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중섭의 유화 ‘흰소’ (1954년작)


그대 편집기자여,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 아침 흰소처럼 백설(白雪)의 등성이를 편 북악(北岳)을 보며 이야기 하자.
이 땅의 신문 100년사에 편집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 편집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 언제 그것을 이야기 하랴. 그대 편집기자여. 혹자는 앉고 혹자는 서고 누군가는 쓸쓸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누군가는 심각한 얼굴로 다가와 서서, 잉걸불을 사이에 둔 겨울 야영과도 같이 우리 마음의 무리 지어 도란도란 편집을 이야기하자.
결코 화려하지 않은 자리, 도무지 빛나지 않은 일더미가 되어온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인생, 우리의 이름, 우리의 빛, 우리의 노래, 우리의 한숨, 우리의 편집을 이야기하자. 우리는 저마다 편집을 쥐고 있지만 때로는 편집을 불평하고 편집에 혀를 차고 편집에서 학을 떼며 돌아앉지 않았던가. 시대를 원망하며, 신문을 탓하며, 혹은 선배들을 손가락질하며 천천히 마음을 식혀오지 않았던가. 디지털 문명에 마치 패배자가 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던가.
그렇지 않다. 그대 편집기자여. 새 천년이 된지 스물 한해가 흐른 지금, 우리는 디지털로 격동하는 언론과 미디어판을 온몸으로 체험해왔고 한해의 입을 막아온 마스크시대 인간과 인간을 격리하는 전염병의 창궐을 만났다. 코로나는 지난 날 우리가 자부했던 세계화와 문명화, 도시화를 순식간에 ‘해체’했고, 인류의 야심찬 전진을 멈추게 했다. 꼭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 진정하게 가치있는 것, 우리 삶을 진실로 알차게 하는 것을 새롭게 성찰하게 되었다. 모든 것의 뉴노멀이 시작됐고, 우리에겐 ‘편집 뉴노멀’이 시작됐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시대는 비상(非常)한 마음의 대전환기다. 그대 지금이야 말로 ‘인생편집’을 하라. 인생편집을 내놓으라. 지난 새천년 21년간 급히 움켜잡았던 온라인 신문, 디지털화, 스마트화, 디지털스토리텔링, 유튜브, 네이버와 구글과 카카오 생태계, 소셜네트워크, 인스타그램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답은 찾지 못했다. 그 모두가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가변(可變)의 신미디어들일 뿐이다. 매체는 유동(流動)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매체에 고정되지 말고 얽매이지도 말고, 편집의 소울을 다시 살필 때다. 오직 편집의 본질에서 스스로 완성체가 되도록 나아가고 또 나아가라.
우리는 특정매체의 편집기자였지만, 존재 본연의 편집기자이기도 했다. 이제 편집기자의 매체를 만들어가라. 편집의 힘이 매체를 혁신하고 편집의 실력이 새로운 판에서 매체를 돋우는 미션을 수행해 가라. 그대가 ‘시대’가 되라. 시대의 팔로어(FOLLOWER)가 되지 말고 시대의 크리에이터(CREATOR)가 되라. 편집은 원래 창조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대 직업을 창조하라. 소명(召命)을 창조하라. 그대의 가치를 창조하라. 시대정신을 창조하라.
지금 알고 있는 부정적인 신문비전을 버려라. 자폐적인 언론관, 쪼그라든 편집자 의식, 확장 불가능한 편집 고정관념을 폐기처분하라. 코로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일깨워주었다. 언택트 시대, 택배 시대, 집콕 시대, 개인 시대, 세계와 자아가 단독대면하는 듯한 시대. 이 시대에 신문이 무엇을 할 것인지, 편집이 어떻게 이 새로운 시장의 새로운 뉴스소비자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생각해보라. 신문은 ‘뉴스’를 택배하는 선구적인 서비스였다.
디지털과 코로나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줬는가. 뉴스서비스의 빠르고 손쉬운 접촉과 소통은 오직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신문서비스의 핵심이었던 진정한 ‘편집정신’이 결여되어 시대를 읽는 눈이 혼란스러워졌다는 인식이 아닌가. 그 편집정신이란 무엇인가. 뉴스의 팩트를 치열하게 점검하고, 해석하고 의미짓고 가치를 부여하고 배열하고 미학을 추구하고 언어를 조율하고 해학을 만들어내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목소리를 창출하고 스토리를 유통시키던, 바로 그 일이 아니었는가. 편집은 언론의 생기(生氣)이고, 사회의 지혜이고, 세상의 거울이다.
편집기자여, 다시 일어서라.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그대 자신을 사랑하라. 편집하는 그대야 말로, 여전히 언론의 최전선이며 시대의 전황(戰況) 그 자체이다. 시대의 분노와 시대의 옳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되, 그대가 이성의 전사(戰士), 상식의 전사, 성찰의 전사임을 잊지 말라. 그대가 판단의 전사, 사랑의 전사, 국가의 전사, 인류의 전사, 자연의 전사, 시대의 전사임을 깊이 품으라. 그대는 어디에서든 지금 가장 가치있는 일을 고민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라.
그대여, 코로나시대를 편집하라. 편집은 편집으로 말한다. 불평하지 말고 불만을 내려놓고, 수처작주(隨處作主)! 지금 여기에서 최고가 되라. 오늘도 떨리는, 오! 늘 떨리는 제목을 달아라. 제목은 제 목을 거는 것이라고 어느 선배는 말했다. 기사를 요약하는 제목은 무조건 ‘의문의 1패’라고 형들은 말했다. 메시지 속에 들어있는 힘있는 언어의 갈고리를 집어내서 헤드라인 자리에 척 걸쳐놓고 독자와 직면(直面)하라고 데스크는 말했다.
레이아웃은, 어제의 판 위에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놀이가 아니다. 독자의 머리 속에 세상을 디자인해주는 작업이다. 레이아웃이야 말로 언어를 디자인하고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최고의 지적 작업이다. 정해진 틀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깨는 게 레이아웃 정신의 제1번이다. 베토벤처럼 말하라. 깨질 수 없는 형식은 없다. 독자와의 긴박한 소통을 위해 파격은 레이아웃 서비스의 핵심이다. 후배여. 그대 자신이 편집을 즐기는 자가 되라. 심장이 후련해지는 편집의 맛, 편집의 쾌감을 터득하라. 남의 칭찬 받는 것에 일희일비하지마라. 창조자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리다.
편집기자여, 우리 편집을 이야기하자. 두려울 필요도 없지만 부끄러울 필요는 더더욱 없다. 눈물은 필요하지만 때로 눈을 부릅뜰 필요도 있다. 차가운 머리도 필요하고 집요한 의지도 필요하며 철학과 향기도 필요하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은 소속하고 있는 신문사만이 아니다. 바로 신문이다. 아니 신문이 아니라 신문 속에서 그대의 마음을 읽는 독자의 눈이다. 독자의 눈을 통해 서로 소통한 하루하루의 콘텐츠들이다.
이념과 진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의 주관과 단호한 관점을 지니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대의 진정한 진영은 상식이며 이성이며 객관이다. 모든 편집기자가 동지가 될 수 있는 까닭은 같은 진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존중하며 포용하고, 거짓과 폭력과 패거리와 시대착오적인 관념이 빚어낸 혼선들을 미워하되, 그 미움이나 혼선에 매몰되지는 않는 게 편집기자다. 편집기자는 시대를 앓는 시인이며, 오늘을 읽는 최초의 독자이며, 내일을 노래하는 위대한 예언자다.
편집기자여 새해에는 새 편집을 하는 새 기자가 되자. 이 가혹하고 지루한 코로나시대를 우리가 편집하자. 이것은 고귀한 미션이다. 올해는 코로나를 편집하는 것이 세상을 편집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느 때고 우보(牛步)로 정진하지 않는 때가 없었지만, 올해는 더욱 두 발에 힘을 주고 편집DNA를 돋우자. 그 벌떡이는 심장 속에 최고의 제목이 숨쉬고 있다. 그대는 편집 뉴노멀 시대를 BTS처럼 달려갈 21세기 21년의 멋진 제우스다. 



이상국 아주경제 편집총괄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