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제26회 한국편집상 대상은 경향신문 편집 노동자 3명(장용석 차장, 이종희 김용배 기자)이 협업한 작품이 차지했다. 1, 2, 3면에 걸쳐 ‘별다른 편집적 장치 없이’(소설가 김훈)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독자들에게 무섭게 환기시켰다. 이 지면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해 전 목숨을 잃은 김용균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했던 전태일까지 다시 소환시켰다.
지난 11월 13일은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지 50주기가 된 날이었다. 협회는 닷새가 지난 11월 18일 서울 종로5가 전태일 흉상 앞에서 이들 대상 수상자 3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1면 편집을 담당한 장 차장은 “신문이 발행되고 며칠 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를 만났는데, 내게 ‘잊힌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며 “편집기자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순간이었다”고 감동을 전했다.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였다. 제26회 한국편집상 대상 수상자 경향신문 장용석(왼쪽부터) 차장, 이종희·김용배 기자가

지난 11월 18일 서울 종로5가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 “전태일 동상 앞에 모이는 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장 차장의 제안이 있었다.



대상 수상자 3명 인터뷰


-전국 52개 회원사에서 연간 대략 40만 개의 지면을 쏟아낸다. 제26회 한국편집상엔 242개 후보작이 출품됐고, 그중 최고의 지면으로 뽑혔다.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해 달라.
장용석 차장(이하 장): 편집기자가 된 지 21년이 되었는데, 편집 일을 했던 지난 21년의 어떤 날들보다 이 지면을 제작한 이후 1년간이 가장 화려(?)했던 거 같다. 1년 묵은 지면을 대상으로 뽑아준 전국의 동료들과 협회 임원들, 심사위원들께 인터뷰를 빌려 감사드린다.
이종희 기자(이하 이): 개인의 업적이라기보다 경향신문 편집부 전체가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편집부장이었던 이승규 선배를 비롯해 모든 선후배에게 영광을 돌린다. 언젠가 ‘나의 지분’을 좀 더 늘린 지면으로 다시 한 번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용배 기자(이하 김): 하고 싶은 말을 앞에 선배들이 다 해버렸다.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지난 5월 24일 뉴욕타임스 1면(미국 사망자 10만 명 육박,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은 별다른 시각물 없이 코로나19로 사망한 1,000명의 부고로 꽉 채웠다. 대상을 받은 경향신문의 1면을 다시 떠올린 사람도 있었다. 그날 지면이 나오기까지 제작 과정을 얘기해 달라.
: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이름으로 지면을 만들자고 한 건 산재기획팀의 아이디어였다. 산재기획팀에서 출고한 기사들과 별도로 경향신문 내 뉴콘텐츠팀에서는 산재 관련 인터랙티브를 제작했다. 1면의 경우 신문에 실리는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명단을 전달받고 뉴콘팀의 인터랙티브 작업과 별도로 편집부 자체적으로 지면 제작에 들어갔다. 제가 담당한 1면의 경우 2주 정도의 기간을 줬는데, 산재 사망자 명단을 가지고 6가지 버전의 지면을 제작했고, 그 중에 하나가 지금 대상을 받은 지면이다. 지면 제작은 별도의 간섭 없이 편집부 내에서 자체 제작했고, 그 결과물로 한국편집상 대상을 받게 되어 더 기쁘다.


-화려하진 않지만 1면과 2, 3면으로 이어지는 지면이 통일된 느낌의 조화가 빛난다. 3명의 편집자가 어떻게 의사 조율을 했는지 협업 과정을 말해 달라.
: 제가 맡은 1면의 경우 2, 3면과 연결성보다는 독립적인 지면으로 제작하였는데, 2면과 3면을 맡은 이종희, 김용배 씨가 잘 만들었다. 통일된 느낌의 조화가 빛난 것은 전적으로 이 두 동료의 공이자 이들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1면을 만드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던 거 같다. 이번 대상이 개인적으로 더욱 빛나게 느끼는 이유는 함께 대상을 받은 두 후배가 서로 논의하며 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하루에 한 명 떨어져 죽는다” 통계 자체만으로도 무섭고 무거웠기 때문에 제목에는 다른 말을 보탤 필요가 없었다. 2, 3면 그래픽도 직선 위주의 최대한 드라이한 느낌으로 가게 되었다.
: 종희 선배와 논의해 2, 3면에 전체적인 분위기와 통일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그리고 드라이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편집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 지면 중간에 들어간 깨진 안전모의 이미지는 사실 명단을 받자마자 떠올렸다. 회사 DB자료 사진을 디자인팀 성덕환 팀장이 아주 멋지게 리터치 해주었고, 다른 그래픽을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미 받은 (산재 사망자) 명단에, 그래픽까지 시작부터 수월해서 ‘금방 작업이 끝났다’ 생각하고 몇 개 버전의 지면을 만들었는데, 국장과 편집부장이 검토하기로 한 전날까지 똑 떨어지게 맘에 드는 면이 없었다. 몇 개의 지면을 만들어 놓고 “나도 할 만큼 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의 당일 아침에 출근 전에 지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제목을 지면의 정 중앙에 세로 단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부랴부랴 출근해 회의 전까지 지면을 한 개 더 제작해 내밀었고, 그 지면이 대상을 받은 1면이 됐다. 오래 길게 고민한 지면이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고, 스치듯 떠오른 생각이 멋진 지면이 되기도 하는데, 수상한 지면은 후자에 가까웠다.
: 편집을 하면서 ‘사명감’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 지면을 편집할 때는 ‘정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이나 경향신문을 위해서가 아니고 1면을 가득 채운 그 이름들을 위해서였다.
: 무거운 기사를 다룰 땐 숙연해진다.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 생긴다. 어떻게 해야 독자에게 더 잘 읽힐지 계속 고민했다. 그게 가장 어려웠다.


-소설가 김훈은 다음날 특별기고에서 ‘나는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고 평했다. 이처럼 지면이 나간 뒤 정치권, 노동계 등 각계 반향이 컸다. 기억에 남는 후일담이 있다면.
: 신문이 발행되고 며칠간 전화와 카톡을 통해 “네가 짠 지면이냐?”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이랄까? 특히 신문이 발행되고 수일 뒤가 고 김용균 씨의 1주기였다. 대학 때부터 노동인권운동을 하던 선배가 연락이 와서 신문을 구해달라기에 “김용균씨 1주기에 사용하려나?” 생각하고 신문을 10부 정도 구했다. 신문을 들고 회사 정문에 나가보니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내게 “잊혀진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아들을 잃은 김 이사장의 ‘고맙다’는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큰 감동을 받은 날이었다. 편집기자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듯 같다
: 트위터에서도 상당히 반응이 뜨거웠다. 노동 관련 시민단체들의 토론회 등 포스터에 인용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신문이 나가고도 한참 동안 지면이 가진 생명력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 그날 지면이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모습을 보면 편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문이 사람들 마음속에 기억되길 바란다.


-편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집 철학이나 철칙이 있나.
장:거창하게 편집을 논할 만큼 실력이 있지도, 인품이 훌륭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혹은 지금 경향신문을 책임지는 데스크들만큼 데스킹 실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내가 뽑은 제목이 남에게 칼이 되어 돌아가지 않기를 늘 기원한다. 내가 말이 많고 막하는 편이라 늘 남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을 알지만, 내가 뽑는 제목만큼은 남에게 칼이 되지 않기를, 상처 주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사회에 없는 자와 약한 자들을 보듬고 위로하고 연대하는 지면을 만들고 싶다. 또 하나 조직 내에서 폐 안 끼치는 선배로 늙고 싶기도 하다.
이: 세상의 수많은 정보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점에서 뉴스 또는 신문의 본질은 편집이다. 그리고 편집기자의 일은 그중에서도 정수를 추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편집기자는 뉴스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김: 옛날에 모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연스럽되 평범하지 않고 밀도가 높은 제목.말은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렵다. 선배들 편집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평소 편집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 나만의 편집 노하우가 있다면 공개해 달라.
: 스치듯 지나가며 떠오르는 이미지, 메시지, 키워드 등을 붙잡고 지면에 녹여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느 날은 ‘이미지’, 어느 날은 ‘키워드’ 등 매 지면마다 다르지만 기사와 연관 있거나 읽으며 연상되는 것들은 지면에 녹이며 완성하는 편이다. 물론 잘못 만들어 지면이 산으로 가는 일을 종종 벌이기도 한다.
: 운이 좋게도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아 그들의 지면을 보며 늘 자극을 받고 있다. 유행어나 트렌디한 표현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편이다. 나중에 보면 촌스럽기 때문이다.
: 이미지든 텍스트든 모든 걸 가리지 않고 일단 본다. 머릿속에 기억해두면 언젠가 쓸 일이 있는 것 같다.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데스크가 말끔하게 손봐주신다.


-언론의 무게 중심이 오프라인(지면)에서 점차 온라인으로 기울고 있다. 관련해서 편집의 역할과 미래를 진단해 본다면.
: 현재 뉴스 시장이 온라인으로 기우는 부분은 맞지만, ‘기업’이란 관점으로 신문사를 보면 온라인은 여전히 수익을 못 내고 있다. 온라인 강화를 한다고 지난 수년간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지금 냉정하게 뒤돌아보면, 회사의 대부분 수입은 여전히 지면이 창출하고 있다. 일단 편집부는 회사가 ‘지속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라도 지면 제작에 당분간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편집부는 지면으로 신문이 발행되는 한 (신문사 수익이 지면에서 나오는 구조가 계속되는 동안) 점진적으로 ‘온라인화’될 것이라고 본다. 시장이 온라인으로 기운다고 위축될 것은 없다. 각 회사마다 내부 사정에 따라 온라인과 지면에 역량 투여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타 사와 비교하거나 불특정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 지면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지금 맡은 몫에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그게 향후 온라인화 하더라도 편집의 필요성 혹은 존재감을 지키는 길이다. 모바일팀(온라인팀) 근무 경험이 4년 정도 있는데, 온라인 분야에서 편집기자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너무 많아 탈이랄까? (하하하) 다만, 부서가 해체 축소되는 형태로 온라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회사 내 취재기자나 온라인 담당 동료들을 대상으로 제목 달기, 뉴스밸류 측정, 배치 같은 형태의 ‘교육하는 역할’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 편집기자들도 변화를 ‘당하기’ 전에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온라인 기사의 편집에는 여전히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영역에 편집기자의 자리를 구축하려면 기사가 오기만 기다렸다 제목을 다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콘텐츠 기획에도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 온라인에서도 어떤 재료를 요리할지, 어떤 음식을 내놓을지는 편집기자의 영역이라고 본다. 눈길을 끄는 제목은 지면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먹힌다. 디지털 시대에 편집기자가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날 것 같다.


-코로나19가 잠식한 한해였다. 경향 편집부에도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변화가 있었나. 확산세가 커졌을 때 아찔했던 경험이 있나.
: 일부 동료들이 확진자와 접촉한 사례가 있어 해당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운 좋게도 우리 회사는 큰 일은 없었다. 내부적으로 재택근무를 일부 시행하는 점 등은 코로나 시대가 가지고 온 변화다.
: 희망하는 부원들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일부 부원이 확진자 접촉 가능성으로 자가 격리에 들어간 적이 있으나 하루 이틀 만에 ‘무혐의’로 판명 났다.
: 확진자가 늘어날 때 “내일부터 신문 못 만드는거 아닌가” 수십번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은 자나 깨나 마스크가 필수다.


-편집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덧붙여 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 편집기자로 ‘목표’를 설정한 것이 없다. 낮은 연차일 때는 ‘매번 삼진당하다 어쩌다 홈런 치는 타자’보다 ‘매 타석 안타나 번트라도 치고 진루하는’ 편집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은 여전히 어렵고, 매일 매일 부끄럽다. 앞으로도 하루하루 내가 짠 면에 오자가 없길, 누군가를 공격하는 제목을 달지 않기를 기원하며 살 것 같다. 아주 사적인 꿈은 ‘그냥 폼나게 노는 것’이다. 이 꿈은 꼭 이루고 싶다.(하하하)
: 지면은 사라져도 편집기자는 남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 사람들이 잊지 않을 한 줄, 그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