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8회>


50세는 지천명(知天命)으로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나이다. 15세 지학(志學·학문에 뜻을 둠)을 지나 16세 과년(瓜年·혼기에 이른 여자), 20세 약관(弱冠·남자는 갓을 쓰는 나이, 여자는 꽃다운 나이 방년·芳年), 30세 이립(而立·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40세 불혹(不惑·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을 지나 오십이다. 앞으로 살날은 70세 고희(古稀·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음), 71세 망팔(望八·여든을 바라본다), 80세 산수(傘壽·팔순)다.

나이가 들면 모든 계절이 새롭다. 봄은 겨우내 단단히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며 모든 꽃을 깨우니, 일(日)이다. 여름은 봄의 입김을 영양분 삼아 대지를 끈끈하게 적시니, 물(水)이다. 가을은 모든 게 농익으니 화(火)요, 겨울은 화농을 잠재우니 월(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지천명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것이다. 일명 관조다. 우아하고 곱게 늙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법을 알고, 사는 이치를 깨달아 달게 늙는 것이다.

겨울이 가면 곧 봄?여름·가을이 온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진눈깨비 같은 나날이다. 봄인데도 겨울이고 여름인데도 겨울이다. 미추하지 않은 삶이 무수히 흩날린다. 미혹(迷惑)되지 말아야 할 불혹(不惑)의 49년을 살면서, 깨닫는다. 무엇인가에 미혹되지 않은 게 아니라, 미혹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 모든 기준은 기원전 500년 전후 공자님이 ‘가라사대’로 남겼다. 그런데 그때의 수명과 지금의 수명은 천양지차다. 나이 오십이면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애송이일 수도 있다. 50세에 이르러서야 사리를 분별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마흔에 그 ‘작업’을 끝낸 것이다. 다만 오십은 ‘불행’한 일이 ‘다행’한 일로 바뀔 수 있다는 가설을 꿈꾸는 나이다. 증오와 보복의 감정을 버리고 묵상할 나이다.

자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소도 팔고 논도 팔던 아버지가 슬퍼보였는데, 이제 그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슬프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눈물부터 나고, 웃으라고 하는데도 몸의 열린 구멍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시각장애자로서 미국 백악관의 차관보에 오른 강영우 박사가 대충 살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지천명(知天命)이다. 그는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실명한 후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초의 맹인교수가 되어 맹인도 사회적으로 떳떳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결심한 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지천명’을 했기에 점자를 배워 대학에 가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맹인으로 살지만 맹인들의 빛과 소금이 됐다.

노안(老眼)이 찾아오는 것은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가까이 있는 것을 너무 세밀하게 보지 말고 멀리 보라는 계시다. 보여도 못 본체 하라는 의미다. 젊어서, 나무를 보는 삶이었다면 노안이 온 후부터는 숲을 보는 삶을 살라는 거다. 인도에서도 50세를 ‘바나플러스’라고 부른다.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말인데,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것을 마주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한국편집기자협회가 곧 ‘지천명’이 된다. 1964년 9월 28일 신문경쟁력 강화와 기자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창립한 협회가 내년에 50주년을 맞는 것이다. 이제 전국 52개 신문?통신사 소속기자 1000여명을 회원으로 품고 있는 국내 최고 권위의 사단법인이 됐다. 앞서 ‘지천명 설레발’을 친 것도 다름 아닌 협회의 새로운 50년을 향한 사명을 견지하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는 사족(蛇足)이고, 앞으로 걸어야할 50년이 더욱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물망초심(勿忘初心)’과 ‘초심불망(初心不忘)’을 권면한다. 처음 할 때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라는 것이고, 초심을 유지하면 절대 일을 망치지 않음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은 기본을 돌아보는 것이다. 회원 간의 통섭, 지역 간의 통섭이다. 편집의 눈높이, 편집의 상식이라는 입장에서 새 출발했으면 한다.

50주년을 미리 경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