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구선아 기자의 디자人 이야기


그래픽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던 무렵, 당시 재직 중이던 회사와 가까워서 자주 들르던 대형서점이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서점의 디자인 서적 코너에서 눈길을 끄는 신간들을 훑어보았다.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책들은 예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무척 인기 있는 시리즈물이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독일 베를린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용세라 디자이너의 책이 눈에 띄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베를린의 모습이 디자이너의 강렬한 그래픽과 어우러져 무척 색다르게 읽혔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용세라 디자이너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독특한 그래픽을 선보이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있는 색감과 형태는 꼭 그래피티를 닮았다.




 작업 중인 용세라 디자이너.




Q: 독일 베를린 기반의 스튜디오 ‘HORT’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독일의 그래픽디자이너 Eike Koenig가 이끄는 ‘HORT’는 제가 학부 때 무척 관심 있던 스튜디오였어요. ‘HORT’를 알기 전, 휴학하고 1년 동안 파리에서 어학코스를 위해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요. 훗날 다시 해외에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복학 후 4학년 때 해외 스튜디오를 조사하고 그들이 하는 작업이 왜 좋은지를 생각해보는 과제가 있었어요. 우연히 리서치를 하다가 ‘HORT’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HORT’에 완전히 꽂히고 말았죠. 스튜디오 자체도 멋있었지만 스튜디오에서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굉장히 좋았어요. ‘HORT’의 인턴십 프로그램(지금은 없어졌지만)에 지원을 하게 되면서 디자이너로서 독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너무나 꿈만 같았죠.


Q: 스튜디오 ‘HORT’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A: 제가 그 당시에 디자이너로서 B급 감성이 좀 있었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그 당시에는 B급 감성이 ‘B급 감성’ 그 자체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어요. 스튜디오의 수장인 Eike가 ‘동양권에서 날아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용세라’의 B급 감성을 잘 이끌어줬던 것 같아요. 자유로우면서도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려 주는 크리틱이 심금을 울렸죠. 존경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필드에서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받는 느낌이랄까요. ‘HORT’는 소속 디자이너들에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도 권장하는 문화가 있어요. 구성원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Eike가 독일 디자인계에서 굉장한 셀럽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속이라는 게 큰 메리트였어요. 그래서 저에게도 글로벌 클라이언트를 통해 다양한 작업을 많이 진행해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무척 감사한 경험이었죠.


Q: 베를린에서 만난 체코 출신 디자이너 (Pavla Zabranska)와 ‘프라울(Praoul)’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A: 사실 Pavla는 ‘HORT’에서 같이 인턴으로 선발되어서 만나게 되었던 동료인데요.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묘한 경쟁의식이 서로에게 경계심을 만들어줬던 거죠. 하지만 금방 서로가 굉장히 잘 맞는 파트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소중한 동료를 ‘HORT’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 셈이죠. Pavla와 저는 성격은 다르지만 취향이 굉장히 잘 맞아요. 그 친구는 세상 복잡한 스타일이고 저는 단순한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주로 소통할 때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편인데 Pavla는 그걸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그래서 궁합이 굉장히 잘 맞는 파트너인 것 같아요. 


Q: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작업을 꼽아본다면요?
A: 재작년에 프라울이 나이키와 함께했던 작업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한국, Pavla는 체코, 그리고 런던과 베를린에서 회의를 하면서 스케쥴에 맞춰 콤팩트하게 진행을 했던 프로젝트인데요. 예상 밖으로 작업이 막힘없이 술술 진행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선 한국과 유럽의 시차가 신기하게도 효율적으로 맞아떨어졌고요. 저희끼리 너무 신나서 ‘핑퐁’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기억이 나요. 둘 다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고 충만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Pavla와 다시 한 번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경험 중 하나였죠.


Q: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영역을 넘나드는 독특한 느낌의 그래픽이 인상 깊은데요.
A: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요.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디자이너별로 각기 다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저 또한 그런 다른 스타일을 가진 디자이너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어요. 한국에 들어올 때 저의 그래픽 스타일에 대해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무척 상업적인 작업을 원하는 디자이너인데 제 작업을 봤을 때 클라이언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클라이언트가 존재해야 작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거든요. 하지만 ‘HORT’에서 있을 당시에 제 그래픽이 생각 외로 다양한 제품과 콜라보레이션 하기에 좋은 측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실제로 한국에서 가방이나 티셔츠에 들어가는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패턴화 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그런 작업들이 생각보다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시를 위한 작업과 클라이언트를 위한 작업들을 골고루 하면서 작업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학부 때도 그래픽 스타일이 지금과 같이 또렷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네. 제가 학부 때 과 친구와 ‘사랑과 평화시장’이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했었거든요. 그 당시에 작업했던 것들이 있는데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독일에서 지내다가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만난 분들 중에 ‘사랑과 평화시장’ 시절의 작업도 굉장히 좋았다고 해주셔서 기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디자인할 때 늘 과한 스타일로 많이 작업했던 것 같아요. 저만의 색깔은 어릴 때부터 따라왔던 취향이고 ‘HORT’ 시절에 그 취향을 스타일로 확고히 발전시키려고 많은 실험을 했었죠. 그땐 정말 너무 신나서 밤새 작업하고 그랬었어요. 그 시기가 저만의 취향을 스타일로 이끌어가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작업은 주로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A: 저는 핸드드로잉으로 전부 작업을 진행합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핸드드로잉 작업도 있고요. 컴퓨터 툴을 이용한 디지털 핸드드로잉 작업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어요. 그래서 저는 입시가 끝난 이후에도 색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독일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색연필을 좋아해서 한국에서 구해서 사용하곤 했죠. 요즘은 디지털 핸드드로잉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본인만의 그래픽 색깔을 확고히 하고 싶은 디자이너에게 노하우를 전해준다면요?
A: 디자이너 본인만의 취향이 확고히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취향을 시각적으로 뽑아내는 연습이 필요하죠. 개인적으로는 레퍼런스를 절대로 보지 않기를 추천합니다. 요즘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잖아요. 찾아보지 않기가 무척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런 유혹을 참고 묵묵히 본인만의 색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연습과 실험을 한다면 충분히 개성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Q: 앞으로의 계획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저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물론 제게도 계획이 있지만, 계획은 언제까지나 계획일 뿐이니까요. 실현되고 난 후에나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열린 결말로 남겨둘게요(웃음). 독일에서는 팀을 이뤄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재 한국에서는 제가 총괄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제가 따로 독립해서 모든 그림을 그려보고 운영해가는 과정이 현재는 저에게 소중한 경험인 것 같아요. 5년 후, 10년 후를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겠죠.


서울경제 디자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