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8회>


군대선 솔직히 잠자는 게 남는 거다. 잠을 자야 국방부시계가 잘 돌아가고 제대날도 가까워진다. 현재를 망각해야 행복이 가까워진다는 이 불길한 사실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그런데 그 시간(3년)에 내 눈꺼풀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남들 다 자는데 혼자 눈뜨고 있으니 정말 눈감는 것이 소원이었다. 솔직히 북한군과 대치하는 게 전쟁이 아니라 잠자는 게 전쟁이었다.

제대한지 20년이 넘은 나에게 또다시 묻는다. “졸리니?”

‘네’라고 얼른 대답한다. 그런데 ‘네’라고 답하는 순간 잠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달아난 잠을 다시 찾기 위해 뒤쫓지만 잠은 쫓아가면 갈수록 더 멀리 도망간다. 20년 불면이라면 이건 중병이다. 그래도 잠을 자기 위해 알약을 먹고 싶진 않다. 하루 종일 기다리더라도 그냥 온전히 잠들고 싶어서다.

소나타 2번, 7번, 10번을 들으며 잠을 청했던 니체, 하루에 3시간이상 자지 않았다는 나폴레옹은 토막낮잠으로 불면을 해소했다. 피카소는 양철 판을 발아래, 붓을 손에 든 채 낮잠을 즐겼다. 낮잠에 투자한 시간은 불과 몇 초. 잠이 들어 손에 들고 있던 붓이 양철판위에 떨어져 생기는 굉음이 알람이었다.

우리는 개미, 기린, 말(馬)이다. 개미는 끊임없이 일하면서 결코 쉬지 않는다. 말은 서서 잔다. 기린은 사바나에 해가 져도 잠을 자지 않는다. 달이 뜨면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기린이 잠을 자는 것은 해가 뜨기 전 잠깐 뿐이다. 반대로 마멋(marmot)과 곰은 겨우내 잔다. 매미는 번데기로 17년간 땅속에서 잔다.

불면은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다. 우린 짧은 휴식시간 중에도 쉬지 않고 뭔가를 생각한다. 심지어 TV나 스마트폰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그 짓이 결국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인공조명을 발명해 수면과 생체시계를 혼란에 빠뜨린 에디슨을 증오하면서 말이다.

지중해 더운 나라에서는 태양이 곧 법률이다. 챙이 넓고 뾰족한 솜브레로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는 낮잠을 즐기는 멕시코인. 이들을 강제로 깨울 수 없다. 때가 되지 않았을 때 깨우는 것은 영혼이 흩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 잠의 신이시여

잠의 신 히프노스, 꿈의 신 모르페우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눈꺼풀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셔터’가 내려가지 않아서다. 자려고 발버둥 치다가 끝내 먼동을 보고서야 ‘촛불’을 끄는 이 잔혹한 삶은 분명 비극이다. 어쩌면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이 오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생각)ⁿ곱하기 (생각)ⁿ을 더해야 눈꺼풀이 육중해진다. 불을 끄고 의식을 끄고 퇴로를 끈 바다, 가볍게 보채는 파도, 꿈결인 듯 한없이 고요한 돛의 흔들림, 선창의 들까부르는 휘파람, 흥분한 태풍주의보를 알리는 미친 수상기. 절뚝이는 선창의 가슴앓이들…. 이런 모든 일련의 생각들이 세상 문밖에서 절뚝거리는 것이다. 회사 일을 정리하고 소주 한잔에 정신을 마취시켰는데도, 잠자리에 누우면 처리해야 할 업무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우리는 피곤에 절어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1세기동안 잠을 줄여온 탓이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우리가 느끼는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니. 초딩부터 고딩까지 5~6시간만 자야 하나. 이 몽환적 기괴함 때문에 ‘배터리’ 나간 인간처럼 살아야하는가 말이다. 이건 ‘엉터리’다.


◆오, 달콤한 잠이여

전국에 있는 22만 명의 잠 못 드는 자여. 일단 TV시청을 줄여라. TV를 보면 남성은 1.8년, 여성은 1.5년의 평균 기대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걸어라) 40세 이후에 총총걸음으로 걷는 운동을 하면 수명이 2∼7년까지 늘어난다. (살을 빼라) 체중을 줄이면 수면의 질이 평균 20% 개선된다. (생각을 줄여라) 빚 갚고, 집 사고, 노후 준비하는 생각 따위는 버려라. 로또도 잊어라.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는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이 아닌, 수학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폐선 같은 몸을 이끌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에 잠자리에 든다. 몸은 무거운데 여전히 눈은 새털처럼 펄럭인다.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출구일지도 모른다. 가족이 잠든 뒤 적막 속에서 브랜디를 홀짝인다거나, 고전문학에 심취하는 것은 특권이다. 잠 못 드는 자의 특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불면에 시달릴 새벽이 켕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