자유 시간엔 삼삼오오 마실을 나가 이자카야에 도전하거나 쇼핑몰에서 ‘득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특히 D간사와 집행부의 E는 “어머 이건 꼭 사야 돼”라며 양손 가득 종이봉투를 들고 나타나 큰 손 면모를 과시했다.


      #뙤약볕 공습… 가을이 그리웠다
       사실상 일정의 마지막 날인 셋째 날엔 일본 최대 규모인 ‘츄라우미 수족관’을 둘러봤다.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가 생각나며 왠지 미안했지만 들뜬 마음으로 돌고래쇼를 지켜봤다. 다만 이날은 ‘오키짱’의 컨디션 난조로 인해 지난해 데스크 세미나 때 봤던 쇼에 비해선 초라해졌다는 총평이 나오기도 했다. 공원을 돌고 돌아 수족관으로 들어가기까지, 만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잔디밭이라는 이름의 ‘만좌모’ 아래서 뙤약볕의 공습에 시달릴 때 우리는 막 선선해지기 시작한 우리의 가을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오키나와의 추억은 봉인됐다.

    • [창립 51주년 컨퍼런스]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 해결 능력, 신문에 있다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박문홍)는 9월 23일 협회 창립 51주년을 맞아 ‘세상을 읽는 힘, NIE의 교육적 활용과 컨텐츠 강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기념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는 NIE의 이론과 실무에 조예가 깊은 패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심옥령 청라달튼 외국인학교 교장의 사회로, 정문성 경인교대 교수의 기조연설과 이현숙 한라일보 부장·최상희 경향신문 차장의 주제 강연이 이어졌다.


      정 교수는 기조 연설에서 “한국이 가정교육을 점차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학교 폭력은 학교와 관련이 없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해 생긴 일”이라며 “이를 바로 잡는 데 신문과 NIE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현관 앞 신문은 아이가 들고 오게 하라’는 표제어를 제시하며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 부모를 보며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를 따라 신문을 읽게 된다”고 지적했다. 부모 등에 매달려 함께 신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그는 “선진국일수록 가정의 신문 구독률이 높다”고 소개하며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지, 종이냐 모바일이냐에 크게 얽매이지 말자”고 제안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키우고 문제해결의 간접체험을 하는 것이 신문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주장이다.


      한라일보 이 부장은 6년 전 아들과 ‘골칫덩어리’ 라는 단어로 처음 생각을 나눠본 데서 NIE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골칫덩어리’에서 출발, 아이의 고민을 듣고 해결방안을 묻는 과정에서 의외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는 것에 매료됐다는 이 부장은 “마침 신문사 창간 20주년을 맞아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자는 차원으로 처음 NIE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의욕적으로 NIE 학회를 창립하고, 외부 단체와 협업해 전시회와 공모전을 여는 등 제주도 전체에 NIE 홀씨를 퍼뜨렸다고 자부했다. 덕분에 한라일보는 현재 월 2회 화요일자 지면에 NIE 기획면을 연재하고 있으며 자문위원회를 운영, 봉사활동과 공모전을 병행하고 있다. 이 부장은 “올해 우리의 주제는 ‘찾아가는 인성교육’”이라며 “지역 신문만의 강점을 적극 알리고 지역의 이슈, 예를 들어 한라일보는 소멸 위기의 제주어와 지역 사회를 소개하며 수업에 활용하도록 해 나름의 활로를 모색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초창기에 교수들로부터 ‘기자들은 신문이나 잘 만들어요. 어설프게 NIE 한다고 하지 말고…’ 라는 핀잔까지 들었지만 그 덕분에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끌고 올 수 있었다”고 돌아본 뒤 “교육적인 효과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NIE가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인하대 사회교육과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는 경향신문의 최 차장은 NIE(Newspaper in Education)를 ‘NIE(News in Education)’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종이신문의 가독성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해도 매체가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바뀔 뿐이며 뉴스 소비는 그대로 가는 것”이라면서 “paper는 빼고 그냥 news로 용어를 바꾸면 추세에 더 맞는 NIE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많은 데도 신문사는 종이에 매몰돼 있다”며 “이를 탈피, 신문사도 확장적인 개념으로 NIE를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차장은 다만 “지금은 완벽하게 디지털 NIE라고 부를 만한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미 학교에선 과도기의 융합 NIE로 가고 있는데 신문사는 아날로그에 만족하니 괴리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최 차장은 “디지털 NIE가 반드시 좋은 것인지 아닌지의 논쟁은 있다”면서 “기존의 NIE를 포기할 수 없듯, 앞으로 방법론적인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형 NIE를 꿈꾼다”면서 “기자들도 교육 과정을 공부하고 이해해야 NIE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사회를 맡은 심 교장은 “한국에 NIE가 알려진 것은 꼭 30년 전인 1985년의 일로 기억된다”면서 “신문을 읽는 고도의 작업을 통해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아지고 이를 통해 더 밝은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총평했다. 편집기자협회 박문홍 회장은 “미디어 환경이 변하는 시대에 NIE도 분명히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본다”면서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앞으로 NIE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편집데스크 세미나] 주차장에 갇히고, 날씨는 미치고… 좌충우돌 4박6일


       

      비엔나서 프라하까지


      ‘2015 편집데스크 세미나’가 3월 31일부터 지난 5일까지 6일간의 일정으로 오스트리아와 체코 일원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박문홍)가 주관하고 KT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전국 일간신문 및 통신사 편집데스크 40여명이 참여해 ‘디지털저널리즘시대를 위한 편집 포지셔닝 전략 및 미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미나를 마친 참가자들은 합스부르크왕가의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전세계에 알려진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조각가 로댕이 ‘북쪽의 로마’라고 극찬했던 체코 프라하 등을 방문해 지친 일상을 달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박문홍 회장은 “수많은 뉴스의 이면에 ‘숨겨진 한 끗’을 짚어내는 편집의 가치는 휘발성, 다양성이 혼재한 새로운 미디어환경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 되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월 할슈타트엔 눈이 내렸다. 우산을 잡은 손이 시렸다. 질척한 눈길에 발도 꽁꽁 얼었다. 그래도 자꾸 웃음이 났다. 한국편집기자협회가 주관하고 KT가 후원한 ‘2015 편집데스크 세미나’는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으로 채워졌다.


      #버스가 주차장에 갇혔어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한 중식당. 날은 어둑어둑하고 추적추적 비는 내렸다. 배를 곯았던 우리는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며 ‘약’도 먹었다. 한국에서 공수한 소주를 물병에 담아 소폭을 몇 잔씩 돌리니 서먹했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 바로 그때 현지 버스 기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이드에게 달려 왔다. 사람들을 태워 호텔로 가야 할 버스가 주차장에 갇혔단다.
      식당 뒤쪽에 있는 공영 주차장은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버스 기사는 7시 50분에 주차할 때만 해도 이 사실을 미처 몰랐다. 급히 주차장 관리자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연락했지만 “이미 퇴근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호텔엔 아직 체크인도 하지 않은 상황. 할 수 없이 하나둘 컴컴한 주차장으로 들어가 커다란 트렁크를 챙겨 나왔다. 그리고 4명씩 줄 지어 콜택시를 기다렸다. 그날 그 동네 택시란 택시는 모조리 주차장으로 출동했다는 후문. 그렇게 차로 5분 거리의 호텔로 가는 데 모두 70유로(약 8만 1000원)가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잘츠부르크의 유로파 호텔에선 아침을 먹는 식당이 15층에 있었다. 그런데 조식 시간에 하필 엘리베이터가 먹통이었다. 식당 주방에서 연기가 나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건물 전체 엘리베이터가 10분간 차단된 것이다.
      이 사실을 미처 모른 사람들은 3층 방에서 15층까지 걸어 올라가거나, 15층 식당에서 2층 방까지 걸어 내려왔다. 한 데스크는 15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심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그만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춰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가 ‘오픈’ 버튼을 눌렀더니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고. 더 큰 문제는 출발 시간에 맞춰 1층으로 집결하기 위해 트렁크를 손수 옮겨야 했다는 점. 이날 기록은 14층 방에서 1층까지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트렁크를 들고 내려온 모 부장.


      #날씨가 미쳤어요
      “유럽에서는 하루에도 4계절을 다 볼 수 있어요”
      현지 가이드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말이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굿 호수를 둘러보는 배를 탔을 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갑판에서 비를 맞으며 동화 같은 마을을 구경했다. 점심으로 돈까스인 듯 돈까스 아닌 듯 돈까스 같은 ‘슈니첼’을 먹고 나니 비는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깨보니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설원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알프스 마을 할슈타트로 들어갔을 땐 눈이 녹아 생긴 물웅덩이에 발이 빠져 숱한 이의 운동화가 젖어 버렸다. 다시 할슈타트를 뒤로 하고 체코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땐 또 어찌나 날이 좋던지. 버스 차창 밖으로 한여름처럼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누가 누가 즐거웠나요
       이번 일정은 모스크바를 경유해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편으로 시작됐다. 첫날 모스크바에서 4시간가량 머물러야 했는데 그 짬에 무려 ‘3차’를 즐긴 사람들이 있었다. 시작은 공항 편의점에서 사온 캔맥주. 2차는 비행기가 20분 지연되는 틈을 타 카페에서 마신 생맥주. 3차는 비행기가 다시 40분 늦어지고 터미널도 바뀌는 바람에 자리를 바꿔 또 생맥주. 한 데스크는 “이러다가 비행기를 못 타는 게 아니냐”고 했을 정도로 술 냄새가 솔솔.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몇몇을 찾으러 갔다가 협회 부회장이 길을 잃고, 한밤 끽연의 즐거움을 위해 무심코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그만 현관문이 닫혀 버린 바람에 잠시나마 길거리에 갇힌 이도 있었다. 술기운이 적당히 올라 기분 좋은 채 그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을 만끽하면서도 신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일중독 데스크들. 이번 세미나를 통해 모처럼 충전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믿는다. 모두 잠든 밤, 호텔 어느 방에선 삼삼오오 첫사랑의 추억이 오갔다고 하니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는 더욱 풍성했을 것이다.
      프라하 카를교 한 가운데서 우리는 소원을 빌었다. 모두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그리고 또 다시 프라하에 올 수 있기를! 이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다시 한 번 빌어본다.

    • [간사세미나] ‘내가 막내야’ ‘막내 뺏겼네’ 5자 소개 열전

       

       


      2014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박문홍) 간사세미나가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렸다. 편집기자 29명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삿포로 시내 관광을 기본으로 노보리베츠의 지옥 계곡과 도야 호수를 둘러본 뒤 명수정 온천, 운하의 도시 오타루에서 그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힐링 여행으로 진행됐다.


      편의점을 털다
      ○…첫날 삿포로 호텔에 여장을 푼 기자들은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다섯 글자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간사장이 ‘어깨 정말 커’라고 포문을 연 뒤 ‘노니까 좋네’ ‘딸 잘 둔 엄마’ ‘영원한 누나’ ‘내가 막내야’ ‘막내 뺏겼네’ ‘배가 아파요’ ‘저도 아파요’ 등 촌철살인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J사의 S차장은 가이드 이름이 편집부장의 이름과 똑같아 깜짝 놀랐다며 ‘피할 수 없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들이 이날 밤 호텔방에서 마신 맥주만 500㎖ 캔으로 96개. 주당들은 호텔 1층 편의점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협회 집행부의 하소연을 듣고서야 방으로 돌아가 첫날을 마무리했다. J일보 K기자는 이후 홀로 밤마실을 즐겼다는 후문이다.


      노천탕의 29금
      ○…이틀째 일정의 압권은 온천욕이었다. 전날 과음과 종일 계속된 투어로 지친 참석자들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그중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몇몇은 온천에 몸을 담근 채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노천 온천의 여유로운 풍경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하지만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에 담긴 이들의 신체 특정 부위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29금’을 연출한 이 여섯 남자는 ‘사진을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고 결의를 했다고. 또 A사의 K기자는 온천탕을 활보하던 중 온천물 온도와 성분을 체크하러 온 여직원과 마주쳤지만 ‘나는 당당해’라고 주문을 외우며 천연덕스럽게 가던 길을 계속 가 나머지 참석자들을 기함시켰다.


      행운의 1만엔
      ○…이번 세미나의 최대 행운아는 머니투데이 김진수 기자였다. 김 기자는 첫날 여장을 푼 호텔 방에 점퍼를 벗어두고 그대로 체크아웃을 했다. 뒤늦게 옷이 없어진 걸 알게 됐지만 이미 다른 도시로 넘어간 김 기자는 3일째 되는 날 저녁 다시 그 호텔로 돌아가 옷을 찾았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1만엔(현재 환율로 약 10만원)도 그대로 있었다. 그제야 혈색을 되찾은 김 기자는 “오늘은 내가 다 쏜다”며 또래 기자들과 함께 시내 관람차를 타는 큰 손 면모를 보였다.


      우리의 언어는 자유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던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삿포로 시내를 탐색했다. 일본어를 몰라도 상관없었다. 선술집에 들어가 손짓 발짓을 섞어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모두 자유로웠으므로. 그럼에도 호텔로 일찍 돌아온 몇몇은 ‘호텔이 너무 조용하니 이상하다’며 ‘감’에 의지해 밤거리로 나섰다. 촉을 세워 나머지 일행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호텔로 귀환했다. 다만 협회 집행부만 저녁 10시부터 곯아떨어져 ‘저질 체력’임을 입증했다.


      벌써 그리운 대게
      ○…홋카이도의 명물 대게와 생맥주는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무한리필 대게 식당과 뷔페에서 대식가 면모를 보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성인 남성 엄지손가락 굵기의 대게 살에 매료된 일부 기자들은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린다’며 대게를 산처럼 쌓아놓고 식탐을 과시했다. 홋카이도가 자랑하는 라멘에선 호불호가 엇갈렸다. 진한 국물이 일품이라는 의견과 너무 짜서 못 먹겠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다만 모두들 맥주 맛은 일품이라며 귀국길 공항에서 쇼핑 바구니에 삿포로 한정맥주를 쓸어 담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일부 기자들은 “어제 대게와 맥주를 더 먹었어야 했다. 벌써 그립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광고 비중은 10% 뿐… 기부금·이벤트 등 수익원 다각화”

      지상강연 3. 팀 그릭스 텍사스트리뷴 발행인 & COO


       세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팀 그릭스 텍사스 트리뷴 발행인 겸 COO가 수익창출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오랜 기간 뉴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신문은 급격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전 세계 언론사들이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무렵,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과 약 2,600만명의 인구규모를 자랑하는 텍사스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뉴미디어가 등장했다.  벤처 사업가 존 서튼(John Thornton)과 베테랑 저널리스트 에반 스미스(Evan Smith)는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비영리 뉴스매체 '텍사스 트리뷴(The Texas Tribune)'를 함께 설립했다. 존과 에반은 비정파적 뉴스와 정보들이 보편화되길 원했다. 그들은 공공적 미디어의 잠재력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비정파적 뉴스와 텍사스 시민들을 위한 대안적 뉴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설립했다. 

       2009년도 미국 신문산업은 상당히 고전했다. 인쇄 매체와 방송은 많은 압력을 받았고, 부수와 광고수입이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디지털 매체로부터 큰 도전을 받았으며, 미국 신문 발행부수는 점점 감소했다. 두려움이 팽배한 시간이었고, 신문사들이 문을 닫고 기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 큰 주이지만 신문 발행부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시민들이 주의 정치적 상황이라든가 정보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영리사업을 하던 존과 에반은 재무적으로 곤란해진 신문사 인수했다. 독립적인 비정파 언론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언론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고 단순하게 자본주의나 시장원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서튼이 사재 털어 400만불 정도의 자본을 확보한 텍사스 트리뷴은 미국 국세청에 세금 면제 지위 신청해서 받아냈고, 비영리단체로 출범했다.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주주도 없고 이슈마다 중립적인 보도가 가능했다.
       비정파적 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비영리 뉴스매체를 표방한 텍사스 트리뷴은 공공정책, 정치, 정부, 주(州) 전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요 이슈 등 텍사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을 다뤄 온라인 상에 무료로 제공하는 공공적 비영리 미디어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주주가 없을뿐더러 투자자를 위한 추가적인 수익 창출에 대한 압박이 없었다. 언론사에게 컨텐츠 유료화는 수익 창출을 위한 중요한 사안이지만 텍사스 트리뷴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현재 텍사스 트리뷴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 저널리즘과 시민참여 저널리즘, 무료 저널리즘 어워드 제공, 생중계 이벤트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며 5년째 고공행진 중이다.
       
       텍사스 트리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수익원을 다각화한 것에 있다. 텍사스 트리뷴의 수익원 보면 개인독자, 기업광고, 재단수익, 구독료, 기부 등이다. 비영리와 영리를 추구하는 모든 단체는 다각적 시도를 해야 정글과 같은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이는 특히 비영리 단체에게 해당되는 솔루션이다. 그러나 특정 후원사 및 투자자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거나 자유로운 저널리즘을 실현하지 못할 때 트리뷴은 그들에게 당당히 "No"라고 말하며 해당 스폰서와 계약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기부금에만 기대지 않은 것이다. 텍사스 트리뷴에서는 기부금과 재단지원금으로 매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성장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기업 스폰서십, 이벤트, 그리고 독자 개인의 기부금 및 신디케이션(syndication)이다. 자산이나 기부에 완전히 기대지 않는다. 모두 다 자선단체나 개인으로부터 기부받은 것이다. 독립된 언론매체를 지원하려는 부호들이나 자선단체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워싱턴의 어떤 재단은 텍사스 트리뷴의 중립성 떄문에 기부한다고 한다.
       
       세 번째는 독창적이고 커스터마이즈된 기업 전략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비영리 단체는 영리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활발히 운영될 수 있다. 기존 광고 수익 모델 전략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한 스푼을 가미하면 새로운 수익모델 전략이 탄생한다. 텍사스 트리뷴은 홈페이지 내 스폰서 기업 지지 광고 등록, 이메일, 유료구독, 이벤트를 통해 수익을 확충하고 있다. 광고나 수입원에 제약을 받지만, 광고수입에 있어서는 전통적 방식을 10%로 제한한다. 그래서 유연하다. 구글 서베이는 구글에서 내놓는 기성 제품인데, 리서치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1년에 2명의 기자급여를 지급할 정도로 상당한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스폰서나 광고도 하지만 보통 유료광고와는 상당히 모양이 다르다.
       
       네 번째로 라이브이벤트를 많이 한다. 라이브 저널리즘이다. 텍사스 트리뷴은 매년 3일 동안 진행되는 대규모 이벤트 ‘텍사스 트리뷴 축제’를 개최한다. 또한 지역 내 핫 이슈 관련 패널 토론, 심포지엄이나 매주 한 번 정치인과 토크쇼 이벤트를 열고 인터넷 중계를 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기도 한다. 토크쇼 이벤트를 통해 관련 뉴스를 생산하고 새로운 스폰서십 제안 받을 기회가 생겨 실험적 저널리즘 실현 및 수익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이벤트 통해 나오는 자료 자체가 뉴스가 된다. 이런 이벤트를 했을 때 적게는 3000달러, 많게는 시리즈를 통해 10만달러를 벌었다. 이런 효과는 브랜드 효과도 있다. 이벤트는 유통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독자 맞춤형 수익모델에 있다. 소비자들은 다른 이유로 우리를 서포트한다. 개인 기부금(미디어의 실험적인 저널리즘 시도를 지지하는 개인의 찬조금을 주기적으로 기부하거나 일회성 기부금을 전달), 멤버십(미디어의 신념을 지지하거나 계속해서 함께하고자 하는 독자), 구독료(객관적이며 정치적 견해가 없는 컨텐츠가 필요한 독자)의 3가지 수입원이 있다. 첫 번째 개인 기부금은 특정한 이노베이션을 지원하는 사람에게 라이브스트리밍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모든 이벤트, 인터뷰 등을 볼 수 있고 선거 유세할 때 라이브 스트리밍을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크게 호응했다. 10만달러를 기부했고, 이런 아이디어는 실현됐다. 또 하나는 멤버십이다. 회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와 동참하고 싶고, 우리와 같은 클럽이 되고 싶은 사람은 텍사스 트리뷴의 독자 충성도 높으므로 여러 이벤트 티켓을 주고 그에 따른 특별 서비스도 많다. 학생의 경우 10달러, 큰 기관들이 평생 회원이 되려면 10만달러까지도 내곤 한다. 세 번째는 구독료다. 좋은 콘텐츠를 유료로 하겠다는 것이다. 텍사스 위클리라는 블로그는 진지한 전문가나 정치인들과 같은 것을 대상으로 한다. 1년 구독료가 35만달러로 편집인 급여를 충분히 충당한다.

       여섯 번째. 비즈니스와 편집 자체를 일치시켰다. 전에는 내가 기자였지만 지금 비즈니스를 담당하므로 특별히 중요하다. 뉴스룸도 중요하지만 재무도 중요하므로 입장을 일치시켜야 한다. 기자나 편집인이 이벤트 호스트를 하기도 한다. 비즈니스 쪽에서도 이런 에디터 미팅에 참여한다. 이렇게 서로 협력하고 또 동참하기에 텍사스 트리뷴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한 미디어의 뉴스룸과 비즈니스 팀이 따로 일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텍사스 트리뷴에서는 저널리즘 팀과 비즈니스 팀이 함께 공생하고 언론자유와 공공성을 공존하며 일하고 있다.

       일곱 번째. 원래 설립취지에 충실했다. 텍사스 트리뷴의 신념과 부합하지 않은 후원사나 투자금은 모두 거절했다. 아울러 초기에 텍사스 트리뷴이 세운 저널리즘 철학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틀어본 적이 없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패의 위험성이다. 모든 사람들이 시민중심 저널리즘을 핵심에 둔다. 신념이나 설립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후원금을 거절해왔다. 기사 철학에 영향을 주는 돈은 모두 거부해왔다. 그래서 명분을 유지해갈 수 있는 것이다.




      팀 그릭스 인터뷰


      “콘텐츠만 좋으면 무료 행사도 얼마든지 수익 창출 가능”


      ―뉴욕타임즈는 언제 근무? 
      내 커리어의 대부분은 뉴욕타임즈에서 보냈다. 2013년 9월까지 일했으며 마지막에 있었던 부서는 디지털 구독부서이다. 텍사스트리뷴으로 온지는 1년 가량 됐다.


      ―왜 뉴욕타임즈에서 텍사스트리뷴으로 갔나?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커리어적인 부분에서 본다면 텍사스트리뷴은 뉴욕타임즈에 비해서 매우 작은 회사이지만 혁신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실험적인 것을 많이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텍사스트리뷴에서 새로운 도전하고 싶었다.


      ―텍사스트리뷴의 행사는 어떤 것들이 있고 일 년에 몇 번 정도 하는가?
      우리가 진행하는 행사는 1년에 60개정도의 무료 행사가 있고 1개는 유료 행사이다. 유료행사는 3일 동안 진행되며 200명의 연사들이 함께한다. 이 행상에는 대략적으로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무료행사는 텍사스 전역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텍사스 사람들은 에너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에너지를 주제로 한 행사를 여는 것이다. 우리가 주최하는 무료행사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입법가들처럼 독자들이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과 1대 1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형식이다. 두 번째는 패널들을 초대해서 심포지엄 형태로 여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루 종일 열리는 행사인데 유료로 일년에 1번하는 텍사스 페스티벌의 작은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세가지 형태의 행사들을 무료로 연중 진행한다.


      ―그런 행사를 주최할 때 비용문제는 어떻게 해결 하는가?
      기부금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 재원은 아니다. 주 재원은 기업의 스폰서십이다.


      ―무료 행사를 통해서도 수익이 창출되는가?
      우리는 이러한 무료 행사에 많은 돈을 쓰진 않는다. 이러한 행사를 주로 텍사스의 대학캠퍼스를 이용해서 연다. 행사를 할 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음식 등인데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할 때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로 그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다른 비용은 최대한 줄인다. 기업 스폰서십으로 운영하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무료행사에서도 수익을 얻고 있다.


      ―유료행사의 매출규모와 수익구조를 알고 싶다. 참가비용은 얼마이고 참가하는 연사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는 행사에 참가하는 연사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나 후보자들을 대표하기 위해서 등 자신들의 필요로 인해 우리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강연을 한다. 3000명의 참가자들도 학생, 노인 등에 따라서 50~350달러의 참가비용을 다르게 받는다. 행사 진행 비용도 많이 지불하지 않는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에 운영비를 지불하지만 시설 사용비도 대학 캠퍼스를 사용하는 등 비용을 줄였기 때문에 행사에서 나오는 매출의 대부분은 수익으로 이어진다.


      ―텍사스트리뷴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SNS등로 기사를 유통시키는 특별한 전략이 있는가?
      아직은 SNS 쪽 전문화된 팀은 없지만 직원 중 젊은 사람들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새 독자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것을 잘 못했지만 최근에 컨슈머 마켓 디렉터를 새로 뽑았다.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를 티비 등 다른 매체와 연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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