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아침 8시. 뉴스봇이 오늘의 주요 뉴스를 물어다 주는 시간. 한 번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는 녀석은 그날도 손에 작은 신문을 가져다줬다. 어떤 의원님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는지, 어떤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비트코인은 또 얼마나 올랐는지…. 기사 편식도 없는 녀석 덕분에 골고루 얘깃거리를 챙긴다. 그날도 뉴스봇이 챙겨준 얘깃거리를 들고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내 자리까지 가는 길에 놓인 탁자. 그 위에는 주요 일간지들이 열 맞춰 놓여있다.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 기사를 읽고, 제목을 곱씹고…. 한참을 뚫어지게 보기만 했다. 아니 반성의 시간을 갖는 순간이었다. 남들보다 덜 감성적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읽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사들이 내 손을 거치면 그렇게 딱딱해졌다. 분명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데 제목은 도로시를 만나기 전 심장 없는 깡통 로봇 같다. 입사하고 1년이 지나 맡았던 ‘그 지면’은 아직도 창피하다. ‘좋아, 잘했어. 완벽해’ 자아도취에 빠져 데스킹을 거치면 빨간 비로 젖었다. 혼자서 ‘감동 제조기네’ ‘애정이 철철 흐르네’ 하며 달았던 제목. 치명적인 오류였다.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 3전 4기 창업 성공기부터 스타 인터뷰 기사까지. 일상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단 몇 자로 정리하라니. 단언컨대 ‘그 지면’은 가장 힘들었던 과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기사 ‘환생’은 장기 기증에 대한 단편적인 사고를 떠나 기증자, 수혜자의 입장을 써 내려간다. 의사 형이 사고로 뇌사에 빠진 동생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가슴만 내리친 부모의 마음, 끝내 그를 보내줘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처절함…. 오롯이 몇 자 되지 않는 제목으로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라니. 잔머리를 굴리다 노골적으로 단어를 쓸 때도 있다. 눈물, 이별 등 수많은 단어를 떠올리지만, 감정선을 헤칠 뿐이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슬퍼요, 여러분도 슬프죠?’하고 감정을 억지로 자극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감정을 끌어내는 건 어렵다. 현장감이 느껴지게, 내용을 궁금해하게, 공감할 수 있게…. 챙겨야 할 게 많다. 힘을 빼볼까?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실수를 반복하겠지. ‘널 못 놓는 엄마께 말했다/네 일부라도 살게 하자고’. 뇌사 상태의 동생을 둔 형의 감정과 장기 기증을 연상케 하는 제목. 감정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울림. 눈물이 고인 건 비밀이지만. 울림을 주는 편집은 평생 과제일지 모른다. 그러면 어떠한가. 감동을 주는 지면을 만날 때마다 한 번 더 공부하고, 반성하고, 한 단계 발전하자 마음먹음에 감사하다. 

중도일보 박솔이 기자


<동아일보 2021년 2월 1일자 A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