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3회>


#몸값

나이 먹을수록 뚝뚝 떨어지는 게 몸값이다. 여자의 피부, 남자의 기력은 감꽃 떨어지듯 세월의 유탄을 맞는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결혼해야 한다. 몸값은 나잇값에 정비례한다. 뱃살이 늘고 주름살이 패여 나잇살을 먹으면 헐값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엔 몸값이 떨어지든 말든 만혼(晩婚)이 대세이긴 하다. 서른 살 중후반은 예사이고 10명 중 2명은 아예 연지곤지 찍거나, 상투 트는 걸 잊었다. 소득이 높아지니 독신생활도 제법 살만해진 거다.

골드미스, 미스터골드라는 이름으로 신나게 즐길 수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 노처녀, 노총각은 NO처녀, NO총각이 아니다. 老처녀, 老총각이다. ‘NO’가 붙으면 처녀성, 총각성(性)을 잃었다는 얘기가 되니 반드시 한자 ‘老’를 쓰는 게 에티켓이다. 정조관념이 무너져 결혼 전에 이미 남에게 신체검사를 받았다고 해도 남(타인)과 남(男)을 구분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노처녀, 노총각은 결혼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세월의 훈장일 뿐이다. 현재 25세부터 34세까지의 여성 170만명이 홀몸이다. 이들은 궁상맞은 ‘애물’이 아니라 총각들이 품어야할 ‘보물’들이다. 이들에게 로마시대처럼 결혼 안한다고 ‘독신세’를 물릴 수는 없잖은가.

아침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며 아침형인간(사이쇼 히로시)이 되라더니 이제 ‘점심형 인간’이 대세란다. 점심때 운동을 통해 몸을 만들고 그 체력으로 몸값 올리기에 활용하라는 거다. 하지만 이미 워커홀릭에 빠진 직장인들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다. 몸값(연봉)을 올리기도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평생직장이란 이제 한국사회의 금기어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슴에 품은 사표(辭表)가 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항상 사표(死表)가 되곤 한다. 꾸역꾸역 눈물을 머금고 30년 동안 벌 수 있는 내 몸값은 얼마나 될까. 대략 10억 원쯤이다. 연예인들 CF출연료 한편보다도 못하고, 류현진 1년치 게임값 만큼도 안 된다.

“아, 지금 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술값

내 생애 술값 총액은 대략 2억 5920만원 정도다. 1주일에 평균 세 차례 마시고 회당 3만원 이상 책정했을 경우다. 한 달에 36만원, 여기에 열두 달을 곱하고 60년 동안 계속 마셨을 때를 따져보니 이렇게 나온 것이다. 일반 남성들이 평균 18만 8000원(한 달)을 쓴다니 꼭 두 배다. 2억 5920만원은 집(지방 기준)을 한 채 살만한 액수다. 여기에 담뱃값도 생애 5900만원 정도 든다. 입에도 쓰고 몸에도 쓴 것들에 대해 3억을 투자하는 셈이다. 결국 ‘돈 버리고 몸 버리고’다. 연봉은 둘째 치고 술값만 줄여도 내 인생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술집 문턱을 아예 안 넘고 살 자신은 없다. 술값 아끼겠다고 그런 ‘침묵의 절제생활’을 했다간 곁에 남아날 지우(知友)는 없다. ‘술’은 동류의식을 발효시키는 윤활유다. 그래서 쏘고 또 쏜다. 대한민국에서 술값은 더치페이(Dutch pay)가 아니라 더티페이(Dirty pay)다. 내는 놈만 내고, 먹는 놈은 먹기만 한다. 선배의 지갑은 달고(甘) 시고(酸) 맵고(辛) 쓰고(苦) 떫은(澁味) 맛이다. 상부상조의 정신이 없다.

술은 발효되고, 인간관계 또한 발효되지만 술값은 발효되지 않는다. 권커니 잣거니 인생을 노래하니 사지가 무거워지고 혀가 굳고 지성이 함몰돼도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실 때까지 이 지난한 일상은 계속되리라.


#인생값

예전엔 월급을 타면 아내의 손에서 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실체가 없다. 은행이 쥐도 새도 모르게 뽑아가고 있다. 물론 ‘자동이체’라는 간단한 조작 끝에 합법적으로 ‘훔쳐’간다.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른다. 통장에 찍힌 고통의 숫자만 몇 개월 뒤 통장정리하면서 알 뿐이다. 국가와 아파트관리실도 아주 합법적으로 세금을 털어간다. 물론 술을 마시면서도 주세(酒稅)를 내야한다. 보너스, 연월차 수당, 성과급, 비상금…. 이건 내 사전(辭典)에서 사라진 단어다. 비자금 챙길 돈이라도 있으면 이런 ‘죽는 소리’ 안 한다.

인생 값이 혹독하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술술 지나간다. ‘외상’이라도 먼저 긁고 인생을 살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되는가.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來歷)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술값을 아꼈다면 집 평수가 넓어졌을 것이고, 자동차 크기가 달라졌을 것이고, 삶의 질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술값이 아까웠다면 사람을 잃었을 것이다.

좁고 어두운 실내, 투박한 나무 의자,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 또 앉아있다. (여기서 ‘또’라는 부사가 중요하다). 술집은 인간의 마지막 소굴이다. 술값은 오르고 몸값은 내리고 있지만 이 한잔에 나를 내려놓는다. ‘그래, 이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