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3회> 여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갯장어 회가 고즈넉한 나무빨래판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

여수 밤바다는 아름답다. 섬과 뭍이 서로 엉켜있어 이곳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뭍의 끝은 불쑥 솟아올라 평평한 바다와 어울려 낯선 풍경을 만들어낸다. 낮고 잔잔하고 맑은 바다에는 바다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2012년에 엑스포가 개최되면서 유리로 된 최첨단 역사驛舍가 들어서고 현대식 건물들이 세워졌지만 여수는 여전히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정겨운 항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풍쉥이구이와 서대회무침

여수의 상징 진남관에 올라서면 항구도시 여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수의 서시장, 중앙선어시장, 여수수산물특화시장, 여수수산시장, 교동시장 같은 시장들이 선창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생선구이 냄새가 먼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금풍쉥이는 여수에서 음식 좀 한다 하는 식당에서는 반드시 취급하는 여수의 대표 구이 음식이다. 금풍쉥이는 노릿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은근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서대회무침은 막걸리 식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여수의 막걸리는 경쾌하다. ‘개도 마신다’는 ‘개도막걸리’나 ‘여수 막걸리’를 발효시킨 막걸리 식초를 부어 비린내를 제거한 서대회무침은 달고 고소하며 시원하고 매콤하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도 좋아할 맛이다. 어른들은 서대회에 소주한잔을 곁들이고, 어린이와 노인들은 서대회를 넣어 비벼먹는 비빔밥을 좋아한다. 따스한 밥에서 서대회가 살짝 익으면서 더 깊은 감칠맛을 낸다.

여수 여름 먹거리의 반, 하모

금풍쉥이와 서대회무침이 사시사철 여수 밥상에 빠지지 않는 터줏대감이라면 갯장어는 여름의 진객이다. 날이 더워지는 6월이 되야 갯장어가 본격적으로 여수 바다 주변에 나타난다. 여수에 가면 갯장어란 우리말보다 ‘하모’ はも라는 일본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하모는 ‘뭐든지 잘 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여수 갯장어 문화는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갯장어는 오랫동안 여수바다에 있었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갯장어를 먹었다.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에 쓴 <자산어보>玆山魚譜(1814년)에도 갯장어는 나온다. 하지만 갯장어를 본격적으로 먹은 것은 일제 강점기 때였다. 일본인들은 여름에 장어를 복달임 음식으로 먹는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 지방에서는 기름기 많은 뱀장어(우나기)를 즐겨먹고, 교토를 정점으로 한 간사이關西 지역에서는 하모를 즐겨먹는다.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교토의 ‘기온마쓰리’祇園祭’는 7월 한 달간 열리는데 기온마쓰리의 별칭은 ‘하모마쓰리’다. 내륙에 있는 교토는 살아있는 생선을 먹기 힘든 지리적 조건을 가진 땅이다. 물에서 나와도 일주일을 사는 갯장어는 교토에서 맛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었다. 요리 천국 일본에서도 최상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교토의 요리사들은 잔가시가 몸에 가득해 요리하기 힘든 갯장어에 수많은 잔칼질을 해 뼈를 분쇄하고, 끓는 물에 넣어 데쳐 먹는 ‘유비키’湯引 라는 음식을 만들었다. 지금도 간사이에서는 일본의 갯장어보다 여수 지역의 갯장어를 더 비싸게 팔 정도로 여수의 갯장어는 최고급 식자재로 정평이 나있다. 여수의 하모 중심지는 경도鏡島다. 경도에서 갯장어를 먹지 않았다면 여름철 여수 맛의 절반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거울섬이란 이름처럼 경도의 바다는 맑다. 갯장어 뼈로 우려낸 맑고 깊은 육수에 머리와 뼈를 발라내고 몸에 5mm간격으로 칼집을 낸 갯장어를 넣으면 갯장어는 이내 연꽃처럼 둥그렇게 오그라든다. 기름기가 쏙 빠진 갯장어 유비키는 고소하고 담백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입에 들어가면 유비키는 소멸한다. 그리고 음식의 기억이 혀와 뇌에 오래 남는다.

 

여름 보양식 붕장어탕과 갓김치의 상생

여름철 여수의 먹거리로 하모만 유명한 게 아니다. 곰장어ㆍ붕장어ㆍ갯장어같은 바다장어 삼총사 중 가장 대중적인 붕장어는 여수의 여름 별식으로 빠지지 않는다. 붕장어를 소금으로 만 간을 해서 구워먹거나 양념장을 발라먹는 구이는 담백하고 향긋한 맛이 오랫동안 남는다. 여수의 국동항은 외지인들은 잘 찾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여수 토박이들은 장어를 먹을 때 주로 이곳을 이용한다. 항구 뒤편의 경매장과 붙어있는 10여개의 식당들은 주로 장어 요리를 한다. 이곳의 주 메뉴는 붕장어탕이다. 제주 바다에서 잡힌 1.5kg이 넘는 큰 붕장어들은 구워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해산물 요리라면 세계적인 쉐프들과 겨뤄도 뒤지지 않는 국동항의 아줌마 쉐프들은 큰 붕장어에 가장 적합한 붕장어탕을 20년전에 선보였다. 붕장어탕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통장어탕’을 시키면 몸의 지름이 5cm가 넘는 두툼한 붕장어 두 세 점이 시래기 국속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야들야들한 몸통살은 일반 생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붕장어 몸에서 우러난 은근한 기름기와 시래기의 건건한 맛이 엷은 된장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반찬으로 나오는 쌉싸래한 멍게 젓갈과의 묘한 조화 역시 통장어탕을 먹는 재미다. 그리고 여수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인 갓김치가 곁들여진다. 알싸한 갓김치와 은근하고 깊은 맛이 나는 장어국은 상극 같은 재료들이 만나 상생으로 거듭나는 특이한 체험을 선사한다. 돌산도의 갓 주산지인 죽포에 가면 어디에서도 갓 밭을 볼 수 있다. 1년에 3모작이 가능한 갓이지만 4~5월에 거두는 봄 갓을 최고로 친다. 여수 사람들은 봄철에 수확한 봄 갓으로 김치를 담가 일년 내내 먹는다. 수분이 많고 향이 많은 봄 갓은 일년 내내 여수의 음식들을 뒷받침하는 명품 조연이다.

여수 최고의 인기 메뉴는 돌게장

여수 밥상의 또 하나의 주연은 게장이다. 여수의 게장은 우리가 흔히 먹는 꽃게가 아닌 몸집이 작은 돌게를 이용한다. 먹을 거리가 넘쳐나 웬만하지 않으면 줄을 서지 않는 여수사람들이 줄을 서는 집들은 대개 돌게 간장게장 전문점들이다. 대도시에서는 저렴해도 1인분에 2만원이 넘는 간장게장을 1만원 정도면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고 맛도 좋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십여 개의 반찬, 조기국같은 생선국까지 한 상 푸짐하게 나오는 반찬과 밥은 무제한 리필로 제공된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간장게장 집에서 조기국으로 속을 풀고 간장게장으로 속을 다시 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충만해진다.

 

여수 술꾼들의 성지, 교동 포장마차촌

여수밤바다의 밤은 교동의 포장마차촌이 있어 더욱 낭만적이다. 교동시장은 천변과 맞닿아 있다.  새벽 항구에 풀린 신선한 해산물들은 저녁 바람이 불면 천변을 가득 메운 포장마차촌의 소박한 식탁 위로 오른다. 교동 포장마차촌은 이름대신 번호를 사용한다. 경매인들의 번호가 그대로 포장마차의 이름이 된 것이다. 포장마차촌의 최고 인기메뉴는 ‘모둠불판’이다. 모둠불판에는 키조개관자와 새우, 삼겹살에 각종 해산물이 더해지고 부추와 야채가 힘을 보탠다. 모둠불판에 해산물과 함께 나온 얼음이 살짝 감도는 냉동 삼겹살을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비웃지만 먹고 난 다음에는 다들 그 깊은 맛에 놀란다. 깊은 맛이 일품인 삼겹살과 키조개관자, 새우와 같이 나오는 묵은지는 맛도 좋지만 시각적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실하고 단단한 배추와 잘 마른 고추, 살짝만 들어간 젓갈들이 얽히고설켜 탄생한 묵은지는 깊고 곱다. 따로 먹어도 좋지만 불판에 재료들과 같이 구워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모둠불판의 안주와 함께 얼음통에 담긴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여수의 밤은 쉽게 잊지 못할 맛의 추억을 남긴다.

겨울에 맛있는 굴과 삼치 선어회

겨울 여수도 풍요로운 식탁으로 치면 여름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주로 구이로 먹는 삼치를 여수 분들은 하루 정도 숙성시킨 ‘선어회’로 먹는다. 겨울이라야 제 맛이 나지만 여름에도 먹을 만하다. 삼치선어회는 시원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겨울 여수에는 굴이 있다. 여수항과 단짝처럼 바싹 붙은 돌산도는 갓으로 유명하지만 굴도 빠지지 않는다. 돌산대교를 넘어 20여분을 들어가면 굴전마을이 나온다. 늦가을에서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이곳은 굴 익는 마을이 된다. 마을전체가 굴 생산기지이자 그 굴을 이용한 굴구이를 팔기 때문이다. 굴을 구우면서 동시에 찌는 독특한 방식의 여수 굴구이는 질 좋은 겨울 굴을 먹는데 적합한 방법이다.  5월에서 11월까지 굴이 안 나는 계절에는 돌산도 사람들은 말린 굴을 냉동해서 먹는다. 향일암 주변을 오르다 보면 이 굴과 홍합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린 굴과 홍합은 술안주로도 좋지만 밥과 함께 지으면 굴밥이 되고 홍합밥이 된다. 그 향에 맛들이면 맨밥을 먹기 힘들다. 해가 뜰 때의 향일암이 가장 아름답지만 향일암은 낮에 보아도 아름답다.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색의 굴과 일출의 피 같은 붉은 태양빛을 간직한 붉은 홍합을 먹어보면 여수가 가진 풍요의 원천이 자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굴곡진 뭍과 수많은 섬, 그 사이에 가득한 바다와 그 모든 것에 공평하게 비추는 태양이 만든 먹거리들이 사시사철 넘쳐나는 곳, 미식가들이 여수를 최고의 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



식당정보--

게장 전문점

소선우꽃게장 061-642-9254

황소식당 061-642-8007

붕장어 전문점 (탕, 구이)

상아식당 061-643-7840

자매식당 061-641-3992

산골식당 642-3455

잠수기 식당 061-643-3880 (깨장어 구이)

경도 갯장어 유비끼 전문점

경도회관 061-666-0044

서대회무침과 금풍쉥이

구백식당 061-662-0900

삼학집 061-662-0261

돼지껍데기와 해산물

말집 061-663-1359

교동 포장마차

23번 포장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