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노학수 중앙일보 기자
노학수 중앙일보 기자

‘여름이었다’

 한동안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밈인데요. 밈의 요지는 어떤 문장 뒤에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을 붙이면 감성적으로 들린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 면 이런 식이죠.

‘신호 대기 중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여름이었다’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요? 그런데 저 밈의 계절 을 가을로 바꿔서 사용해도 될 거 같아요

‘가을이었다’

가을에는 괜히 쓸쓸한 계절이죠.

거리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과 얼마 남지 않 은 채 나뭇가지에서 팔랑 거리는 잎들을 보면 괜 히 마음이 짠해지고요. 가만히 책상에 앉아 ‘올해 내가 세운 계획을 얼마나 실천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이미 제 궤도를 저만큼 벗어나 있는 새 해초 결심을 반성하게 되죠. 그리고 또 한 살 더 나이를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가을은 그 어느 가을보 다도 좋았어요.

매일 새파란 하늘이 출근길을 맞아주고, 그 하 늘 아래 펼쳐진 모든 피사체마다 밝게 빛나는 모습들에 유난히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네요.주말 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이벤트 없이 함께 손잡고 걷기만 해도 마음까지 행복이 차오르던 계절이었어요.

어느새 짧은 가을이 지났어요.

며칠 전만 해도 출근길에 반팔을 입고 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두꺼운 패딩의 무게감이 어색하지 않게 됐어요. 백화점에서 새로 산 잠바와 셔츠는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옷장 속에 모셔져있어요.

어쩌면 이러다 가을이 크리스마스나 핼러윈처 럼 하나의 시기쯤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라고 걱정 아닌 걱정도 돼요. 혹시 아니면 정말 ‘가을 절’이라는 공휴일이 나중에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요.

마감이라는 반복되는 일상과 또 쏟아지는 기 사들에 휩싸여 정신없이 떠내려가는 하루, 한 달 그렇게 11월 어느새 겨울의 입구에 도착했네요. 어제보다 확실히 조금 더 겨울에 가까워진 바람이 느껴져요. 서울에도 벌써 눈도 내렸네요. 거리에는 노란 낙엽만큼 알록달록한 크리스마 스 장식들이 불을 밝히고 있고요.

지나가다 만나는 포장마차 어묵의 뽀얀 김에 눈이 가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침대 위 전기장판을 틀게 됩니다.

겨울은 따뜻함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죠. 그 계절에 맞는 장면과 행복한 순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올 걸 알기에 속 절없는 시간의 흐름에도 위로가 돼요.

파랗게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새롭게 다가올 일상 속 숨어있는 온기를 기다리던 계절.

그게 저의 가을이었습니다.

 

중앙일보 노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