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보고자 한다.

고즈넉한 북촌에 위치한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실에는 책과 그림이 가득했다. 연필로 끄적거리는 낙서처럼 공간의 소소한 물건들과 작가의 작품들이 기자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했다. ‘베란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노준구 작가는 한국에서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과정을 밟았다. 여러 단행본과 매거진, 음반,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다양한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일러스트 기반의 작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으며, 종종 대학에 강의를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작업중인 노준구 일러스트레이터>


Q.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학부 시절부터 드로잉 기반의 작업들이 많은 편이었어요. 지금의 제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느낌과는 많이 달랐지만요. 틈틈이 습작을 모아서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도 꾸렸었는데, 우연히 대학교 4학년 때 제 작업을 보시고 클라이언트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12명의 작가와 함께 협업해서 다이어리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죠. 과제하듯이 일을 하면서도 너무 즐거운 거예요. 제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적절한 보수까지 받으면서 작업하다 보니 무척 행복했죠. 그래서 그 시점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쪽으로 전공을 좁혀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Q. 유학시절에 관한 얘기가 궁금합니다. 공부하던 영국 학교의 교육 시스템이 한국과는 어떻게 달랐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당시 한국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만 전적으로 다루는 전공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은사님께서 디자인 역사가 깊은 영국을 추천해주셔서 킹스턴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유명한 학교이다 보니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했고, 덕분에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와 시각을 경험할 수 있었지요. 각자의 작업에 대한 평론을 할 때나 피드백을 줄 때도 굉장히 표현이 자유롭더라고요. 덕분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만큼 저에겐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죠. 한국에서 공부한 것들이 제 작업의 주춧돌이었다면, 영국에서 공부하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Q. 초현실주의 느낌의 일러스트 작품이 많은데 주로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A. 먼저 저는 일러스트레이터이기 때문에 작업을 의뢰받은 작업과 개인작업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작업과정은 개인작업하듯이 의뢰받은 작업을 진행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영국서 공부할 때 영감을 받은 부분이 많았어요. 고대 이집트 벽화 회화도 좋아했었고요. 마음에 드는 작가의 사진집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사진 작업이 영화처럼 앵글 안에 고도로 모든 것들이 연출된 듯한 분위기의 스타일이어서 눈길이 갔죠. 그런 장르의 극화된 그림을 그려보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제 그림 안에서도 무대를 세팅해놓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당히 딱딱하고 희화적으로 보이도록 그리기 시작했어요. 결국엔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사조의 그림들과 사진작가들의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Q. 연필 드로잉이 베이스인 작업들이 많아 보이는데 특별히 연필을 도구로 선호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영국에서 제 스타일을 만들려고 할 때 항상 연필이 제 곁에 있었어요. 연필과 함께 아크릴물감과 과슈 등의 재료들도 사용했었습니다. 기본 드로잉은 연필을 주로 사용했고 재밌는 부분은 컬러로 강조했죠. 물론 컬러를 많이 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연필의 모노톤과 대비되는 아크릴물감의 플랫하고 쨍한 컬러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이때 발견한 양식이 자연스럽게 스타일화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그림을 보시면 정적이고 차분해 보이면서도 절제되어 보이는 느낌이 있습니다.


Q. 가수 윤종신씨와 함께 작업했던 일러스트 작업이 인상 깊은데요.

A. 2013년에 가수 윤종신씨의 '월간 윤종신' 표지 작업에 작가로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윤종신씨와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가 또 다른 일러스트 작가들을 섭외해서 진행된 프로젝트인데요. 작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출판 분야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었어요. 컬래버레이션 작업뿐 아니라 연말에 전시도 하고 윤종신씨가 작은 공연도 기획하셨었거든요.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이벤트와 함께하다 보니 좀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가수와 일러스트 작가들이 함께 앨범 표지 작업을 진행한 것이 어떻게 보면 저희 분야와 작가들에게도 좋은 프로모션의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일러스트레이터들도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텐데요. 작업자로서 색깔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A. '개성', ‘자기다움’을 찾고, 그것들을 내가 만든 결과물에 잘 녹여서 작품군을 늘리고, 또 하나의 집을 짓고, 세계를 만드는 것이 타인에게 자기의 개성으로 읽히고…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요. 일본에 유명한 디자이너 중에 '사토 다쿠'라는 분이 개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개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존재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항상 바뀌기 때문에 개성이라는 것을 쫓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자기다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맞는 것일까? 그 책을 읽고 나니 개성을 계속 찾는다는 것이 어쩐지 굉장히 어색한 형국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찾았다 하더라도 과연 저게 정말 온전한 내 것일지. 정말 나에게서 나온 개성일지. 어디서 무의식적으로 본 것을 통해 발현된 것은 아닐지.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바뀌는 나에게 집중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태도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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