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산행칼럼 <12회>

중앙일보 김홍준 기자


사진설명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후 등산객이 급증했다. 도봉산 Y계곡은 2008년 일방통행로로 지정됐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 한해서다. 도봉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 (기존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이 손실되어 부득이하게 사진은 첨부하지 못하였습니다.)


“선배… 치사해요.”

2006년, 무척 쌀쌀했으니 이맘때쯤이었을 게다. 회사 동료 몇 명과 북한산에 갔다. 그때만 해도 입장료가 있었는데, 무려 1300원이었다. 내게는 연간회원권이 있었다. 3만 원짜리다. 내 1년 산행 횟수를 따지면 본전을 빼고도 남는다. 나는 회원권을 내민 뒤 산에 들어섰고 후배는 당일 회비에서 1300원을 쪼개낸 뒤 입장했다. 내가 무임승차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사람은 원래 치사하지. 그래서 경제적 동물이 되는 거고.”

1300원. 잠깐 산에 들렀다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가격이다. 2000년 들어 1000원에서 1300원으로 인상되자 반발이 일어났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몰렸다. 북한산만 보자. 2006년 탐방객수는 487만 명. 입장료가 폐지된 이듬해에는 무려 959만 명.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의 주말 나들이 행태가 바뀔 리는 없다. ‘1300원 효과’가 단단히 한몫 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 몰리다 보니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


# 우선 쓰레기

‘×도윤’(×은 인간에게 먼저 다가온 네 다리의 반려동물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라 불리는 선배가 있다. 입이 거칠기로 산악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이런 사람들이 가끔 진지하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건넬 땐 감동의 눈물이 눈에 고인다. 그날도 그랬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데 ×도윤 형님이 내게 말했다.

“홍준아, 소용없다. 버리는 사람은 계속 버린다. ‘나는 버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져온 것은 모두 되가져간다’는 소극적이지만 실천 가능한 생각을 해라.”

아, 그 고마운 말씀이란. 나는 ×도윤 형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가끔 보다 못해 덤으로 남의 것도 들고 산을 내려가기도 하지만 …. 2010년 가을, 북한산 응봉능선에서였다. 이, 이, 이건! 소똥? 소가 웃고 응봉능선을 넘어갈 말이다. 그곳에 소라니. 내용물은 분명 소의 것처럼 푸짐했지만 인간의 것이 틀림없었다. 얼마 떨어진 곳에는 돼지 족발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같이 간 친구와 가위 바위 보! 졌다.

하산 후 족발에 소주를 곁들이는데, 왜 그렇게 맛이 묘하던지….


# 다음 담배


“이게 뭐야!”

크럭스(바위 코스의 힘든 구간)다. 모든 크럭스에는 있는 듯 없는 듯, 결정적인 손발 디딤이 있다. 손을 위로 쭉 뻗었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걸칠까 말까한 바위 구멍을 찾았다. 더듬더듬…. 순간 진득한 액체가 손끝에 느껴졌다. 손에 힘을 줄만한 공간이 없었다. 추락을 했다. 뭘까. 바위 구멍 안에는 타르·니코틴과 사람의 침이 범벅된 담배 필터가 꽂혀있었다.

등산객이 늘면서 암벽등반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병폐도 늘어났다. 일부 클라이머들은 자신이 특수하다고 여긴다. 그 착각은 산에서 특수한 행위를 해도 좋다는 객기로 이어진다. 산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고 취사를 한다. 스스로 만족해한다. 착각은 순환된다. 자신이 특수하다는 생각이 다시 피어난다. 또 피우고 불 땐다. 착각은 확장된다. 모든 행위는 익숙해지면 대범해지기 마련이다. 라이터불 켜더니 조금 지나면 모닥불 피운다. 동료들이 배운다.

몇 해 전 모 등산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누군가 산에서 담배를 연신 피웠다. 또 다른 누군가가 보다 못해 항의했다. 이상해진 사람은 그 또 다른 누군가였다. 흡연은 관행인데 왜 문제 삼느냐는 뭇매를 맞은 것이다. 의아하다. 결국 그 사람은 등산하교 자퇴를 하고 말았다. 큰 뜻 품고 바위를 배우러 갔는데, 몹쓸 경험만 쌓고 나왔다. 그 사람, 지금 암벽등반을 할까 궁금하다. 산에서의 첫 경험이 산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 마련인데….


# 그리고 부딪힘

걸음 참 빠르다. 건너편 산마루에서 잠깐 서있더니 순식간에 내 코앞을 향해 돌진 중이다. 이들은 열댓 명, 나는 혼자였다. 좁은 길에서의 마주침. 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온다. 알파인 스틱을 잡은 사람들의 양팔 너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길옆으로 비켰다. 비켰다기보다는 밀려났다. 척, 척, 척….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이들. 그리고 ‘이들’이 ‘저들’로 바뀌는 짧은 시간이 흘렀다. 저들은 속도는 여전하다. 빨리빨리 문화는 산이라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이 팀은 한 줄로 진행을 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지난 가을이었다. 회사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 이들이 산에서 구사하는 보행법은 지상에서의 점심시간, 저녁 회식시간 중 이동할 때 그대로다. 횡렬대형이다. 그 대형에서 서로 뒤로 밀리지 않으려 기를 쓴다. 대체로 여성들이 더 굳건한 형태를 유지한다. 왜 그럴까? 남자를 가운데에 몰아 미드필드 진을 탄탄하게 하기도 한다. 남자를 양쪽에 한명씩 투입, 좌우 윙백을 강화하기도 한다. 쓰나미처럼 몰려다닌다. 틈이 없다. 대체 왜? 거기다가 구국의 대오를 갖추듯 팔짱을 끼거나 손을 맞잡고 가기도 한다. 이런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흩어지면 죽는다 ~’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더 죽는다.

도봉산 포대능선 정상 바로 밑 Y계곡. 막판 가을 분위기를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북에서 남으로, 사람들의 이동 방향이 똑같다. 이동한다고 보기에는 그 움직임이 굼뜨다. 그냥 서성거리고 있다. 산에서 ‘사람에 막혀’ 체증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정을 살펴보자.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 된 2007년,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북한산에 들렀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묶어 관리하는 북한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여, 2008년 10월 정체가 심한 Y계곡을 일방통행로로 지정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일방통행 등산로다. 물론 역주행 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사람이 몰리다보니 별별 일이 다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