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도시는 무슨 옷을 입고 있을까


# 프랑스 / 에펠탑이 곧 파리
집 떠나 몇 시간 인가, 세안한 지 꼬박 24시간이 지나(아부다비 경유) 도착한 프랑스 파리.
비몽사몽간에 12개 도로가 모이는 파리의 심장, 개선문 앞에 우리 일행이 서있다.  
키 작은 하늘의 오후, 어깨를 편 개선문과 A자로 다리를 펴고 서있는 에펠탑은 생각보다 당당했다. 연간 외국인 8천만 명이 넘쳐난다는 관광대국 프랑스의 대표 아이콘이니 그럴 만도 하다.
프랑스혁명 100돌 기념으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때 세워진 이 아름다운 격자형 철탑은 산업사회의 상징이었으나, ‘추악한 철 덩어리’ ‘흉측한 뼈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니, 설계자 에펠 귀스타브(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는 고인이 된 뒤에라도 마음이 편안해졌겠다.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옷을 입은 에펠탑과 마주했다.
유람선 위에서 만난 밤의 에펠탑(1985년 야간 조명시설 설치)은 2만 개의 전구가 스팽글 재킷처럼 빛나고, 뼈대 사이 세워진 엘리베이터(1983년 설치)를 타고 오른 아침의 에펠탑은 질 좋은 벨벳 코트만큼 품위 있다.
테러 위협이 커지자 파리시는 2천만 유로(우리 돈 240억 원)를 들여 높이 2.5m의 방탄유리 벽을 설치한다고 한다. 과연 그 모습은 성공일지 실패일지 궁금하다.
에펠탑 전망대는 샹 드 마르스 공원, 앵발리드 돔, 몽파르나스 타워, 센 강, 오페라 극장, 몽마르트 언덕 위의 사크레 쾨르 성당을 보여준다. 발아래 도시는 깔끔한 그리드였고, 아이보리 톤 건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평안함을 선사한다.
아마 건물과 건물이 빈틈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풍경에 거슬리는 전깃줄이 건물 앞뒤 관 안으로 숨은 탓이기도 하겠다.
버스를 타고 도시를 수없이 오갔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차창 밖 에펠탑은 센 강이라는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우아하고 낭만적 자태를 뽐낸다.


# 벨기에 / 여전히 아름다운 브뤼헤
5년 만에 다시 찾게 된 고즈넉한 브뤼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90km 서북쪽에 위치한 이곳도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소도시는 수수한 리넨 원피스를 입고 있다.
어둑어둑한 시간 도착한 브뤼헤. 가을비가 소음마저 씻어 내린 것일까. 거리는 적막하기까지 하다. 마르크트 광장까지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다 보니 중세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골목골목 상점 쇼윈도에 내걸린 정교한 레이스들에 자꾸 시선이 멈춘다. 브뤼헤는 한때 레이스 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프랑스 자수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베긴회 수도원을 감싸고 있는 ‘사랑의 호수’, 거기서 노니는 백조들. 배를 타고 운하를 떠다니니 모든 것이 평화롭다. 과연 서유럽의 베니스다. 바로크 시대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가 반할 만 하다.
추석 연휴에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는 영화 ‘킬러들의 도시’를 감상하리라.


#사족: 버스에서 내리면 비가 쏟아지고, 버스를 타면 비가 그쳤던 브뤼셀은 생략합니다.


# 가이드 외전 / 파리 남자와 벨마
우리 일행은 파리에서 말쑥한 40대 남자 가이드를, 벨기에에서 50대 여성 가이드 ‘벨마(일명 벨기에 마녀)’를 만났다.
파리 남자는 군더더기 없는 정보 전달과 프로페셔널한 일정 조율로 데스크들의 호평을 얻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벨마’를 만난 후, 슈트가 잘 어울리는 그 파리 남자는 잊혔다.
‘벨마’는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쇼핑하러 와서 화장실을 왜 가”, “한국의 반값인데 왜 안 사”, “비 쏟아지니까 버스에서 사진만 찍는 걸로” “아휴, 택스 리펀드 받을 사람이 이렇게 많아” 등 읊조리듯 던지는 멘트는 파격이고 충격이다.
하지만, 브뤼헤에서 브뤼셀까지 동행하면서 왠지 모를 호기심마저 생겼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 보여준 절대 굴하지 않는 모습. 구석에 줄 서서 대기하라는 항공사 직원의 말에 격하고 단호하게 권리를 주장하던 그녀. 우리는 제시간 귀국 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 30년 넘게 타국에서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었을 터. 자신도 모르게 ‘벨마’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데스크는 말한다. 벨마에게 인생을 배웠노라고.
맞다. 우리는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감탄했다. 동시에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편집쟁이의 자존심과 고독한 창조에 대해 논했고 전우애를 다졌다. 그리고 함께 웃던 시간은 풍경과 함께 사진으로 저장했다.
회사 책상에 앉아 가끔 추억(벨기에 초콜릿과 사진)을 꺼내 먹으며 싱긋빙긋 웃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