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7회>

산이 불탄다. 추일서정으로 붉게 타고 있다. 산자락, 능선, 준령마다 단풍의 색도가 절정이다. 여인의 입술보다 붉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홍조를 띠게 한다.

단풍은 산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하루 40m씩, 북에서 남으로 25㎞씩 내려온다. 그러니 가을의 속도는 25㎞인 셈이다. 설악산에서 연지곤지를 찍은 단풍은 오대산 치악산을 거쳐 소백산 월악산 덕유산 속리산 내장산에 이르며 새색시 뺨처럼 붉어진다. 그리고 11월 마지막 밤, 가야산 주왕산 월출산에서 제 몸을 불사르고는 세상과 작별한다.

단풍은 ‘몰아(沒我)의 경지’라 할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감쳐진 맹렬한 고난은 눈물겹도록 시리다. 단풍은 탄생을 위한 나뭇잎의 소멸이다. 기온 변화에 따라 나뭇잎 색소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풍의 현란한 색은 생존을 위한 그림자라고 한다. 나무는 기온이 떨어지면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라는 세포층이 생겨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하는데, 그 틈을 타 숨겨져 있던 색소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젠타(Magenta)의 분열이다. 사이언(cyan)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치명적인 옐로(yellow)을 뒤섞어 핏빛 허리케인을 만드는 절묘한 행위예술이다. 겨울에 잎을 달고 있는 건 소득 없이 식량을 축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무 스스로 양분통로를 막아 잎을 떨군다. 유지비용을 줄여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려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채비인 셈이다.

촛불이 자신을 소진해가면서 주위를 밝게 하는 것처럼 나뭇잎의 생애도 살신성인이다. 단풍이 진정 아름다운 까닭은 자신을 태워 새 생명을 잉태하기 때문이고 ‘아름다운 늙음’이기에 그렇다. 자기 할일을 다하고 떨어지는 희생이기에 추하지 않은 것이다. 낙엽인들 제 몸이 죽어 화석(化石)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죽었지만 영원하고 싶은….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듯 황혼의 낙엽이란 멋지고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단풍은 무욕이나 빈손, 빈 마음, 내려놓음과 동의어다. 버리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요, 시들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겸양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풍은 우리에게 자신을 비우고 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가지라고 깨우친다.

단풍잎 떨어진 자리마다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멀게는 봄마저 기웃거린다. 나무는 당장 흰 눈과 삭풍을 견디기 위해 이불을 덮고 내의와 장갑으로 무장한다. 그것도 모자라 오리털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 이불과 내의와 장갑과 오리털코트가 단풍의 주검이다. 그런데 우리내 인생은 어떠한가. 여름과 겨울을 박대하고 오직 봄과 가을만 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여름을 잘 견뎌야 가을이 오고, 겨울을 잘 버텨야 봄이 온다. 달콤함과 쓰림의 간극은 결국 ‘비움’의 차이다.

죽으면서까지 예찬 받는 한 잎의 생애처럼 과연 우린 멋지게 살고 있는가. 행여 나무에 매달려 깜깜한 관로 속 영양분만 축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때가 되면 떨어져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저열한 인간은 ‘낙엽’이 되지 않기 위해 밤에도 광합성을 하고 싶다. 바람이 불어도 제 잎은 온전하고 다른 잎이 떨어지길 바라고, 아직은 할 일이 남았다며 애써 초록색을 드러낸다.

절정기에 들어선 낙엽 가로수 길을 걷는다. 무심히 발길에 채인 낙엽 한 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차라리 쓸쓸한 척, 괴로운 척 인상이라도 구겼으면 하지만 그는 너무도 정직하게 미소 짓는다. 오히려 나무에 매달려 생(生)의 끝을 붙잡고 있는 단풍 한 잎이 더 처연하다. 언젠가는 그도 생몰의 흔적만 남긴 채 떨어질 것이다.

새벽녘 ‘통풍’같은 열병을 앓았다. 대체로 편도선이 부어서 발생하는 열이다. 인간의 몸이 가장 뜨거워봤자 40도를 오르내리는 게 고작인데 짐작컨대 40도를 넘었다. 열은 정수리에서 붉게 타올라 얼굴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 열이 하반신 바닥까지 가면 단풍이다. 치열하게 앓고 치열하게 비우기로 했다. 소멸과 탄생의 과도기, 가을이 기어코 가고 있다. 이 가을이 가고 나면 삭풍이 불겠지만, 온기를 지니려면 그 쓸쓸함의 대척점까지도 보듬어 안자. 단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