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8>올드미디어시대의 전통적 가치: 게이트키핑(gatekeeping)

 

‘모든 뉴스가 모두 보도 되지는 않는다.’

어떤 뉴스가 활자화되기까지는 언론사 내부에서 여러 관문(gate)을 거치게 된다. 각각의 관문에는 여러 평가 요인이 개입하는데, 이 변인에 따라 어떤 콘텐츠는 확대 재생산되고, 어떤 콘텐츠는 차단되며, 어떤 콘텐츠는 내용과 형식이 변형되기도 한다. 이렇게 각각의 관문에서 뉴스가치를 측정해서 취사선택하는 행위를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라고 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라고 부른다. 게이트키핑의 핵심 과제는 수많은 뉴스 중 특정 뉴스를 선택해서, 그것을 어떻게 미디어 의제로 만들어서, 얼마나 크게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느냐의 문제이다. 게이트키핑은 특정 콘텐츠를 수용자에게 어떻게 의미화 할 것인가를 정하는 언론사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게이트키핑 구조는 언론사와 수용자 관계가 지극히 수직적이다. 게이트키퍼가 다양한 관문을 거쳐 완성시킨 미디어의제를 수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공급자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목적이나 입장에 따라 어떤 사건사고의 사실이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미디어의 주류 플랫폼이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권력이동’하면서 게이트키핑 과정도, 게이트키퍼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콘텐츠의 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면 인터넷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나, 무한정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콘텐츠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하게 되었다. 전통 미디어에서는 내부 게이트키퍼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정보통제자 역할을 했다면 쌍방향적이고 개방적인 인터넷에서는 정보의 안내자 역할이 더 적합하게 되었다.

인터넷 미디어의 영향력은 개별 언론사에서 공급해준 콘텐츠 파워와 수용자 참여가 어우러져 완성된다. 인터넷 수용자는 ‘생산적 소비자’로서 이슈를 만들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즉 전문 언론사와 언론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이트키핑과 달리 인터넷 큐레이팅은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각계각층 이용자들이 어떤 뉴스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이슈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트키핑은 개인이나 조직에 의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게이트키핑은 언론사의 수많은 경험과 오랜 세월 쌓인 관행의 결정체로서 허술해 보이지만 정교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명확한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개인 차원의 게이트키핑

기자 개인은 게이트키핑 연구의 최소 단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게이트키핑 작업은 게이트키퍼 개인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사 기자들은 입사를 하게 되면 선배들로부터 기사작성법 외에 소속 언론사의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 그리고 논조 등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수습 과정은 1차 게이트키퍼로서 조직의 구성원이 조직 전체의 정체성을 체득하고 이식받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 수많은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쏟아지는 콘텐츠를 편집할 때 무엇이 뉴스가 되고, 무엇을 돋보이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하지만 아무리 수습과정을 통해 소속 언론사의 이데올로기를 체득했다고 할지라도 게이트키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고 고칠 수도 없다. 게이트키퍼 개인의 성향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된 사고모델, 주관, 가치, 사회 속에서의 역할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개인의 가치판단과 행동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언론사 게이트키퍼로서의 개인은 조직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겠지만 뉴스가치를 측정하고 게이트키핑할 때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태도 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2.커뮤니케이션 관행 차원의 게이트키핑

게이트키핑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하는 일이지만 언론사 조직 안에는 게이트키핑의 흐름을 규제하고 제약하는 규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일련의 규칙이나 가이드라인을 ‘커뮤니케이션 관행’이라고 부른다. 이 관행은 기자들이 게이트키핑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형, 관행, 그리고 반복된 습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관행 차원에서 가장 많이 게이트키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마감시간과 지면 제약 등이다. 게이트키퍼가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급박한 시간에, 한정된 지면에 실을 최선의 콘텐츠를 고르고, 그 기사와 사진에 제목을 달아 지면을 편집하는 것은 고도의 전략적 행위이다. 그 전략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숙련 과정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 관행 차원의 연구는 게이트키퍼 개인의 특성보다는 게이트키퍼 개인이 속한 외적 상황에 의해서 게이트키핑이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편집기자가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뉴스가치 측정을 잘못해 빠뜨릴 수도 있고, 제한된 지면 때문에 부득이하게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편집현장에서 이러 아픈 경험은 매일매일 되풀이되고 있다.


3.사회-제도 차원의 게이트키핑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게이트키퍼 개인이나 그 자신이 속한 조직,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행에 의해 게이트키핑의 질적-양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 조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 사회-제도차원의 게이트키핑 연구이다. ‘직간접’이란 언론사나 기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출입처 등 취재 대상과 광고주를 의미한다. 대부분 보도 활동은 언론사와 취재 대상 사이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이해관계와 영향관계, 그리고 역학관계이다. 이러한 관계에 의해 게이트키퍼는 뉴스가치를 측정하고 콘텐츠를 취사선택할 때 외부 압력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콘텐츠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관계’라는 변수에 의해서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어떤 콘텐츠는 휴지통으로 버려지기도 하고 어떤 콘텐츠는 본래의 가치보다 과대포장 되기도 한다.

슈메이커(Shoemaker)는 이렇게 게이트키핑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나 집단을 크게 정부, 광고주, 이해집단, 권력, 경쟁 매체 등으로 구분했다. 먼저 정부 소스(source)는 기자들이 모든 사건사고 등을 직접 취재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경우 기자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에서 나온 뉴스는 상대적으로 공신력이 높고 전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광고주나 이해집단의 압력은 특정 언론사에 광고나 협찬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부 기업들은 이러한 금전적 후원을 통해 언론사 콘텐츠를 통제하기도 한다. 또한 권력과의 관계는 언론의 영원한 숙제이다. 정부권력은 언론을 통제하고 탄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중요한 외생변수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경쟁 매체와의 관계는 누가 더 강력한 미디어의제를 설정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미디어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의 문제다. 실제로 경쟁 매체의 의제설정은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차별화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