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테러’로 문열고 ‘벨마’로 문닫다


편집기자협회 데스크 세미나에 참석하러 파리를 간다하니 편집부 후배가 “아이고, 테러 날지 모르는 데 거길 가겠다고요? 가려면 옷 속에 방탄조끼라도 입고 가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전국에서 모인 편집 데스크 36명이 파리에서 처음 만난 건 바로 ‘테러’였다. 인천공항에서 아부다비까지 9시간, 아부다비서 다시 7시간을 날아와 도착한 샤를 드골 공항. 긴 여정을 마치고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구가 폐쇄됐다. 공항 주변에서 의심스러운 수하물이 발견돼 조사 중이라는 것이다.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유럽의 현주소를 실제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공항 직원들은 내가 준비하려던 방탄조끼를 착용하며 긴장감을 높였고 30분이 넘게 지나서야 입국 심사를 받고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테러와 관련한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파리는 파리였다. 개선문,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 등 파리의 대표 상징물과 센 강 유람선은 50대 전후의 데스크들을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첫 만남 때의 어색함은 어느새 수그러들고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웃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일행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테러에 대한 공포보다 관광지 주변을 어슬렁대는 소매치기와 ‘흑형 팔찌단’에 대해 더 신경 쓸 만큼 여행 자체에 푹 빠져들었다.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 앞에 섰을 땐 그 소년의 ‘크기’에 실망하고 벨기에 초콜릿과 와플로 그 허무함을 채워야했다. 여행 내내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우리를 따라 다녔지만 그 또한 추억이었다.
한발 더 가까워진 데스크들은 ‘편집쟁이’답게 저녁 때엔 술 한잔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며 신문의 미래와 편집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특히 벨기에 브뤼셀의 EU본부에 갔을 때는 국경이 사라진 EU공동체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출구가 안 보이는 한반도 문제와 언론의 대응에 대해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벨마’였다. 벨기에에서 동행한 여행 가이드는 상식을 뛰어넘은 ‘기행(奇行)’으로 이 별명을 헌정 받았으며, 루브르의 모나리자나 브뤼헤의 그림 같은 풍경을 뛰어넘는 강렬한 임팩트로 “이번 여행의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김정은이 또 미사일을 쐈고 런던에선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36명의 데스크들은 4박 6일간의 뜨거운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뜨거운 편집의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