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8> ‘편집 안목’으로 본 대선 / 

 

2022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코로나는 더욱 극심해지는데, 대선 후보들은 국가 정책과 나라 미래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드러난 각자의 흠들을 수습하고 서로 를 비난하는 일에 매몰되어 진흙탕을 방불케 한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나라의 큰 일을 맡길 만한, 경륜과 품격과 덕망(德望)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차라리 ‘덜 나쁜 사람’을 찾아야 할 지경이라는 얘기가, 공감을 얻는 판이다. 

이런 가운데, 편집쟁이로 살아온 필자는 과연 ‘편집의 도(道)’를 갖춘 후보가 있다면 차라리 이런 시 국과 난국을 헤쳐나갈 ‘원칙’과 ‘묘수’를 내놓지 않을까 하는 공상(空想)을 해본다. 생각해 보면 아주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편집의 원리’에는, 세상을 읽고 여론을 수준 높게 경영하는 깊이 있는 통찰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편집 후배들이 스스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일선(一線)의 감각’을 배 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후배들이 ‘편집공부’할 겸 해서, 나와 함께 편집의 안목으로 대선을 한번 재단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보는 것이다.

 

1. 대통령은  ‘저널리즘’이다

 

우선 편집은 ‘저널리즘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 다. 저널리즘은 '정기간행물(journal) 정신(ism)' 이라고 풀이한다. 정기간행물은, 인류 역사 2000 년 문명을 일으킨 ‘비정기간행물’, 즉 책의 진화 가 고도화한 끝에 19세기 말에야 탄생한 것이다. 비정기(非定期, 발간 시기가 일정하지 않음)에서 ‘정기’로 넘어오면서, 간행물과 간행물 사이의 기 간(期間)이 생겨나면서 저널리즘이 발생한다. 저널리즘의 핵심은, 그 기간 속에서 독자에게 어필할 만한 것들을 찾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가장 강력한 어필은 ‘뉴스’였다. 새로운 소식과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전략이다. 저 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뉴스를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 좀 더 서비스를 긴밀하게 하 려는 노력이 나오면서, 간행물을 내는 기간을 좁 혀왔다. 계간에서 월간으로, 주간으로, 일간으로 나오면서 ‘신문(新聞)’이라는 간행물이 꽃피게 된 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도시 문명과 대중(大衆)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신문은 매일매일에 일어 난 것들이나 발굴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독자 를 붙잡는다. 각 미디어들이 벌이는 특종이나 기 획 경쟁은 바로 그 때문에 치열해진다. 이 경쟁의 내용 전체를 ‘편집(編輯)’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은 근대 이후에 국가가 리더십과 경영 을 중요시하게 되는 정치적 진화과정에서 태어 났다. 그 이전의 정치체계는, 군왕(君王)을 중심 으로 왕가(王家)가 권력을 독점하는 형식이었다. 정해진 임기도 없었다. 군주의 독재는 어쩌면 생 태적으로 당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 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규모 세계전쟁을 치르면서, 국가리더십이 ‘시대의 요청’을 받게 된 다. ‘대통령’은 바로 그 산물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은 근대 이후에 국가가 리더십과 경영 을 중요시하게 되는 정치적 진화과정에서 태어 났다. 그 이전의 정치체계는, 군왕(君王)을 중심 으로 왕가(王家)가 권력을 독점하는 형식이었다. 정해진 임기도 없었다. 군주의 독재는 어쩌면 생 태적으로 당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 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규모 세계전쟁을 치르면서, 국가리더십이 ‘시대의 요청’을 받게 된 다. ‘대통령’은 바로 그 산물이라 할 만하다. 군왕과 대통령의 차이는, ‘요구되는 핵심 자질’ 의 차이에 있다. 군왕은, 혈통과 덕망(德望, 신과 같은 높은 품성의 이데아)을 지니는 게 중요했다 면, 대통령은 국가를 제대로 부강하게 하고 국민 들의 생활을 안정되게 하는 역할이 더욱 주목된 다. 거기에 대통령은, 저널리즘처럼 정기(定期)의 통치만 가능하기에 그 집권 때의 성과와 성가(聲 價)가 몹시 중요하다. 임기제인 대통령은, 따라서 정기간행물과 같이 그 시기의 최적화된 콘텐츠 로 승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최적화’는 누 가 판단하는가. 바로 정책의 ‘독자’인 국민이다. 그 만족도를 우리는 민심(民心)이라고 표현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대통령 선거가 왜 신문 한 판을 편집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 일 것이다. 대통령은 ‘정기간행물’과 같은 존재이 며, 저널리즘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해진 기간에 국민에게 가장 유익하고 의미있는 정치를 기획 하고 구성하는 ‘대통령 저널리즘’이다.

 

2. ‘공정’ 외치려면 편집공부부터 하라

 

저널리즘의 핵심 전략은, 공정성(公正性)과 선 정성(煽情性)이다. 우선 선정성은 금방 알 수 있 을 것이다. 산업사회의 바쁘고 피곤한 삶 속에서 대중의 감정을 부추겨 독자를 늘리려는 전략이 다. 지금 대선 경쟁에서 ‘쥴리’가 등장하고 ‘형수 욕설’이 등장하는 까닭은 정치 당사자들이 저열 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손쉽게 민심을 움직이 려는 유혹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편집은, 이런 저널리즘의 얕은 수법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 선정적인 것은 당연히 잘 먹힌다. 그러나, 그것은 그 매체를 저질로 만들며, 한번 속인 독자를 다시 속이기가 어렵다.“ 선정성을 함부로 활용하는 전 략은, 민심이 지닌 ‘뱃속의 판단’을 우습게 보기 때문에 내놓는 우책(愚策)이다. 혹시 긴요한 시점 이라 썼다 하더라도 빨리 빠져나와 정상적인 메 시지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널리즘의 ‘공정성’은 그럴 듯한 덕목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마도 짐작하는 그런 내용이 아닐 지도 모른다. 공정성은 언론의 중심을 잡는 고결 한 덕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독자를 늘리기 위해서 생겼다. 19세기 저널리즘은 주로 정치적인 목적에서 뿌렸던 ‘당보(黨報, Party Paper)'에서 시 작됐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돈을 받고 파는 대 중지로 바뀌면서 독자 늘리기 경쟁을 벌인다. 선 정성도 그런 목표로 취한 전략이지만, 공정성 또 한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좌파나 우파 한편의 입맛에만 맞는 신문을 만들면, 절반의 시장을 잃 는 꼴이 된다. 그러니 양쪽을 다 균형있게 싣거나 양쪽에서 다 헷갈릴 만한 콘텐츠로 모든 독자를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이 바로 ’공정성‘의 시작이다. 대통령이란 ’저널‘이 간과하는 것이 이 점이다. 문재인정부가 초기에 공정을 외쳤고, 또 지금 대 선후보들도 공정을 외치지만, 안타까운 것은 공 정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공정은 스스 로가 몸담은 진영의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 이 아니다. 공정(公正)이란 말의 앞에 붙은 ’공 (公)‘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체의 올바름 을 추구하는 것이 공정이지, 자기의 정의를 부르 짖는 것이 공정이 아니란 얘기다. 공정이란 말에 서 강조점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쪽의 정의‘다. 이걸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의견과 공존할 수 있 는 실력이 바로 공정의 능력이다. 국민이란 정책 수요자 혹은 ’정치의 독자‘를 보다 많이 끌어들이 려면 어떻게 되야 하겠는가. 공정을 외치는 이들 은, 저널리즘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3. 내로남불은 ‘입장과 관점’ 공부 덜 한 것

 

편집 공부를 하면, 가장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관점(Point of View)'이다. 언론은 팩트 를 보도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당신은 생각을 더 해야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팩트’는 신의 영역 에 가깝다. 인간은 팩트에 만전을 기할 뿐이지 완 전한 팩트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팩트가 아니라, ‘입장’에 근거한 관점들이 있을 뿐이다. 그 것이 팩트에 가까워지는 것은, 그 내용을 수용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 를 들면 종군(從軍)기자는 팩트를 보도하는 사람 일까. 전장(戰場)에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을 보도 하니 이보다 더한 팩트가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는 전쟁 의 한쪽편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전 쟁은 양쪽이 있으며, 종군기자의 눈에는 다른 편 의 비명과 희생과 슬픔이 보이기 어렵다. 많은 전 쟁은 이보다 훨씬 외눈의 관점에서 보도된다. 애 국적인 보도일수록,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정책들에 대해 지 니는 심각한 이견은, 우리 속에 있는 입장과 관점 들이 상당한 편차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팩 트’에 있어서, 유보적인 관점을 지니지 않는다면, 오히려 많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자각 증세 는 있어야 한다. 모든 기사는 ‘관점’이며, 전체적으 로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서 세계적 유행어가 된 ‘내로남 불’은 바로, 관점과 팩트의 간격을 말해주는 깜찍 한 사자성어다. 로맨스와 불륜은, 같은 것의 다른 관점이다. 이것을 우린 팩트라고 우기는 것에 익 숙하다. 남이 그것을 우기는 것을 볼 때에야 내가 말한 것도 팩트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 려보게 된다. 과거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로 의원 이 된 여성인권 운동의 상징인물이, 같은 당 후보 아들의 여성비하 게시글에 대해 ‘평범하다’고 말 한 것은, 관점이라는 것이 어떻게 팩트와 따로 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내로남불의 공방은, 관점을 말하면서 팩트라고 우기는 일의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관점이 ‘여야 전환’같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때, 그전에 주장한 ‘팩트’가 팩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는 꼴이다. 이때 생겨나는 인간의 태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 無恥)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내로남불 정치의 ‘권 위자(?)’가 된 까닭은, 임기응변과 피상적인 전과 (戰果)를 의미있다고 여기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 른다. 겸허와 신중이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한다.

 

4. 독자의 실리(實利)로 소통하라 고교생보다 못한 대선주자

 

얼마전 제주에서 연구원 박사들이 모인 자리 에서 편집 헤드라인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들에게 우선 기사 하나를 주고 제목을 달아보게 하였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시나리 오 작가인 노라 에프론이 공개한 고교시절의 ‘기 사쓰기 수업’ 스토리에서 나온 내용이다.

 

<오늘 비빌리 힐스 고등학교의 케네스 L 피터스 교장은 다음주 목요일 비벌리 힐스 고등학교의 전 교직원이 새크라멘토에서 열 리는 새로운 교수법 세미나에 참가할 것이라 고 말했다. 이 세미나에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시카고 대학장 로버트 메이너드 허친 슨 박사, 캘리포니아 주지사 에드먼스 팻 브 라운이 강연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단신(短信) 기사는 비벌리 힐스 고교신문에 실린 것”이라고 밝히고, 연구원들에게 읽고나서 바 로 생각나는 대로 제목을 말해보라고 주문했다.

“비벌리 힐스 교사들이 가르치는 법 배운다” “선생님들도 배우러 간다”

“선생님이 주지사에게서 가르치는 법 배운다” 이런 제목이 나왔다. 이 기사를 읽고 이 정도의 제목을 다는 수준이라면, 기본적으로 편집기자의 역량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편 집기자’의 수준을 갖췄을 뿐이다. 비벌리 힐스 고교 신문 1면 머릿기사로 나온 이 글의 헤드라인은 ‘다 음주 목요일 휴교’였다. 헤드라인을 달 때에는, 기 사를 요약하거나 기사의 매력을 찾아내는 일보다 급한 것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예화다. 그것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리(實利)적인 정보다. 이번 대선이 혼탁하고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 기까지 하는 까닭은, 싸움이 치열하거나 논점들 이 의미없어서가 아니다. 그 싸움이 향하고 있는 것이 ‘상대를 고꾸라뜨리기 위한 방략’ 이외에, 우 리를 위해 어떤 실리(實利)의 결과를 가져다주 는지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K방역이 멋있 었던 것은 그 이름을 잘 지어서가 아니라, 적어 도 그것이 J방역보다 효율적이었고 국민의 건강 과 안전을 잘 제어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J방 역은 살아났는데, 우린 왜 이런가. 그것이 무너졌 으면, 정치는 ‘국민의 안심을 위한 대책과 전략과 메시지’를 제대로 내놓는 게 가장 급하다. 안되면 그런 전략팀이라도 구성해서 나날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부동산도 ‘대장동’으로 쓰러질 누 군가를 기대하거나, 이 사안의 유불리만을 읽어 낼 일이 아니라, 그 부당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덜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저 민간과 공공의 합작 모델이 지닌 문제와 가능성을 풀어내서 향후 부 동산 정책을 입안하는 중요한 모델로 쓰는 지혜 를 보여줘야 한다. 험한 칼을 쓰지 말고 선한 칼 을 써라. 요컨대, 민심이 당연히 자신을 찍어야 한 다고 호소하지 말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향하 는 실리(實利)에서 발상을 시작하라는 얘기다. 고교신문의 어린 편집자들도 알고 있었던 ‘소 통의 비밀’을, 이 나라 대선판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민심이 왜 날마다 혀를 차겠는가.

 

 아주경제 편집총괄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