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6> 안동

 칼국수로 유명한 안동이지만 정작 전문식당은 별로 없다. 제사가 많은 고장답게 미리 면을 만들어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국물에 말아내는 가정식 메뉴다. 옥동손국수 창업자가 칼국수 면을 만들고 있다.

가정식이라 식당이 없는 안동국수

안동은 조선 시대 내내 정치의 중심지였다. 조선말 안동 김씨들은 60년간 권력을 장악하고 세도를 누렸다. 권력은 사라졌지만 양반가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음식 문화는 여전히 다양하고 강력하게 남아 있다. 조선시대 음식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조리서들인 안동 출신의 유생 김유가 쓴 <수운잡방>(1552년)과 정부인 안동장씨가 기록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1670년경)은 안동의 요리법을 기록한 책들이다. 제사가 많았던 안동 사람들에게 음식 기록은 필수적이었다. 내륙에 있는 안동이지만 바다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안동이 가진 권력을 실감할 수 있다. 안동이란 이름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음식은 안동칼국수다. 그러나 정작 안동에 가면 칼국수 전문점이 별로 없다. 오랫동안 안동에서 칼국수는 외식이 아닌 가정식이었다. 제사가 많은 안동에서 미리 면을 만들어 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국물에 말아 내는 건진국수는 필요가 낳은 산물이다. 안동은 특이하게 경상도에서 밀이 많이 나던 고장이었다. 안동산 밀에 콩가루를 섞은 부드러운 면발은 안동 국수의 공통된 특징이다. 가게마다 집마다 비율이 다르지만 대개 밀가루와 콩가루를 7:3정도로 섞는다. 안동시청 주변에는 안동김씨?권씨?장씨의 조상묘인 태사묘가 있다. 태사묘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선미식당’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 식당이다. 하지만 안동의 긴 역사와 다르게 1974년에 창업했다. 처음 문을 열 때 누가 칼국수를 식당에서 먹겠나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주문을 하면 커다란 양은쟁반에 칼국수와 조밥, 김치와 된장 그리고 젓갈?마늘쫑 튀김 같은 반찬들이 나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면 음식이 아닌 가정식 백반에 가까운 한 상 차림이다. 안동의 신 시가지인 옥동의 ‘옥동손국수’는 선미식당보다 조금 더 세련된 맛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동의 칼국수 문화는 서울에 진출해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양반가에서 먹던 사골국물에 말아낸 부드러운 면발과 문어 숙회 등을 함께 먹는 문화는 정치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곧이어 대중들에게 까지 확산된다. 안동 최고의 국수는 수박향이 나는 초여름 은어로 우려낸 국물로 만든 은어국수였지만 이제는 전설로만 남았다. 계절별로 국수 먹는 방식도 조금 달랐다.  여름에는 건진국수를 주로 먹었고, 겨울에는 국수를 넣고 끓여낸 국물에 애호박?배추 같은 채소를 넣어 먹는 누름국수 또는 제물국수를 많이 먹었다.

전국 문어 소비량의 30% 차지

칼국수와 더불어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은 문어文魚다. 안동의 제사상에 문어가 빠지는 경우는 상상 할 수 없다. 글월 ‘문’文자를 전면에 내세운 문어는 안동의 선비문화와 만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문어의 비상한 머리와 바위틈에 숨는 은둔적 성격이 선비를 닮았다는 것에서, 강력하게 붙는 문어 빨판이 합격을 기원하는 상징으로도 실제 사용되었다. 그래서 문어의 이름을 글과 관련해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문어는 민머리?대머리를 뜻하는 ‘믠’’에서 나온 말이다. 문어의 생김새를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자 표기를 문어로 쓰면서 생긴 오해다. 안동의 중앙시장에는 문어를 삶아 파는 전문점이 14개에 이를 정도로 많다. 전국 생문어의 30%인 400t 정도가 안동에서 소비된다. 중앙시장에서 문어를 삶아 파는 가장 오래된 집 중 하나인 ‘중앙문어’는 안동은 물론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중앙문어를 안동에서 직접 먹을 수 있는 곳은 시장 주변에 있는 ‘동털실내포장’이다. 안동에서 문어는 제사를 거친 후 먹는 음식인 탓에 숙성된 문어를 먹는다. 5kg 이상의 커다란 문어를 삶아 낸 뒤 찬물에 담가 식히고 다시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켜 먹는다. 수분이 적당히 빠지고 살짝 숙성된 문어는 겉은 젤리처럼 부드럽고 속은 육회처럼 졸깃하다. 안동의 문어는 오랫동안 묵호나 울진에서 잡힌 것들이었다. 안동의 간고등어, 상어를 숙성시킨 돔베기와 숙성 문어는 해안가에서 소금에 절이거나 삶은 뒤 곰배령같은 험한 길을 넘어 돈이 넘쳐나던 안동으로 왔다. 걸어서 꼬박 하루나 하루 반 나절이 걸리는 시간 동안 고등어는 간이 베고 문어는 숙성이 된다. 일년에 스무 차례가 넘는 제사 때문에 생긴 또 다른 음식 문화는 헛제삿밥이다. 비빔밥의 가장 강력한 기원설은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들을 한 데 모아 비벼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헛제사밥의 먹는 방법과 유래도 같다. 제상에 올렸던 나물과 탕채를 간장에 비벼먹는 문화가 선비들의 야참이 되었고 외식으로 까지 발전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1925년)에는 “평상시에는 제삿밥을 먹을 수 없으므로 제사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해 비빔밥을 해먹은 데서 헛제삿밥이 생겨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안동 헛제삿밥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까치구멍집’은 세련된 헛제삿밥으로 유명하다. 헛세삿밥을 먹고 후식으로 먹는 안동 식혜도 빼놓을 수 없다. 엿기름?무?생강?고춧가루로 만든 달고 매운 식혜는 겨울이 제철이다. 안동에 그렇다고 제사와 관련된 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값싸고 푸짐한 찜닭 전국 평정

안동의 외식 갈비문화는 1970년대 초반 ‘구서울갈비’가 마늘 양념한 생갈비를 팔면서 시작된다. 안동갈비는 안동을 넘어 대구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동식 갈비는 대구와 달리 양념을 미리 재워놓지 않고 다진 마늘?간장 등을 즉석에서 버무려 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의 안동갈비문화는 마늘과 참기름을 주로 사용하고 하루 정도 재워 놓는 것이 안동의 갈비문화 조금 다르다. ‘동부한우갈비’도 유명하다. 안동 중앙시장에는 안동 음식 기행에 빼놓으면 안 되는 쇠고기 국밥집이 있다. 질 좋기로 소문난 안동 한우를 파는 허름한 정육점과 같이 운영하는 식당인 ‘옥야식당’의 국밥은 한국인의 국과 밥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술을 집약한 듯 한 맛이 난다. 국을 시키면 입구에서 열심히 썰고 있는 고기가 국에 가득 담겨 나온다. 붉은 색이 감도는 국은 맵지 않고 달다. 밥을 부르는 따스한 국물에 잘 익은 고기의 조화가 좋다. 안동에 한우 음식 문화가 발달한 것은 전국에서 최정상급 품질의 안동 한우에 기인한다. 2013년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실시한 전국 한우 등급 평가에서 1등급 이상 고급육 판정 한우 출현율이 75.1%인 봉화군에 이어 안동은 74.7%로 2위를 차지했다. 한우를 기반으로 한 소고기 문화와 더불어 2000년대 초반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고기문화가 안동에는 하나 더 있다. 달고 매콤한 맛에 푸짐함이 곁들여진 안동찜닭은 안동 재래시장에서 탄생한 소박한 서민 음식 문화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표적 사례다. 안동찜닭은 1980년대 초반 안동 재래시장(현재 안동구시장) 통닭골목에서 생겨난 비교적 새로운 음식문화였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닭을 통으로 요리해서 먹었다. 닭이 본격적인 외식으로 성장하는 1960년대 전기통닭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 말 미국식 닭요리법인 프라이드 치킨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닭을 조각 내 조리하기 쉽고 원하는 부위만을 파는 전략 덕에 1980년대 통닭은 조각 닭에 자리를 내준다. 안동찜닭은 시장통닭의 변화 과정 중에 생겨난 음식 문화다.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말린 청양고추, 양파, 감자, 오이, 시금치, 양배추 등을 넣어 간장으로 간을 한 후 400도의 고열에서 순간적으로 끓여내는 안동찜닭은 중국 요리와 많이 닮아있다. 고온과 짧은 조리 시간 덕에 야채의 맛이 살아있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은 안동찜닭은 1980년대 안동을 평정하고 2000년부터 전국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는다.

잔치와 제사에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술이다. 안동에는 소주의 어원인 ‘아라키’란 말도 남아있을 정도로 소주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물과 누룩을 만드는 밀, 멥쌀로만 만드는 45도의 안동소주는 독하면서도 목넘김이 좋다. 안동 댐 주변에서 잡은 붕어로 만든 붕어찜과 안동소주는 멋진 조화를 이룬다.  13세기에 일본 정벌을 위해 개성?안동?제주에 몽고의 전진기지가 세워졌을 때 소주주조법이 들어 온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안동 양반가의 가양주家釀酒로 전승돼 온 안동소주가 대량 생산된 것은 1920년대다. 일본의 흑국黑麴을 이용한 안동의 ‘제비원 소주’는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1964년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가 금지되면서 이마저 사라졌지만 1990년 민속주로 지정되면서 안동소주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대한민국 최고 소주로 살아남았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