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6> 스마트미디어시대의 새로운 가치 ‘큐레이션(curation)’


스마트폰을 24시간 손에 들고, 주머니에 넣고, 머리맡에 놓고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이미 뉴스 중독자들이다. 그들은 24시간 내내 쏟아지는 정보에 치여 비명을 지르면서도 순간순간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고, 정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 습관처럼 스마트폰 버튼을 누른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 소비 단계를 지나 정보 중독 단계에 이른 현대인들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올드미디어 시대에는 뉴스의 끝이 있었다. 지상파 메인 저녁뉴스는 세상을 보는 창이었고, 수용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뉴스만을 골라서 먹기 좋게 제공하는 뉴스 요리사였고, 하루 뉴스의 완결판이었다. ‘저녁 9시’ 시보와 함께 한 시간 정도 ‘뉴스 식탁’에 앉아 다양한 뉴스 메뉴를 소비하고 나면 그날 뉴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음 날 새벽이나 돼야 현관문 앞으로 배달된 조간신문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미디어를 거쳐 모바일이 대세가 된 요즘은 뉴스 생산의 시작과 끝이 없어졌고 수용자들도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올드미디어 시대에는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기관에서 물리적 제약 조건 때문에 뉴스의 생산량과 공급량을 제어하고 조절했지만, 스마트미디어 시대에는 수용자 스스로 뉴스 소비의 시작과 끝, 그리고 양과 질을 정해야 한다.
이제 언론사들은 “오늘 뉴스를 마치겠습니다”라는 클로징 멘트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 회사 뉴스룸은 24시간 잠들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자만이 최신 정보를 소비할 수 있습니다”라며 수용자를 압박한다. 더 나아가 거대 언론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 생산되고 유통되는 콘텐츠도 수용자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에 의한 콘텐츠 필터링이 필요하다.
뉴스가 넘쳐나는 정보 과잉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디어는 늘고, 뉴스는 끝이 없고, 뉴스의 양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필터링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웹이라는 미로에 빠져 헤매고, 허우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정작 자신에게 유용한 콘텐츠가 뭔지도 모르고, 정보의 진위도 파악하지 못한 채 거대한 정보의 파도에 휩쓸려 정보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대형도서관에 가도 처음에는 거대한 책 더미에 질려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가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을까’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눈여겨보면 일정한 분류 법칙에 의해 책이 잘 정리되어 있어 헤매지 않고 원하는 책을 뽑을 수 있다. 도서관과 웹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서관은 사서들이 책을 장르별로, 그리고 저자 순으로 분류해서 배열하기 때문에 이용자인 우리가 도서관에 가서는 다른 책에 한눈팔 필요도 없고 헤맬 필요도 없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웹에서도 도서관 사서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정보의 잡음(noise)을 제거해서 ‘오직 나만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서비스해주길 바라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미디어에 따라 조금씩 용어에 차이가 있는데 신문과 방송에서는 게이트키핑과 편집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으며,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도 뉴스 에디터가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 게이트키핑-편집-큐레이션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범위만 조금 다를 뿐이지 사람이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해서 취사선택한다는 근본적인 개념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게이트키핑과 편집 그리고 큐레이션
큐레이션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미디어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큐레이션은 직업으로서의 ‘큐레이터’ 역할이 전부였다. 그런데 스티븐 로젠바움(Steven Rosenbaum)이 『큐레이션: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박제된 개념에서 스마트미디어의 살아 숨 쉬는 열린 의미와 개념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큐레이션은 얼핏 생각하면 무척 난해하고 생소한 개념 같은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우리들 일상과 맞닿아 있다. 우리들의 모든 판단과 선택의 전 과정이 큐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멀티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이 정확한가를 판단하고, 그중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정보에 따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과 선택의 과정은 좁은 의미의 큐레이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올드미디어 업계에서도 용어만 다를 뿐이지 이미 동일한 개념의 큐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문사의 편집기자 역할이다. 편집기자는 취재기자들이 생산한 콘텐츠와 외부 통신사에서 송고한 콘텐츠, 그리고 인터넷에 널려 있는 수많은 관련 기사 중에서 지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들어갈 단 몇 꼭지의 콘텐츠만 취사선택한다. 이러한 기능을 우리는 ‘편집’이라 이름 붙였고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편집기자’라 부르고 있다. 편집기자들은 뉴스 전문가로서 콘텐츠의 가치를 측정하고, 뉴스를 등급화하고, 정보를 배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스마트미디어 업계에서 주목받는 큐레이션도 올드미디어의 편집기자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둘 다 로젠바움이 정의내린 것처럼 ‘콘텐츠를 걸러주는 인간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팅하는 콘텐츠의 양이 ‘많고 적음’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역할은 동일하다. 따라서 디지털 큐레이션이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엄청난 빅데이터(big data)를 잘 취합하고 정리해서 수용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역할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정보들을 거르고(filtering), 고르고(gatekeeping), 공시(publish)해서 수용자들이 정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손쉽게 정보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수용자에게 맞춤형 정보 서비스
인터넷 공간은 분명 정보 과잉이다. 콘텐츠가 워낙 많다 보니 수용자들이 일일이 다 열어볼 수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다보니 수용자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걸러줬으면’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정보를 거르는 역할’이다. 누구나 다 정보를 소비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정보를 거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거른다’는 의미에는 일정한 기준과 방법에 따라 가치를 측정한다는 게이트키핑 개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행위로써의 게이트키핑은 뉴스 전문가 영역이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큐레이션도 고도로 훈련받은 예술 전문가 역할이다. 따라서 정보 과잉 시대, 스마트미디어의 큐레이션도 콘텐츠 전문가 몫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큐레이션은 누구나 할 수 없는 미디어 전문가 영역이기 때문에 뉴스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목받는 게 아닌가 싶다.
스마트미디어 큐레이션이 각광을 받으면서 이런 큐레이션 서비스를 해주는 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지 공유 어플리케이션인 핀터레스트(pinterest)가 이런 큐레이션 개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도 어떻게 보면 이런 디지털 큐레이션 서비스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큐레이션을 해주는 서비스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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