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중앙 박해리 기자, 디지털 뉴스 편집기


신문 편집만 5년 정도 하다가 지난 4월 갑자기 인사 발령이 났다. 이름도 특이한 에코팀. 환경을 뜻하는 ‘eco’가 아닌 메아리의 ‘echo’다. 팀의 역할은 디지털, 모바일 세상에 기사를 메아리치게 만드는 일이다.

신문 편집도 어떤 의미에서 메아리를 만드는 일이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독자가 읽고 가족들이나 동료에게 "그 뉴스 봤어?"라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메아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전 메아리의 반경은 넓지 않고 기자들은 메아리를 만드는 적극적인 주체가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메아리는 다르다. 발송과 배달 파트에만 유통을 전적으로 맡겼던 신문과는 다르게 디지털에서는 기자가 직접 유통까지 맡아 메아리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된다. 어찌 보면 지금 하는 일은 '모바일 신문 배달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디지털 부서로 가서 가장 다른 것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고작 4개월 일해서 어리바리한 초보이지만 딱 두 가지 충격적일 만큼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 있다. 바로 독자와 뉴스다.

신문 편집을 하면서 독자란 미지의 대상이었다. 중학생 정도의 수준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면서 연령대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다수 일 것이란 생각이 독자에 대한 그림의 전부였다. 어쩌면 데스크를 더 신경 쓰기도 했고, 편집회의 때 내부독자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이던 때도 있었다. 독자라는 존재가 팔딱팔딱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가온 건 디지털 부서에 와서 부터다.

디지털에서 기사를 소비하는 독자들은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정말 단순하다. 한번은 의학과 관련된 기사에 잘못된 점을 현직 의사가 댓글로 문제 제기한 적이 있었다. 알아보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이 잘못됐던 것이었다. 한 독자의 댓글로 정부부처의 잘못도 가려내고 바로잡았다. 독자가 이렇게 수준이 높을 때도 많지만 정말 단순할 때도 있다. 수박바의 초록색과 빨간색 부분이 바뀐 신제품이 출시됐다는 아무것도 아닌 사실에도 몇 일간 인터넷이 뜨겁도록 반응한다.

디지털 독자들은 ‘밀당’의 고수들이다. 그들의 취향을 열심히 파악하고 분석해서 콘텐트를 내놓으면 이미 그들의 새 취향은 저 멀리 앞서 가있다. ‘이건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콘텐트구나’라고 생각할 땐 의외의 지점에서 반응하기도 한다. 또한 독자의 기억력은 짧으면서도 동시에 영원히 잊지 않기도 한다. 어제 올린 기사는 기억하지 못해도 오래 전의 잘못은 기가 막히게도 기억한다.

기자들은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독자들은 정말 중요한 뉴스라면 기사가 알아서 내게 올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이슈는 포털 메인을 하루 종일 뜨겁게 달구고, 친구들이 카톡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지인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인들이 ‘좋아요’를 많이 누른 뉴스나 내 관심사와 관련된 뉴스는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알고리즘에 의해 뉴스피드 상단에 저절로 뜨기도 한다.

또 하나 다른 것은 바로 뉴스 그 자체다. 디지털 부서에 와서 접한 뉴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다.’ 대학교 저널리즘 강의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디지털에서는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다. 특히 내 친구 희연이네 강아지가 사람을 물었다면 큰 뉴스고, 옆집 강아지가 내 친구 희연이를 문 것은 더 엄청난 빅 뉴스다. 이렇게 SNS에서의 뉴스는 훨씬 더 생활 밀착 적이고 개인화 돼있다. 독자들은 먼 나라의 테러에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이야기보다 내 친구가 조금 다친 것에 더 반응한다.

뉴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 중 하나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다. 여러 언론사들이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뉴스를 올리기도 하지만 페이스북 전체 뉴스피드에는 ‘뉴스’만이 올라오지 않고 확장된 개념의 뉴스들이 올라온다. 회사 선배가 어제 갔던 압도적인 비주얼의 맛집 사진이 올라오고, 대학 동창이 간 콘서트 현장도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편의점 음식으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신기한 영상도 올라오고, 귀여운 강아지가 교태부리는 영상도 올라온다. 놀랍게도, 억울하게도 기사의 경쟁자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다양한 콘텐츠 사이에서도 기사를 볼 수 있게끔 중요하고, 재밌는 기사를 만들고 유통시켜야 하는 게 바로 기자의 몫이다.

신문과 같은 점도 있다. 신문에서처럼 디지털 뉴스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제목과 사진, 바로 편집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제목의 중요성은 신문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신문에서는 한 공간에 제목과 기사가 있어서 상호보완을 할 수 있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제목과 기사는 철저하게 분리 돼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플랫폼에서도 제목이 클릭을 통해 손님을 부르지 못하면 기사는 그저 소리 없는 외침이 될 뿐이다.

그동안 편집부에서 매일 제목만 달았어도 디지털 제목은 너무 힘들고 어렵다.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점은 신문과 다르게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딱딱하지 않게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클릭을 하도록 호기심을 적당히 자극해야 하고, 정보를 너무 많이 숨겨서 무슨 말인지 모르게 해서도 안 된다. 또 신문에는 하나의 제목만 달지만, 디지털에서는 플랫폼마다 제목이 달라져야한다. 플랫폼마다 유저의 성격이 다르고, 좋아하는 기사가 다르고, 반응하는 포인트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사의 선택도 플랫폼마다 달라야 하며 같은 기사여도 다른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업무의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결국 어떤 좋은 제목을 달아야 할 것인가의 매일매일 고민은 편집부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때나 똑같다. 오늘도 제목을 고민하고, 제목 오타를 신경쓰고, 기사가 나가고 나서야 더 좋은 제목이 생각나서 후회하고, 제목 때문에 선배들에게 혼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정말 언제쯤이면 제목을 잘 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