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산행칼럼 <7회>

중앙일보 김홍준 기자


편집기자는 단어를 쓴다. 기사를 읽고 뇌의 깊숙한 곳에 잠수해 있던 단어를 수면에 띄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오와 열을 맞춰 지면에 이식한다. 쉬운 단어를 쓰되 평범하지 않아야할 모순의 고민에 휩싸인다. 우리는 제목으로 ‘지난(至難)하다’를 잘 쓰지 않는다. ‘천착(穿鑿)한다’라는 단어와도 거리가 멀다. 이렇게 골 아픈 단어를 쓰면 데스크에게 골 터지게 깨지는 수가 있다. 의미가 살짝 약해지지만 ‘어렵다’ ‘파고들다’로 둘러친다. 그래, 우리는 단어에 천착한다. 제목은 영원히 지난한 숙제니까.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매일 머리를 짜낸다. 자신의 돌상에서 잡는 물건부터 오늘 마감시간에 앞서 달은 제목까지, 인생은 선택(選擇)이다. 그리고 의미가 다소 다른 ‘찍기’도 삶에서 횡행하기 마련이다.

# 1980년, 가을

열 살, 이유 없는 반항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벌을 주셨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있는 바위의 틈에 목장갑이 끼어 있으니 회수해오라는 것. 저녁을 마친 당신은 산책삼아 다녀온 그곳에 목표물을 설치하였다. 선택의 기로다.

1. 아동학대라고 신고한다. 열 살짜리를 깜깜한 밤에 홀로 산에 보내는 부모가 있나. 그러나 이 경우 가족 관계가 와해될 수 있다.

2. 철물점에서 목장갑을 사서 일부러 살짝 더럽힌다. 그리고 약간 숨이 차는 목소리로 현관문을 연 뒤 “다녀왔습니다”라며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한다. 그런 다음 곧장 쓰러져 게거품을 물면 효과 만점이다. 어설픈 연기로 더 큰 벌을 받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3. 그냥, 순순히 벌을 받아들인다.

당시, 나는 아동학대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철물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으며 노래와 연기를 비롯한 개인기가 그때나 지금이나 무척 약하기 때문에 벌을 피할 수 없었다.

4.19탑에서 아카데미하우스로 이어지는 도로가 갓 포장을 마친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섯 개나 있는 랜턴 하나 없이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임도로 이어지는 백련사. 여기서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길이 세 개로 갈라진다. 나는 ‘선택’이 아니라 운에 맡기는 ‘찍기’를 해야 했다.

1. 좌 2. 중 3. 우

무난하게, 중도를 찍었다. 가운뎃길이다.

먼 훗날 살펴보니 ‘좌’는 계곡으로 이어지고 조기운동회가 자리 잡은 공터가 있다. 진달래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능선 밑단이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을 타지 않아 길은 희미하다. 이곳으로 갔으면 조난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우’는 오른쪽에 계곡을 두고 오른다. 진달래능선과 곧장 이어지지만 목표물이 되는 바위를 찾기 위해 능선을 다시 한참 올라가야 한다.

나이키, 프로스펙스 같은 메이저 신발들이 시장에 나오기 전, 난 마이너였던 ‘까발로’를 신고 그 험한 길을 올라야했다. 바닥이 고무신에 가까워 발이 죽죽  밀렸다. 목이 말랐다. 당시 물을 사서 마신다는 건,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통화하는 것만큼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 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집에는 내 머리 두 배 크기인 ‘자바라 물통’과 식용유통에서 직업 전환한 물통만 있었다. 벌 받는 주제에 물통을 들고 갈 수도 없었다. 숨이 찼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드디어, 열 살 소년은 목표물인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서울의 한 귀퉁이가 눈으로 쉴 새 없이 들어왔다. 하늘을 봤다. 땅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점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달은 웃고 있는지 더 크게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스스스스……. 나뭇가지가 내 등을 살짝살짝 긁었다. 바람이 귓바퀴를 한 바퀴 핥고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산. 바람이 나를 맞이해주고, 나무가 손을 흔들어주고, 달과 별이 내 갈 길을 비추어 주는 산. 어른들이 산에 가는 건, 이런 느낌 때문이었나. 어느 순간 고통보다 즐거움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장갑을 들고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장갑을 건네받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능선에서 본, 달빛에 비친 거대한 세 개의 봉우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 2011. 여름

북한산 백운대. 루트명 서미트 E. 난이도 5.11a1)의 페이스2)다(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높은 난이도를 가졌다 한다). 첫발을 어디에 딛어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첫 볼트3)가 멀다. 첫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지 못하고 추락하면 바닥을 치게 된다.4) 발이 밀린다. 분식점 식탁 위에서 난데없이 미끄러지는 어묵 국물 그릇처럼, 발끝은 갈 길을 잃었다. 다행히 첫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었다. 끝이 아니다. 산 넘어 산이다. 다시 선택의 갈림길.

1. 좌 ? 조금만 가면 안전하다. 그런데 디딤과 손이 너무 멀다. 리스크가 크다.

2. 중 ? 그대로 직상한다. 추락을 하더라도 수직으로 하기 때문에 위험이 적다.

3. 우 ? 나무와 큼지막한 바위틈이 있다. 하지만 루트를 만든 개척자의 의도가 아니다.

나의 선택에 나의 안위가 달렸다. 오래전 그날처럼, 중도를 택한다. 젓가락 한 짝 두께의 바위 결에 손가락을 걸친다. 좁쌀만한 돌기에 발을 올린다. 모든 체중을 싣고 일어선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공포에서 비롯된 이 전율. 오토바이 제대로 타고 있다. 한 동작이면 위에 큼지막한(사실은 손마디 하나만 걸리는) 홀드를 잡고 한숨 돌릴 수 있다. 몸을 일으킨다. 부스스스……. 좁쌀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발 끝에 전해진다. 위의 홀드를 잡기 위해 몸을 띄운다. 성급했다. 추~락! 비명을 지르며 10m 가까이 떨어진다. 추락거리가 길어 몸이 뒤집어진다. 쿵! 머리가 벽에 부딪힌다. 헬멧을 쓰고 있어 괜찮다. 다시 올라간다. 다시 추~락! 또 추~락! 추~~~~~락! 등산객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나의 자유낙하를 감상하고 있다.

“형, 이번에 안 되면 그냥 내려갈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한 루트의 60%를 돌파한 지금, 어떻게 해서든 올라가야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호흡을 길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손끝에 힘을 주고 짧은 외침과 함께 한발 올라섰다. 다시 한발. 끝이 보인다. 짧은 횡단을 한 뒤 오름짓을 끝냈다. 땀이 온몸에 흥건했다. 손끝은 피로 물들었다. 팔뚝은 부하 때문에 부풀어 올랐다.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한 다음 등반자가 오를 차례. 정확히 12초 후, 그가 절규했다.

“야! 발 어디 찍어야 해?”

#2012년, 봄

4월 11일 총선, 당신은 선택했습니까, 찍었습니까?

▼주석

1) 암벽의 표면 상태, 기울기 등을 고려해 난이도를 부여한다. 5.6부터 5.15까지 난이도가 매겨져 있으나 5.13 이상은 국내에서 등반하는 사람이 극소수다. 대개 5.8~5.9까지는 웬만큼 운동을 한 사람이면 등반이 가능하다. 5.10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전문적인 체력과 기술이 요구된다.

2) 암벽 형태에 따라 크게 크랙(crack), 슬래브(slab), 페이스(face), 오버행(overhang), 루프(roof)로 나뉜다. 크랙은 돌출 또는 함몰된 바위의 선, 슬래브는 밋밋한 바위 면, 페이스는 슬래브보다 각도가 있는 바위면. 오버행은 기울기가 90도가 넘는 바위 턱. 루프는 평지와 거의 일직선을 이루는 바위 천장이다

3) 바위에 박혀 있는 고정 확보물. 등반자는 안전을 위해 몸에 여러 장비를 찬다. 멀티피치 등반(제법 긴 코스를 여러 번에 나눠 등반하는 것을 말함)을 할 때는 앞 뒤 개폐구가 있는 퀵드로우(Quick-draw)를 20여개 찬다. 바위틈에 설치하는 확보물인 프렌드(friend, 정식명은 SLCD, Spring Loaded Camming Device다. 1980년대 중반에 발명됐을 때, 개발자가 동료와 함께 등반 중 ‘그 친구, 가져왔어?’라고 물어보면서 프렌드로 불리게 됐다)는 10여 개 찬다. 자기 확보기구와 하강기, 등반형태에 따른 다른 장비를 합하면 그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

 4) 등반 은어가 몇 개 있다. ‘바닥 친다’는 추락해 바닥에 닿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 중상이라 큰 사고다. 그래서 선등자의 등반능력이 중요하다. 등반 은어에 대해서는 추후 게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