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7회>


◆술+라면=술이라면…

어제도 진탕 마시다가 ‘내 이름’을 까먹었다. 머릿속의 지우개, 필름이 끊긴 걸 어떻게 아느냐고? 아침에 일어나 설거지통을 보면 안다.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은 흔적이 있다. 그것도 ‘파송송 계란탁’해서 아주 제대로 먹었다. 술을 안주 삼아 마셨으니 안주 먹을 새가 없었고, 집에 와서야 부대끼는 속을 라면으로 달랬던 것이다. ‘어젯밤 네가 한일’을 라면사건을 복기해서 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래도 어쩌랴. 날은 밝았고 술은 여전히 깨지 않으니 다시 해장라면을 먹을 수밖에…. 어떤 라면을 먹을까. 어젯밤엔 ‘너구리’를 잡았으니 아침엔 ‘안성댁’을 잡을까. 아니면 ‘꼬꼬댁’을 잡을까.

“여보, 안성댁 잡아와.”

점심시간이다. ‘이번엔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이름과 직책을 밝힐 수 없는 ‘분’이 칼국수를 먹자고 제안한다. 별수 없다. ‘국수’에 ‘칼’을 넣어서 칼같이 먹어야한다. 이건 아부가 아니라 현실이다. 국수에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 우적우적 흡입한다. 땀이 폴폴 난다. 독소가 빠져나오는 것이라며 자위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독소다. 새벽부터 점심까지 이어진 밀가루와의 만남. 이건 식적(食積)이다. 과자, 호떡, 빵, 파스타, 피자, 케이크, 빈대떡, 짬뽕, 만두, 냉면…. 잠자리에서 나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밀가루’는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 돼버렸다. 라면과 국수뿐만이 아니다. 고추장, 된장, 어묵, 햄, 수프에도 밀가루가 들어간다. 어쩌면 밀가루를 끊기 위해서는 냉장고 속 모든 음식을 다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라면+뱃살=똥배라면…

거울에 똥배가 비친다. 똥배는 아저씨의 상징이지만 이 든든한 뱃심의 8할은 분명 라면(밀가루)이 키웠다. 전 세계인구가 연간 463억 개를 먹어치우고 한국만 해도 38억 개를 말아먹는다. 1인당 기준으로 치면 1인당 두 박스(68개), 1주일에 1.3개씩 먹는다. 일본은 53억 개, 인도네시아 139억 개, 중국 408억 개, 베트남 43억 개, 미국은 40억 개다. 마치 국가별로 라면올림픽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먹는다.

밀려나오는 뱃살을 보면 당장이라도 라면을 끊고 싶지만 금단현상이 생긴다. ‘뻐끔뻐끔’이 아니라 ‘후루룩후루룩’ 금단이다. 밀가루는 100g당 350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낸다. 밀가루가 비만을 부르는 것은 탄수화물이 92%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는 족족 살이 된다. 밀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지방이 쌓이면서 행복한 기분이 든다. 반대로 밀을 먹지 않으면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는 법이다. 밀가루 중독 증세다.

우리는 평생(80세 기준) 하루 세끼 기준으로 약 8766㎏(20㎏짜리 438.6포대)을 먹어치운다. 8만 7600끼니인데 식사시간에만 26만 2800시간을 쓴다. 3285일을 오로지 먹는데 할애하는 셈이다. 3285일은 자그마치 9년이라는 세월이다. 9년 내내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세상에 이런 고문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만큼 배설량도 만만찮다. 평생 1톤의 똥(便?변)을 싼다는 분석이 있다. 먹고 배설하고, 먹고 배설하고…. 이런 일련의 ‘부질없음’이 인생사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란 바로 ‘잘 먹고 잘 싸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알콩달콩 살자

아침에 라면 생각이 간절했으나 꾹 참았다. 점심에 또 칼국수를 먹자고 했으나 꾹 참았다. 저녁에 피자먹는 아이들 틈에서도 꾹 참았다. 온갖 신산(辛酸)한 아저씨의 삶에서 뱃살은 눈물이기에. 어떻게 참았냐고? 거울에 비친 항아리 몸매를 보니 밀가루가 미웠다. 다음날, 또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에도 잘 참았다. 금단현상도 없었다. 삶의 무게, 똥배도 훨씬 줄어들었다. 가족의 입을 책임지는 게 식구(食口)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밀가루가 아니라, 몸에 좋은 콩가루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밀’이 아니라 ‘콩’을 먹으면 알콩달콩 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하지만….

숙취에 시달리며 깨어난 아침, 아내가 습관처럼 묻는다. “여보 꼬꼬댁 잡아요? 안성댁 잡아요?” “어이구~ 그만 좀 하시오. 이제 밀가루와는 영영 이별이야.” 스스로 대견했다. 그런데 점심 때 중화요리집에 가서 볶음밥을 먹게 됐다. 동료들은 짜장면, 짬뽕이었다. 그런데 내 눈은 분명히 볶음밥에 가 있는데 나도 모르게 군만두를 삼키고 있었다. 아뿔싸.

기자들이여, 건강 챙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