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1회>


 #애마부인

안소영, 선우일란, 김부선은 ‘애마부인’이다. 풋사랑에 목매하던 왈패 시절, 그녀들의 영화를 보면 왠지 모르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롱 속에 넣어놓고 몰래 꺼내보던 도색잡지, 여관에서 구멍으로 훔쳐보던 무명씨들의 정사가 떠올랐다.

1대 애마 안소영은 더 이상 남편은 필요 없다며, 남편을 위해 그렸던 화장을 지운다. 2대 애마 오수비는 ‘남자들이 쉽게 여자를 사귀듯이, 여자도 그렇다’며 당당하게 옷을 벗는다. 이 영화엔 공식이 있다. ‘애마’는 30대 초반 유부녀로 남편의 불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무료하고 습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연하남성이나 옛 애인을 만나게 되고 이때부터 바람을 피운다. 1950년대 나왔던 ‘자유부인’은 춤바람이 나서 가정을 잠시 버리지만, 결국 눈물로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애마부인’은 몸만 돌아올 뿐 마음은 ‘그놈’에게 가 있다.

15년 가까이 13편을 쏟아낸 애마부인은 나중에 ‘뽕녀’와 ‘젖소부인’으로 진화한다. ‘뽕녀’는 열여섯 살에 참외 한 개를 먹기 위해 총각 녀석에게 정조를 내준다. 벼 몇섬, 돈 몇원, 저고릿감 한 벌에 그 짓거리를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뽕서리를 하다가 뽕밭에 누워버린 느낌이 들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 산딸기(싼딸기), 텔미썸씽(털미썸씽), 터미네이터(터보네이터), 니모를 찾아서(니 이모를 찾아서), 5분의 기적(오빠의 기적), 보디가드(바디가드)…. 몽정기의 황량한 벌판에 화신풍(花信風)이 부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1980년대가 암울했던 군사정권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로’가 ‘애로’였기에 에로티시즘이 분출구였던 것이다. 가부장주의를 벗어나 진솔한 욕망을 얻고자 했던 남성들은 달리는 말에 시선을 꽂을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한 마리의 건장한 말이 나신의 여인을 태우고 달린다. 바닷가로, 들판으로 자동차처럼 달린다. “이랴, 애마야 달리자. 봉건적 사상 따윈 집어치우고서….”


#애마자동차

사실 애마부인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샛길로 빠졌다. 난 지금까지, 내 두다리를 대신해 네 바퀴의 편안함을 선사한 자동차를 네 번 바꿨다. 포니, 프라이드, 세피아, 투싼…. 물론 중고차에서 신차로, 수동에서 자동기어로 옮겨간 여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애마(愛馬)였다. 지붕을 떼어낼 수 있는 컨버터블형 ‘페라리 F355 스파이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안전했고 충분히 빨랐다. 양쪽 문이 날개처럼 열리며 100㎞를 3.8초 만에 주파하는 슈퍼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비범했고 충분히 멋졌다. 지금도 나의 애마는 인생 순례길에 동반하는 ‘마누라’같은 존재다.

강직하게 쭉쭉 뻗은 디자인에 살짝 치켜든 엉덩이, 리어램프의 S라인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처럼 보기에도 좋다. 찰떡처럼 밟히는 브레이크와 엑셀 또한 결코 무뚝뚝하지 않다. 묵직하게 돌아가는 코너링은 지루할 틈조차 없다. 정말 애마는 애인 같다.


#애마남편

“갈릴레오 갈릴레오 피가로….”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쾅쾅 울린다. 카오디오는 잔뜩 흥분해있다. 마치 앰프를 찢어버릴 듯한 태세다. 자동차 네 발에 맞춰 내 오른발도 액셀러레이터위에서 춤을 춘다. ‘규율 따위는 꺼져버려’라고 외치는 듯한 광시곡은 발라드였다가 록으로 바뀐다. 마치 0㎞서 130㎞로 바뀌는 속도처럼.

아내가 차를 몰고 있다. 12년간 장롱에서 썩어가던 운전면허증을 4년 전에 꺼내주었다. 처음엔 불안해서 옆에 타지 못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편했다. 아내는 이후 ‘마티즈’를 수십 번 갉아 먹고서야 제법 솜씨가 늘었다. 지금은 한 대의 차를 함께 타고 있다. 음주가무 후 대리운전 ‘아저씨’ 대신 ‘여보’가 오는 게 신통방통하다. 그런데 문제는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지 않는다’는 거다. 말 그대로 청소는 안하고 타기만 한다. 어느 날 자동차 안을 봤더니 쓰레기통을 방불케 했다. 이쯤 되면 사랑스러운 ‘말’이 아니라 ‘돼지우리’다. 있으면 귀한 줄 몰라도, 없으면 아쉬운 게 사람과 자동차다. 고장 난 차는 카센터로 간다. 고장 난 인간은 병원으로 간다. 차와 인간은 그곳에서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운다. 그래서 사람이나 기계나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오늘도 차는 애마처럼 달린다. 차는 닦지 않지만 수다를 떨어주며 내 마음을 닦아주는 마누라를 태우고 차는 달린다. 강으로, 해변으로, 산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달린다. 저만치 봄이 달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