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1회>

 

편집기자협회보의 새 칼럼, 충청투데이의 나재필 부장의 ‘feel’ 시작합니다.

 

한파, 뼛속까지 북극 저기압이 휘몰아친다. 마치 우랄산맥을 넘은 시베리아 냉기류가 가슴 한복판에 고드름을 만들어놓은 것 같은, 찌릿한 한기를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그 한랭전선은 깊고 벼리다. 겨울이 한창일 때 봄을 애써 기다리듯 고혈압의 몸은 저기압의 통증을 힘겹게 밀어낸다.

경상도 어느 시골에 봄소식이 있다기에 에둘러 채비를 꾸렸다. 봄꽃과, 그 봄의 온당한 얼굴이 바람에 성기어 있다는 귀띔을 들은 이후 며칠간 잠을 청하지 못했다. 겨울의 끄트머리서 만나는 봄, 평균수명 중간쯤에서 만나는 안온한 설렘이었다.

아내에게 1박2일의 출타를 득하고 장도에 올랐다. 아내의 눈빛이 퀭하다. 아내는 39억 9999만 9999년을 기다려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저와 잠시 결혼해 주시겠어요?”라고 청혼했으나 엉겅퀴처럼 질기고 모질게 20년 세월 동안 잘 견뎌오고 있다. 장삼이사들은 사랑의 효력이 1년이라고 말하는데 ‘연인’으로 만나 ‘인연’이 된 그 초심은 아직 유효하다. 유효하다는 것은 유통기한이 남아있다는 뜻일 터. 아직까지 등을 돌리지 않은 것을 보면 하늘이 부여한 60년 해로(偕老)는 현재진행형이다. 등과 등 사이는 1㎝도 안 되지만 등을 돌렸다면, 말 그대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거리다. 지구 한 바퀴는 4만120㎞. 시속 100㎞의 자동차로 16일 하고도 16시간을 달려야 사랑하는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 시속 300㎞의 KTX로는 5일 하고도 13시간 20분, 900㎞의 비행기로는 44시간 20분이 걸린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등을 돌리지 말아야하는 ‘거리의 사랑학’이다.

자동차는 금강하구에서 뻗친 차령산맥의 등줄기를 타고 충주 남한강에서 북동쪽으로 횡단한다. 박달 선비와 금봉 낭자의 엘레지가 고개를 넘고 세월을 뛰어넘어 박달재를 삼킨다. 한양 가는 도련님과의 이별이 애달파 한사코 울어야만 했던 낭자의 순애(殉愛)가 질곡의 터널을 관통하고 있다. 연인이란 닮아가는 것이다. 수십 년 따로 살아온 사람끼리 만났지만 식성, 취미, 얼굴, 심지어 성인병까지도 닮는다. 만남보다도 벼리고 이별보다도 슬픈 변이(變移)다.

차령산맥을 비켜서면 소백산맥이 뒷짐을 지고 있다. 왜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산객도 모르고 무명씨도 모른다. 하지만 산턱에 올라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삶의 정점(頂點)이기 때문이다. 발라내고 발라내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산의 뼈대처럼 여염(閭閻)의 산야는 창백하다. ‘무소유’의 인연처럼.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인즉 여행자의 심산도 모든 걸 버리게 된다.

도계는 이미 충청도에서 경상도를 넘고 있다. 단양 너머 풍기 땅이다. 돌연 피안(彼岸)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홍빛 채화, ‘낙일(落日)’이 차창 밖에 그려져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연(緣)의 끝을 부여잡고 연(蓮)을 떠올린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연못에서 자라면서도 언제나 청정한 자태를 유지한다. 깊고 더러운 곳일수록 꽃은 더욱 탐스럽게 핀다. 대부분의 꽃은 꽃잎이 지고 씨방이 여물어가지만 연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물속에 떨어진 연꽃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움터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연은 신비한 것이다.

드디어 ‘봄꽃’을 만났다. 봄꽃은 겨울 속에 피어난 진짜 봄꽃이 아니었다. 지우들의 웃음꽃이었다. 강산에 피어난 꽃보다 더 찬연한, 아름다운 만개였다. 질펀한 협잡과 요언(妖言)을 함께 견딘, 피치 못할 행불행의 상처를 함께 끌어안던 오래된 ‘인연의 꽃’이었다. ‘말리지 마. 이제 난 바람이야….’ 온몸을 섞어 만든 소주와 맥주에서 봄이 잉태된다. 봄 치기(稚氣)에 취기가 오른다. 여기저기서 재회의 술잔이 청량한 봄바람을 일으키며 왁자지껄하다. 아, 기쁘도다. 언제 또 이렇게 만당(滿堂)의 박수, 만당의 술잔을 받아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