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7> 왜 ‘큐레이션(curation)’이 대세인가?


 

‘편집이 큐레이션이다!’
큐레이션이라는 말이 낯선 것 같지만 편집기자들은 용어만 다를 뿐 이미 뉴스 편집 현장에서 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편집기자들은 수많은 기사 중에서 지면에 실릴 기사를 분류하고, 뉴스밸류를 측정하고, 지식과 경험의 아우라(aura)를 지면에 부여해왔다. 수용자의 이성에 어필하는 헤드라인과 수용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레이아웃을 통해 기사를 등급화하고 의제를 설정한 것이다. 평범한 기사 한 꼭지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슈로 확산시키듯 편집기자는 지면에 기사의 맥락(context)과 의미,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녹여 수용자와 의미화 작용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큐레이션’이다.
스마트미디어시대의 큐레이션은 ‘뉴스 큐레이션’, ‘제품 큐레이션’, ‘지식 큐레이션’ 등과 같이 확장된 의미들과 ‘원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수준 높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고품질이라는 큐레이션 기본 정신은 동일하지만 적용하는 범위가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우리 일상 어느 곳에나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품질의 개념이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공급자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다매체 다채널시대에는 수용자에 의해 판단되고 선택된다. 즉,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빅데이터시대의 큐레이션은 미술이라는 특화되고 한정된 영역을 넘어 ‘정보의 수집과 분류, 선별, 공시 등의 주체’라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늪으로부터 탈출
그렇다면 왜 갑자기 ‘큐레이션’이라는 생경한 말이 미술계가 아닌 미디어업계에서 핵심 트렌드로 주목받고,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수용자의 정보 욕구 증가와 다매체 다채널을 통한 정보량의 급증 때문이다. 인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식을 생산하고, 실시간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올드미디어시대에는 수용자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고 궁금증을 해소시킬 만큼 정보의 양과 질이 담보되지 않았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한정된 ‘정보 제공자’인 매스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4시간 연결(always connected)된 스마트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용자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미디어가 생겨났다. 올드미디어시대에는 거대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면 인터넷미디어시대에는 수용자가 정보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어 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품질도 높여가고 있다. 온라인미디어시대의 대표 플랫폼은 ‘포털(portal)’이었다. 네이버·다음 등 국내 포털은 검색이라는 막강한 기능을 통해 정보의 유통과 공유를 한 차원 발전시켰다. 2009년 이후 모바일로 미디어 플랫폼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진정한 의미의 정보 과잉 시대를 맞게 된다. ‘포털’이 온라인(online) 중심이라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데 장소의 제약을 받았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생산량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된다. 수용자들은 정보의 늪에 빠져 판단과 선택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수용자들은 나에게 최적화된 정보를 찾고자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러보지만 무한정 이어지는 유사정보에 압도되어 금방 포기하고 만다. 이로 인해 수용자들은 처치 곤란한 무작위 정보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정보’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찾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대규모 데이터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것) 서비스가 구현되기 시작했다. 마이닝 서비스 상용화로 수용자들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정보를 단순히 ‘최신순’으로 무작정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검색 결과들의 연관성이나 중요도를 파악해 가치를 등급화하기도 하고 또 내용상 연결된 정보들을 주제별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알고리즘 측면에서 봤을 때 검색과 마이닝 서비스는 수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필터링하고 분석’해서 좀 더 정확하게 제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런 기계적 필터링이 소셜미디어를 만나게 되면서 소셜큐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1인 저널리즘시대를 연 소셜미디어 공간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으며, SNS를 통해 생산되고 공유되는 정보는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보완하고 대체할 만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소셜미디어의 속성상 특정 개인이나 회사가 게이트키핑을 하고, 가치를 매기고,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콘텐츠 생산량이 폭증하고 있다. 그 결과 사실이나 진실이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현장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범람하고 순식간에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정보들은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적 판단보다 ‘좋고 싫음’이라는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따라서 걸러지지 않은 콘텐츠를 누군가가 필터링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해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이 소셜큐레이션이다.


#큐레이션의 중요성
스마트미디어시대, 너무 많은 정보에 놀라고 질린 수용자들은 누군가가 정보를 대신 필터링해주기를 원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정보의 진위를 가려주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장르별로 모아주고, 이슈에 대해 객관적인 해석을 달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소셜미디어 특징은 ‘친구’들의 메시지 추천과 공유 기능이다. 따라서 ‘친구’가 추천한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더 믿을 수 있고 정확도도 높다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요인’은 수용자 스스로 콘텐츠 양을 통제할 수 있었을 때의 상황이다. 콘텐츠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의무적으로 누른 ‘좋아요’와 진위 판단 없이 ‘공유’해준 파일이 모두 내게 유용하다고 할 수 없다. 나 또한 기계적으로 댓글을 달고 다른 친구에게 퍼 나르면 잘못된 정보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산된다. 이러한 무한 콘텐츠에 대한 피로도 증가로 수용자들은 ‘인간 필터링’, 즉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갈망하게 되었다.
앞으로 진정한 소셜큐레이션은 단순히 정보를 잘 정리하고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도 하나의 독립된 미디어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한 후 연관 정보끼리 서로 묶고, 해체하고, 분석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새롭게 부상하는 미디어 권력은 콘텐츠 생산자나 유통자가 아니라 널려 있는 기존 콘텐츠 중에서 가치를 측정하고, 진위를 파악하고, 장르를 구분해서 연관 있는 정보끼리 네트워킹을 만들어주는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다.
큐레이션의 형식과 규모는 미디어와 함께 진화하고 발전하지만 큐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은 변하지 않고 있다. 첫째, 큐레이션은 인간이 수집하고 구성하는 대상에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서 가치를 더하는 일이라는 것과 둘째, 큐레이션은 전문가의 영역으로서 아마추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 아마추어나 어설픈 프로슈머(prosumer: 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를 의미)의 등장이 큐레이터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큐레이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막강한 파워를 만드는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인터넷 대중은 지혜롭지 않을 수 있고 그들의 이익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고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미디어 전문가로서 가치 있는 정보를 발굴→수집→분석→공시→상품화해서 수용자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내용을 일관성 있게, 가장 최적화된 미디어 형태로 서비스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와 미래의 편집기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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