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9회>


‘중산층 별곡’이라는 글이 SNS에서 떠돈다. 이 별곡에서 말하는 중산층 기준은 ①빚지지 않고 30평(99㎡) 이상 아파트 소유 ②월 급여 500만 원 이상 ③2000㏄급 중형차 소유 ④은행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⑤1년에 한 차례이상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상류층 냄새가 난다. ‘중간’ 정도 사는 계층이 아니라 ‘보통 이상’으로 사는 사람들 같다. 물론 위 중산층 항목에 내 이름은 없다.

그렇다면 조선시대로 가볼까. 조선 중산층 기준은 ①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 소유 ②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두어 벌 소유 ③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쬘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 보유. ④의리와 도의를 지키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하고 사는 것이었다. 참으로 멋지지 아니한가.


◆중산층인가, 하류층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의하는 중산층은 중위소득(중간을 차지한 가구의 소득)의 150%미만과 50%이상을 말한다. 150%이상은 상류층, 50%이하는 하류층이다. 통계적으론 상류층이 1.9%, 중간층 52.8%, 하류층이 45.3%다. 그런데 상류층은 중간층이라고 엄살을 떨고 중간층은 하류층이라고 스스로 비하한다. 중산층은 가장 상식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안정을 선호하고 모범시민이 되고자 노력하는 부류다. 때문에 중산층은 허리다. 허리가 강해야 몸이 강한 거 아닌가.

(우린) 꿈을 꾼다. 도시에 메인하우스를 두고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는 꿈 말이다. 주말이면 세컨드 하우스 텃밭에 채소를 심고 다운 시프트(downshift·느림의 삶)를 즐긴다. 그러려면 최소 2~3억쯤은 쟁여놔야 하는데 허허, 헛꿈이다. 이 꿈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은 99.99999%다.


◆저녁이 없는 삶

아무리 열심히 벌고 성실하게 살아도 우리의 인생 수지는 마이너스 2억 4000만원(이코노미스트 조사)이다. 평생(돈 버는 나이 25~55세) 14억4558만원을 벌고 16억8814만원을 쓰는데, 정년이후(55~85세) 30년간 세끼 밥 먹고 살려면 11억5322만원이 필요하다.(최저생계비용 2인 가구 기준 월 110만1618원×물가상승률 연4% 적용) 더구나 자식 1명을 대학 때까지 키우려면 2억 7500만원이 든다. 평생을 아파트 평수 넓히는 데에 전력을 다하는 마당에 이는 불가능의 수치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8명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가계부채 1000조원, 1인당 5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으면서 무슨 중산층인가. 우린 통장잔고의 크기만큼 웃고 운다. 행복의 온도계 눈금은 화폐 숫자가 올라갈수록 뜨겁다. 저녁이 없는 삶. 우린 노동에 시달리다 저녁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산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저녁을 즐긴 적이 언제였던가. 평생을 집 한 채 사려고 전전긍긍하고, 이마저도 ‘집덩이’만한 이자 갚기에 하루하루가 간당간당하다. 그렇다고 속 편하게 식당(자영업)을 차릴 용기도 없다. 매년 60만 개의 자영업체가 생기고 58만개가 망하고 있는 판국에 불나방처럼 뛰어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설사 굶어죽는다 해도 못한다.


◆슬픈 목마 중산층

공부의 상?중?하(上中下)가 인생의 상?중?하가 된다. 수능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수학과 영어공부를 잘해야 인생이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은 공부밖에 모르던 사람 밑에서 품을 팔고 삯을 받는다. 공부밖에 모르던 사람이 대인관계나 인성의 폭이 넓을 리 없다. 하류층이 중산층이 되고, 중산층이 상류층이 되는 신분상승의 키가 ‘공부’라는 게 지겹고 지긋지긋하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살다가, 모처럼 저녁이 있는 삶의 기회가 와서 아들과 마주앉았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봐도) 입에서 나오는 첫마디가 너무 졸렬하고 재수 없다.


“공부 좀 잘해라.”


“… ….”


“우린 중산층이다. 아니, 하류층에 가깝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오로지 네가 수학을 잘하고 영어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거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 ….”


“우린 중산층이다. 아니, 하류층에 가깝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그만 좀 하세요.”


(그런데) 나쁘게 말하면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세상이 나쁜 것이다. 공부로 사람을 평가하고, 공부로 세상살이의 고됨과 편함이 나눠지는 세상이 나쁜 것이다. 대입(大入)은 지난 60여 년간 40여 차례 바뀌었다. 3년에 2번꼴이다. ‘인성’은 살피지 않고 공부로 ‘인생’을 인수분해 하는, 이런 X같은 제도가 어디 있는가.

이번에 뽑힌 대통령은 중산층을 반드시 살려낼 거라고 수백 번 공약했다. 믿기지 않지만 (속는 셈 치고) 믿어본다. 30평 아파트가 없어도 좋다. 월 급여가 500만원이 아니어도 좋다. 2000㏄급 중형차를 타지 않아도 좋다. 은행에 1억 원 이상 묻어두지 않았어도 좋다. 1년에 한 차례이상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 다만 중산층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주었으면 한다. 얼마나 소박한 바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