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5회> 나주

 나주 五味중 하나인 송현불고기는 음식이 아니라 가게 이름이다.

은근한 배의 단맛이 감도는 고기에 된장국을 곁들인 맛이 일품이다.

추울수록 홍어는 더 쫀득해진다

찬바람이 불면 홍어는 쫀득해진다. 곰삭은 홍어를 먹고 지글거리는 돼지불고기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해장으로 맑고 진한 곰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찬 바람 부는 초겨울 나주다. 영산강이 서해바다와 나주를 연결하고 있던 탓에 나주는 내륙에 있지만 바다로 통하는 배들이 들락거렸다. 조선 초기 세종시대에 이미 장이 열렸던 나주와 남도의 물산이 모여들던 영산포구는 일제 강점기까지 번성했다. 남도의 너른 들판에서 나는 산물들이 영산포구를 통해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목포로 옮겨져 일본으로 건너갔다. 4대강 공사 때문에 영산포는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1915년에 세워진 등대는 여전히 건재하다. 1978년 영산호 물막이 공사로 영산포로 들어오는 배가 끊기자 등대는 그 기능을 상실했고 영산포의 영화도 서서히 저물었다. 등대 바로 뒤로 나주 홍어의 거리가 있다. 나주와 영산포를 잇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30여 개가 넘는 홍어 전문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홍어 삭는 냄새가 거리에 진동한다. 사거리를 조금 지난 길 한 켠에 ‘영산홍가’가 있다. 가게 주인 강정희씨는 영산홍가 주인이자 최고의 홍어전문가 중 한 명이다. 투박한 홍어를 세련된 솜씨로 만들어 파는 이 집의 홍어정식이나 홍어애국은 유명하다. 홍어를 포로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프아그라보다 부드러운 식감을 지닌 홍어 애를 넣고 끓여낸 홍어애국은 홍어특유의 살짝 아린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영산이란 고려말 왜구 때문에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이 실시되면서 흑산도 영산에서 나주로 온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에 영산이란 이름을 붙이고 몰려 살았다. 조선 건국 후 왜구가 소탕되자 영산사람들은 대부분 흑산도로 돌아가고 일부는 남았다. 흑산도에서 많이 잡히던 홍어는 이후 흑산도와 영산포 사람들을 통해 전라도 일대에 유행한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오는 보름 정도의 긴 뱃길에 홍어는 삭는다. 푹 삭은 홍어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홍어가 삭아도 상하지 않는 것은 요산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암모니아 덕분이다. 암모니아는 냄새는 고약하지만 인체에는 무해하다. 잡균은 암모니아를 이겨내지 못한다. 흑산도에 유배 중이 던 정약전이 1814년에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먹는다’라고 적혀 있다. 예부터 홍어 산지인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주로 싱싱한 회로 먹었고, 중간 기착지인 목포에서는 중간 정도 삭힌 홍어를 삼합으로 즐겨 먹었다. 영산포에서는 가장 많이 삭힌 홍어를 먹어왔다. 현재 영산포는 삭힌 홍어의 생산과 판매의 중심지다. 나주에는 정약용과 정약전에 관한 일화가 꽤 많이 남아있다. 1801년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떠났다. 동생 정약용은 강진으로, 형 정약전은 흑산으로 유배지가 정해졌다. 한양을 출발한 형제는 나주 율정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율정주막에서 헤어진 후 형제는 영원히 보지 못한다. 율정 주막 자리는 지금 동신대학교 근처 831번 국도변에 있다.

나주 五味 송현불고기

옛 율정주막 근처에 나주의 오미(五味) 중 하나로 선정된 ‘송현불고기’집이 있다. 나주 오미는 나주 곰탕,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 나주한정식, 송현불고기다. 송현불고기는 음식 이름이 아니라 가게 이름이다. 그것도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한옥이다. 나주 한정식을 대표하는 ‘사랑채’와 송현불고기를 유명하게 만든 건 간장으로 양념을 한 돼지불고기다. 송현불고기집의 낮고 좁은 좌석에 자리를 잡고 돼지불고기를 시키면 멸치 국물과 구수한 시래기 가 된장과 잘 녹아 든 된장국이 먼저 나온다. 식당 음식 같지 않은 경쾌한 국물을 홀짝거리고 있으면 얇게 썬 돼지불고기가 번들거리는 외관을 하고 나온다. 단맛이 감도는 고기는 탄력적이다.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단맛을 내는 것은 나주의 명물 배다. 배는 오래 전부터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천연 연육제로 쓰였다. 은근하고 기분 좋은 배의 단 맛이 돼지고기 맛을 기품 있게 끌어 올린다. 이 집은 구멍가게를 겸하고 있다. 물건을 파는 작은 카운터 뒷켠으로 가면 돼지고기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커다란 대야에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생강, 양파, 설탕, 배를 재워 숙성시킨 돼지고기가 가득 담겨있다. 34년 정도 장사를 해온 이 소박한 집에서 돼지고기에 막걸리 한잔을 먹다 보면 200년 전 정약용 형제가 마지막 밤을 보낸 율정주막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식객 반기는 곰탕 삼총사

송현불고기와 더불어 나주를 대표하는 식당 중 하나인 사랑채는 송현불고기와는 다른 외관을 지녔다. 전남 문화재자료 153호로 지정된 우아한 한옥인 박경중 자택 한 켠에 소박한 한정식을 파는 공간이 사랑채다. 남도 한정식집중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내놓지만 음식을 전부 직접 만들어 파는 사랑스런 집이다. 이 집의 30여 가지의 한정식 음식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연탄으로 구운 간장돼지불고기다. 송현불고기와 사랑채의 돼지불고기는 품격이 있다.

하지만 나주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역시 곰탕이다. 먹을 때 마다 균형이 잘 맞는 나주곰탕은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맛을 선사한다. 나주 곰탕 명가들은 나주 매일시장 주변에 1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나주곰탕 삼총사인 ‘하얀집’과 ‘남평집’, ‘노안곰탕집’은 같은 듯 다른 맛을 낸다. 묵직하고 진한 맛을 내는 노안곰탕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국물의 남평집, 그리고 두 집의 국물을 반반씩 섞어 놓은듯한 하얀집의 육수는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국물 만드는 방식은 거의 동일하지만 집마다의 약간의 차이가 손님들에게는 크게 느껴진다. 육수는 소뼈를 끓여 뿌연 국물이 우러나기 시작하면 뼈를 건져 내고 그 국물에 머리고기, 양지머리, 사태살, 혀 등을 넣고 두, 세시간 정도 더 끓여낸다. 기름기를 말끔히 제거해야 국물이 맑고 경쾌해진다. 살코기를 넣고 끓이면 육수는 탁한 색에서 맑은 색으로 변한다. 이 국물에 식은 밥을 넣고 토렴을 하면 진하고 맑은 곰탕 한 그릇이 완성된다. 다른 지역의 설렁탕처럼 소의 부산물인 소머리와 머리고기, 뼈, 내장을 넣고 끓인 음식을 팔다가 1960년대 들어 지금같이 뼈와 살코기 부위가 섞인 맑고 진한 국물의 나주식 곰탕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란 게 현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곰탕과 설렁탕은 이름은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한 탕반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곰탕은 살코기 중심의 맑은 국물을 지칭하고, 설렁탕은 뼈 중심의 탁한 국물에 많이 쓰이지만 나주곰탕의 육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 곰탕과 설렁탕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나주곰탕은 처음에는 뼈를 고아 탁한 국물을 만드는 설렁탕 방식으로 육수를 만든 뒤 그 국물에 살코기를 넣어 탁한 국물을 맑게 만드는 곰탕 방식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물의 탁함과 맑기는 재료의 차이에서도 오지만 끓일 때의 불의 세기의 조절과 시간도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설렁탕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97년 <한영자뎐>이 처음이고 곰탕은 1950년이 넘어서 처음 쓰인 말이다. 곰탕은 이전에 곰국이란 말로 쓰였다. 1950년대 이전에 곰탕이란 말은 곰팡이와 같은 뜻이었기에 곰탕이 음식이름으로 쓰인 적이 없었다. 식사 때는 물론이고 밥 때를 지난 시간에도 세 집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얀집은 이름처럼 하얀 페인트로 칠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커다란 가마솥 2개와 기름을 걷어내는 통이 있다. 그 옆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고기를 썰고 밥을 토렴해서 곰탕을 말아낸다. 6.25 전쟁 직후부터 곰탕을 팔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평할매집은 양도 많고 국물도 진하고 센 편이다. 거기에 양파와 마늘, 깨와 고춧가루, 후춧가루가 더해져 국은 다른 집에 비해 조금 달고 약간 맵다. 남평할매집 간판에는 ‘since 1960년’이란 문구가 붙어있다. 노안집은 1960년대에 영업을 시작했다. 세 집 중에서 가장 맑고 순한 국물이 나온다. 세 집 모두 수준이 높다. 어느 집을 들러도 전국 최고 수준의 곰탕을 먹을 수 있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