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8> 대구의 육고기 맛


 

대구 육고기의 다양성과 저렴함은 어느 도시도 따라가지 못한다.

소고기는 물론 돼지고기와 닭고기 문화가 부위별로 먹는 방법에 따라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대구의 소갈비 문화


안동·영주·자인·산내·봉계·경주·언양 같은 유명한 한우단지들은 대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서울사람들이 살살 녹는 꽃등심을 최고로 친다면 경상도 사람들은 유독 졸깃하고 탄력감이 넘치는 갈비살을 좋아한다.
1968년 ‘실비갈비집’에서 시작된 동인동 찜갈비 문화는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양재기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쁙 넣은 찜갈비는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대구의 계산동·동산동이 있는 대신네거리 주변은 대구 섬유산업의 핵인 ‘실가게’들이 몰려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1950년대말부터 고깃집들이 들어서고 번성했다.
1961년 대구에 처음 갈비구이를 선보인 ‘진갈비’와 1970년대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갈비 명가들이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대구의 생갈비는 서울에 비해 거의 반 가격이다. 생갈비하면 마블링이 가득한 투 플러스 등급의 4번에서 8번 사이의 꽃 갈비를 연상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부위는 너무 지방이 많아 많이 먹기 힘들다. 적당히 마블링이 섞인 고기를 잘 숙성시키고 힘줄을 제거한 생갈비는 갈비의 가장 큰 특징인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식감과 고소함이 동시에 나는 최고의 생갈비를 대구의 생갈비 전문점에서 만날 수 있다.
동산동 생갈비 골목에는 원조집 ‘진갈비’와 더불어 37년이 넘은 ‘부창생갈비’가 유명하다. 오직 생갈비 하나만을 팔고 있는 명가다. 고기 맛도 좋지만 동산동 생갈비 집들은 한결같이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준다. 맛은 탁월하다. 생갈비와 된장찌개가 거의 한 메뉴로 생각해도 될 정도다.
대구에는 찜갈비, 생갈비 문화에 이어 새로운 갈비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안동에서 시작된 마늘 갈비 문화다. 대구의 안동갈비문화는 발생지 안동이 즉석에서 마늘을 양념해서 내놓는 것과 다르게 마늘과 참기름을 주로 사용하고 하루 정도 재워 놓은 것을 판다.


대구의 돼지국밥 문화
 대구의 돼지고기 문화는 소고기 문화보다 더 강력하다. 영화 <변호인> 덕에 돼지국밥에 관심이 높다. 부산이 가장 유명하지만 대구의 돼지국밥 문화도 넓고 깊다. 서성로 돼지고기거리는 대구 돼지국밥의 발상지다.
1940년대 ‘서성옥’이란 원조집이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영업을 시작한 ‘밀양 돼지고기 식당’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대구의 돼지국밥집이다. 뼈를 기본으로 하는 국물과 여러 부위의 살코기를 섞어 사용하는 것은 돼지국밥의 원형에 해당한다. 반찬은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새우젓, 된장, 고추, 마늘, 김치만을 사용한다. 밀양 돼지고기 식당 옆에 있는 ‘8번 식당’도 돼지국밥을 팔고 있지만 돼지국밥보다 삶은 돼지고기가 더 유명하다.
대구 비산동에 있는 ‘신마산식당’은 대구에서 손님이 가장 많은 돼지국밥 중 하나다. 입구는 좁은 편이지만 안쪽은 생각보다 넓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도 사람들은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다. 4,000원의 돼지국밥 가격은 경상도에서도 가장 싼 편이다. 메뉴판 맨 위에 있는 ‘고기밥’을 시키면 삼겹수육 한 접시와 국물이 밥과 함께 나온다. 부산의 수백과 같은 메뉴다. 쫀득거리는 껍질과 살코기의 조화도 비교적 좋다. 돼지국밥을 시키면 얇고 날렵한 그릇에 구수한 국밥 한 그릇이 넘치기 직전까지 담겨 나온다. 국물 위에 가득한 고기와 파ㆍ양념장이 밥 위에서 넘실거린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과 깔끔한 맛이 이 집을 대구의 돼지국밥 명가로 만들었다.
비산동에는 신마산식당과 더불어 좀 더 비싸고 고급스런 ‘시골돼지국밥’도 유명하다. 돼지국밥 골목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봉덕시장 돼지국밥 골목이다. 대구의 봉덕시장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시장이다. 1970, 80년대의 전성기가 지나고 지금은 재래식 시장이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좀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고, 구제물품이나 외국물품을 파는 가게들도 있다. 오래된 시장의 모습을 잘 간직한 시장 한 켠에는 돼지국밥 골목이 있다. 좁은 골목에 식당 간판과 솥과 고기들이 난장처럼 들어선 가장 깊은 곳에 거칠고 투박한 돼지머리는 졸깃한 식감이 장점이다. 돼지 뼈와 머리로 우려낸 깊고 진한 국물이 된장과 고추장에 섞여 고소하다.
1970, 80년대 시장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PX 물품으로 흥청거릴 때 시장 사람들과 주변 노동자들이 국밥 골목의 단골 손님들이었다. 지금은 택시기사나 대리기사들이 새벽에 주로 찾는다. 밥과 국을 따로 주는 대구의 따로 국밥의 영향 덕에 최근 대구의 돼지국밥들은 따로 돼지국밥을 파는 집들이 많지만 봉덕시장의 돼지국밥 집들은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토렴한 밥을 국에 넣어 판다.
봉덕시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명덕시장에는 가장 많은 돼지국밥집들이 몰려있다. 명덕시장의 돼지국밥은 뼈 국물과 앞다리 살 같은 가장 대중적인 돼지국밥을 판다. 고명이나 꾸미가 거의 없이 손님들이 자신의 입 맛에 맞춰 먹게 한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봉덕시장같이 된장을 기본 양념으로 한 ‘파크국밥’같은 돼지국밥 명가들은 대구 곳곳에 있다.

수많은 고기 골목들
 북성로(칠성시장)에는 돼지불고기골목이 있다. 애벌구이한 돼지고기를 석쇠에 올려 연탄불 위에 구워먹는다. 고기와 함께 양은냄비 우동은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후식이다. 얇게 썬 돼지고기를 진간장으로 양념해 석쇠에 올려 바싹 구워주는 북성로식 돼지불고기 집들은 두 곳이 남았지만 불 맛은 여전하고 가격은 저렴하다. 돼지불고기로 소주한잔 걸치고 우동을 먹는 방식은 대구식 선주후면(先酒後麵) 문화다.
대구에서 가장 독특한 음식골목으로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삼십여 개의 가게들이 평화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닭똥집은 사실 머리 바로 밑에 있는 닭 모래주머니다. 이빨이 없는 닭은 음식을 이 모래주머니에서 잘라 삼킨다. 똥집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부위고 미식의 최종단계인 식감으로 먹는 부위다. 졸깃한 닭똥집을 튀김가루와 튀겨낸 고소하고 졸깃한 닭똥집의 가격은 파격적으로 싸다. 생맥주와 한 몸처럼 잘 맞는 음식이다.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보다 더 거대한 고기골목은 안지랑 양념곱창구이 골목이다. 길가 양 옆으로 50개가 넘는 가게들에서는 양념곱창을 판다. 지하철 역 입구에서 시작되는 양념곱창 골목보다 뒤 켠에 있는 포장마차 형 양념곱창 거리가 더 유명하다. 저녁이면 일대는 거대한 고기 굽는 마을로 변한다. 맛보다는 양으로, 음식 자체보다는 술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대구 의료원 옆 골목에는 ‘대구의 명물 곱창골목’이 있다. 옛날 도살장이 있던 탓에 만들어진 곱창골목은 생곱창에서 최근에는 곱창전골로 주 종목이 바뀌었다.
졸깃한 맛이 일품인 돼지 막창도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상동 근처와 대명동 구 내당주차장 인근, 경대 북문 근처의 막창골목이 유명하다. 대구공항 건너편 지저동에는 감자탕 골목이 있다. 대구의 유서 깊은 칠성시장에는 족발골목이 있다. 저렴하고 맛있는 족발은 관광객의 몫이 아니라 대구 사람들의 저녁 술상이다. 대구의 고기집들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일정하다. 대구에 가면 고기를 먹어야 손해 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