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0회>


◆인생역전? 인생여전?

월요일은 24시 편의점에서 희망을 산다. 낙일(落日)에 기울어진 일주일을 탈출하기 위해 5000원의 부푼 꿈을 구입하는 것이다. 로또를 사면 일?월?화?수?목?금?토가 즐거워진다. 지갑 속 화수분의 행복 유효기간은 딱 168시간. 토요일 밤은 지난 6일간 부풀려놓은 꿈을 돈과 바꾸는 날이다. 그러나 꿈의 환전은 악몽보다 시리다.

얼마나 배고픈 희망이면 고달픈 절망을 택하겠는가. (로또, 그거 불편한 눈물이다) 허구한 날 주인집 눈치 보며 전셋집만 떠도는 사람, 늘 궁색한 의식주로 기죽는 사람, 언제 목이 날아갈까 맘 졸이는 샐러리맨, 영화 한 편 그럴듯하게 못보고 철지난 비디오로 문화욕구 때우는 소시민, 돈 아끼려고 외식 대신 회식에 매달리는 사람, 언제나 고자세인 은행직원에게 굽실대며 돈을 꿔야 하는 사람…. 정말 더러워서, 아니 꼬아서 잘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먹고 살기 빠듯한 삶이니 희망이 없다. 아무리 애써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삶이니 희망이 없다. 로또는 가시방석에서 돈방석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그러니 로또 불나방들이 생기는 거다.

할로겐 추첨기계에서 붉은빛 막대가 쑥 올라와 공 하나를 뽑아내는 순간 서민들은 새로운 삶을 떠올린다. 어젯밤 꿈에서 본 돼지를 회상하고, 그제 물에 빠져 뒈지던 살벌한 악몽을 반추한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희망은 거기까지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그 편의점에 가서 줄을 서야한다. 슬픈 복기(復棋)다.


◆대박이냐! 쪽박이냐!

로또복권의 1등 당첨확률은 814만분의 1이다. 벼락을 연속 두 번 맞을 확률. 80㎏ 쌀 한가마니에 들어 있는 쌀알은 260만~300만개쯤 된다. 쌀 세 가마니를 쏟아놓고 검은 쌀을 한 톨 섞은 뒤 눈을 가린 채 그것을 집어들 확률과 맞먹는다. 부산에서 동대구까지 고속도로에 1원짜리 동전을 일렬로 죽 늘어놓고 그 중 하나를 무심코 집을 확률과도 비슷하다. 매주 10만원어치씩 3120년 동안 사야 당첨될까 말까다. 연금복권 당첨확률은 로또보단 양반이다. 1등이 2명이므로 315만분의 1이다. 하지만 연금복권 역시 평생에 걸쳐 매주 산다 해도 당첨 가능성은 제로다. 죽어도 안 되는 일에 죽어라 하고 매달리는 격이다. 벼락 맞을 확률을 뚫고 벼락부자가 되기란 이처럼 힘들다.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복권을 사는데,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터는 게 복권이다. 한방인생, 한탕인생을 갈구하던 삶은 자주 산통이 깨진다. 조선시대‘산통계(算筒契)’가 그 효시다. 계원들이 곗돈을 낸 다음 통 속에 알을 넣고 흔들어 뽑힌 사람에게 많은 할증금을 주는 게 산통계다. 그런데 곗돈 탄 계원이 먹고 튀니 산통을 깬다고 한다. 일?월?화?수?목?금, 또다시 일?월?화?수?목?금…. 산통이 깨지더라도 이상하게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불세출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122명의 여자를 사귀었다. 뛰어난 언변으로 프랑스 사교계에 진출한 그는 재정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던 루이 15세에게 로또((Lotto?행운이란 뜻?원조는 이탈리아 피렌체)사업을 타개책으로 제안했다. 첫해 60만 프랑의 수익을 올려줬고 자신도 복권사업소 5곳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돈을 버니 쓸 데가 필요했고, 그 돈을 여자에게 펑펑 써대니 122명이 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잠시‘나눔 로또’의 설문조사를 읊고 가야겠다. 우리나라 로또 1등 당첨자(기혼자) 중 60%는 당첨사실을 배우자에게 숨겼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람은 37%나 됐다. 당첨금을 받고서 직장을 때려치우겠다는 사람은 24%였다.

아, 로망이다.

1등에 당첨되면 사직서를 팩스로 보낼 것이다.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도 살 것이다. 그동안 게슴츠레한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 작자의 뺨을 돈다발로 때릴 것이다. 남들 KAL기 탈 때 돈 아낀다고 저가항공기를 자청하던 아들에게 세계여행을 시켜줄 것이다. 신용카드 박박 긁었다고 바가지를 박박 긁던 그녀에게 무제한 카드를 선물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한복판에서 봄바람이 분다. 아, 조또….(욕이 아니다)

일확천금으로 얻어지는 행복감은 9개월 밖에 유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엔 상실감과 공허감뿐…. 하지만 단 9개월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 이 어두운 터널을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꿈을 꾼다. 5000원으로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고, 5000원으로 50억을 만드는 스펙터클한 꿈을….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