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편집기자가 말하는 편집 / 김남준 동아일보 부장


 독자와 세상사 사이에 편집자가 터 준 인식과 소통의 통로.

구멍이라는 통로가 트이면 비로소 독자에게는 각성된 몰입과 긴장된 집중이 생겨난다.



뉴스 편집은 구멍 뚫기가 아닐까. 세상을 내다보려는 독자에게 인식과 소통의 통로를 터 주는 일. 한 사람이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이 사람이 독자이고 보고 있는 대상이 세상사 즉 뉴스라고 가정하면, 이때 그 사이에 뚫린 구멍은 그에게 인지(認知)의 숨구멍이다. 구멍이 없이 그냥 온통 투명한 유리벽이라면(즉 편집 안된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보고 있다면)? 독자와 세상사 사이에는 아무런 지적 긴장감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막힌 벽에 구멍이라는 통로가 트일 때 독자에게는 비로소 각성된 몰입과 긴장된 집중이 생겨난다.
구멍이 너무 작으면(즉 편집이 너무 작은 것을 가리킨다면)? 독자는 기사의 극히 일부나 지엽적인 것을 볼 뿐이다. 구멍이 너무 크면(즉 편집의 포커싱이 너무 넓으면)? 독자는 벙벙한 제목에 실망할 것이다. 구멍이 너무 많으면(즉 편집이 초점 맞춘 게 너무 많으면)? 독자는 산만해서 집중을 못할 것이다. 구멍이 엉뚱한 곳에 있으면(즉 편집의 포커싱이 빗나가면)? 독자는 뉴스의 핵심을 놓치고 헤맬 것이다. 그렇다고 구멍이 맨날 같은 곳에만 있으면? 독자는 한 곳만 보라는 편집에 이내 식상할 것이다. 편집자는 구멍을 유효적절한 크기로 이곳저곳 바꿔가며 뚫어줘야 독자가 질리지 않고 이슈를 다각적,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주제 발표에서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몰입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구멍뚫기 방법에 대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는 곧 독자가 좁은 자기자신으로부터 ‘탈주’해 넓은 세계로 ‘확장’해나가는 것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아울러 편집자 역시 그 구멍을 통해 새로운 소통 가능성의 세계를 내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독자도 편집자도 많이 갑갑할 상황이라 더 탈주와 확장이 절실할 수도 있겠다. 나라는 한 편집자에게서 탈주해 수많은 독자와 편집동료들로 나아가는 확장, 틀에 박힌 교과서적 편집에서 탈주해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나아가는 확장을 타진해보려 한다.
시, 소설, 영화, 음악, 미술, 광고, 마술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들과 신문편집이 만나는 콜라보 교차점, 영감과 힌트를 얻는 지점에 대해 살펴보겠다. 저는 답을 드릴 역량은 안되기에 수많은 물음표들을 동료 여러분께 쓰나미처럼 쏟아내려 한다. 함께 고민해보면 독자와 핫라인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편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아 물음표들을 나눠보려 한다. 회원 여러분의 보석같은 편집 지면들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작업을 못 했을 것이다. 저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하는 동료분들의 지면에 감사하며 크로스오버 놀이를 해볼까 한다.
각 소통매체별로 시사점을 주는 문구(가령 시 챕터에서는 시인이나 문학평론가의 말)를 먼저 제시하고, 그와 일맥상통하는 편집 지면을 찾아 짝짓기해보겠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새빨간 질문’이라는 형식으로, 도전해볼 만한 ‘미지의 편집’을 화두 삼아 던져 봤다. ‘이런 편집 시도해보면 어떨까’ 편집동료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다.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로 유명했던 감독 장 뤽 고다르는 “어디서 가져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예술매체들에서 가져온 싱싱한 식재료들을 지면 편집 적재적소에 잘 버무린다면 향취와 풍미가 넘치는 퓨전요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편집자는 끝없이 신메뉴를 개발해나가는 셰프여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것들의 질서를 바꿔 보면?
시   “시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이미지이다. 시인은 익숙한 이미지들을 끊고 잇고 뒤집는 동안 사물들의 밀도와 깊이가 바뀌며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몽상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들고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인에게는 둔중한 것에서 날카로운 것을 발견하고 단단한 것에서 무른 것을 발견하며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질서를 바꾸는 힘이 있다.”(김인환)
▶지면1: 월드컵 개막을 안내하는 기사의 제목인데, 스케일 크게도 천체 운행 궤도의 질서를 바꿔놓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축구공이라는 새로운 중심을 따라 도는 낯선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가?


마스크에 가려진 삶의 안부를 물어봤나요?
“시인의 공들인 작업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황현산)
▶지면2: 수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는 입 모양과 얼굴 표정을 보고 의사 소통을 하던 청각장애인들이 마스크 착용 시대에 애로가 커졌다는 기사이다. 독자들이 잘 모르던,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울림 깊은 제목 한 줄로 여기에 확 끌어와 대면시킨다.


세상의 손잡이를 찾아내, 정신까지 뒤집어라?
“여럿이 달라붙어도 꿈쩍 않는 피아노를 인부 혼자서 번쩍 들어올리듯이, 시인은 대상의 의미를 단번에 낚아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겨진 급소와 보이지 않는 손잡이를 찾아내 대상을 뒤집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기술은 이미 정신이다. 달리 말해 시 정신은 대상을 뒤집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뒤집는다.”(이성복)
▶지면3: “거리두기 지켜라”라는 압박과 “거리 안지키면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부정적, 위협적 전망이 쏟아지던 때, 이 편집자는 앞뒤를 뒤집었다. 2m를 지켰더니 자유를 얻었다고. 부정적 정신을 긍정의 정신으로 상쾌하게 전복시켰다.
함부로 진술할 수 없는 진실이 얼마나 많을까?
“문학은 당위를 주장하기보다는 불가피를 고뇌해야 한다.”(신형철)
▶지면4: 안현수가 러시아에 귀화해 빅토르 안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황이었다. 너의 조국은 한국이냐 러시아냐고 캐묻는 당위론자들에게 빅토르 안의 불가피를 고뇌한 편집자는 대답한다. 그의 조국은 얼음판이라고. 그는 그저 얼음판을 달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뜨거움을 식히거나 밍밍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상태에 있는 나를 통과하는 것이지. 어떤 식당에 가서 쇠고기 국을 시키면, 국이 다 식어서 나와. 그 국을 담기 위해서는 그릇 자체를 덥혀놔야 하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뜨겁게 있는 거야. 내가 차가움으로써 그 국의 뜨거움을 빼앗는다든지 밍밍하게 만들지 않는 것. 시인의 할 일은 그런 거라.”(이성복)
▶지면5: 모창가수 너훈아의 빈소에서 재발견한 치열하고 따뜻했던 그의 삶. 이 더운 기사를 식히거나 밍밍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편집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편집자의 뜨거운 그릇이 한 진국 인간의 삶을 더욱 뜨끈하게 덥혀 놓았다.


새빨간 질문: 비판하지 않고도 반성하게 하는 제목, 칼침 아닌 침술 같은 제목은?
“이성복 시의 비유들은 세계라는 허구의 살에 정확히 칼을 찔러 넣는다. 아니, 이 비유는 그의 비유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그것은 칼처럼 찌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침처럼 찾아 들어간다. 그는 아무것도 비판하지 않는데 우리는 반성하게 된다.”(신형철)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비판하는 언론들은 오늘도 날선 언어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때론 지나쳐 언어폭력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칼침 같은 제목들도 보인다. 피 흘리게 하지 않으며 성찰하게 하는, 침술 같은 제목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통념과 속단이라는 先해석의 커튼을 찢었나?
영화   삶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선(先)해석의 커튼을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다.(밀란 쿤데라)
▶지면6: 중년여성들의 미투 폭로에 일부 삐딱한 시선이 있었다. 지금껏 뭐하다가 왜 이제야 터뜨리냐는…. 편집자는 그런 속단이라는 先해석의 커튼을 찢었다. 너무 오래 고통받다가 참다참다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써 봤냐고 물으며.


제목 한 줄로 소설을 쓸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헤밍웨이에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훌륭한 소설가라면 적은 단어로 사람들을 울릴 수 있어야 하오." 그리곤 한가지 내기를 제안했다. "만약 열 단어 내외를 가지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면 당신이 이기는 거요.” 헤밍웨이는 흔쾌히 내기를 수락했고 단 여섯 단어만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한 번도 안 신은 아기 신발 팝니다)
▶지면7: 예리한 묘사로 캐릭터를 구축하는 단편소설처럼 두 정치인의 ‘결정적 순간’을 매의 눈으로 포착해냈다.
▶지면8: 바캉스에 맞춰 다이어트 하느라 빈혈이 속출한다는 스토리를 ‘비키니 빈혈’이라는 단 두 단어의 뼈대만으로 구성해냈다.


단 두 글자로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생텍쥐페리)
▶지면9: 클레이코트에 약한 테니스 황제 페데러의 패배의 눈물을 단 두 글자로 표현해냈다. 말의 살과 뼈를 다 발라내고 척추만 남긴 두 글자에 소설적 서사까지 압축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빨간 질문: 코로나 마음병을 앓는 ‘감염과 격리의 新인류’를 진단하고 치유할 제목은?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예요.”(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 시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코로나 환자다. 이 ‘뉴 노멀 인류’의 맥을 정확히 짚고 시원히 치유해줄 편집을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제목에 반전을 심으면 독자는 감전된다?
영화   “가장 뛰어난 영화 시나리오는 모든 장면 장면이 반전인 작품이다.”(로버트 맥키)
▶지면10: 독일기업에 인수된 배달의 민족이 점차 독점 폐해를 낳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반전의 연속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제목에 반전을 심으면 고압전류가 흐르는 플롯이 될 수 있다.


독자 관성을 배신하는 심리게임 해본다면?
“관객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고 기대하지만 저는 거기에 도전합니다.”(알프레드 히치콕)
▶지면11: 빙하가 녹자 바다가 드러날 거라는 독자의 예상에 뒤통수를 쳤다. 얼음 밑에 묻혀 있던 천연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다툼을 ‘인간의 욕심’으로 은유해 반전극을 만들어냈다.


존재들간의 새 관계를 엮어내는 몽타주?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실들을 변형하거나 발명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실들 사이에, 그리고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들을 엮는 것이다.”(로베르 브레송)
▶지면12: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사진과 눈을 맞는 젊은 연인 사진을 위 아래로 배치해, 원래 관계 없던 두 쌍의 커플을 새로운 관계로 엮어냈다. 마치 영화에서 A쇼트와 B쇼트를 결합해 AB가 아닌 전혀 새로운 C를 만들어내는 몽타주 기법처럼 새 메시지를 창출했다.
▶지면13: 이미지가 아닌 제목으로도 효과적 몽타주를 구성할 수 있다. ‘국회 필리버스터 신기록’과 ‘경제 마이너스 신기록’은 따로 있을 땐 서로 연관이 없겠지만, 한 자리에 모아 충돌시킴으로써 ‘경제는 우는데 국회는 싸움만’이라는 선명한 새 의미를 만들어냈다.


빛과 그림자를 충돌시키는 미장센을 빚으면?
“배우의 얼굴 같은 건 없습니다. 빛이 닿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죠. 빛과 그림자만 있을 뿐.”(알프레드 히치콕)
▶지면14: 해외 연출진이 본 한국 뮤지컬의 명과 암을 다룬 기사. 무대 조명의 빛과 어둠 경계선을 따라 ‘명’ ‘암’ 부제목들의 내용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공간 위에 시간을 자유자재로 줄였다 늘렸다?
“원하는 대로 시간을 압축하거나 늘려서 구성할 수 있죠. 그게 영화가 하는 일입니다.”(알프레드 히치콕)
▶지면15: 산악인 엄홍길의 얼굴 사진을 눕혀 산을 만들고 등반인생의 세월이 능선 따라 유장하게 흐르도록 제목을 배치했다.
▶지면16: 코로나 백신 개발까지의 험난한 시간을, 미로라는 공간 위에서 한눈에 보이도록 원샷에 압축해냈다.


새빨간 질문: (제목을) 들려주지 않거나 (비주얼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채워넣게 하는 비움의 편집은 어떨까?
“로베르 브레송은 소리가 들리면 영상을 삭제하고, 영상이 보이면 소리를 삭제한다. 영화 ‘잔다르크의 재판’에서 화형 당하는 장면에선 흰 연기가 화면을 하얗게 만든다. 그 화면 뒤로 우리가 볼 수 없는 튀는 불꽃의 격렬한 소리가 이어진다. 브레송은 비움의 미학으로 음향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영상을 채우게 하는 영상예술을 개척한다. 넣지 않고도 사물들을 넣을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지명혁)
▶제목이나 비주얼 중 하나를 비워둠으로써 독자의 해석 참여를 유도해보는 건 어떨까. 특히 제목이라는 언어로 규정짓는 순간 훼손될 위험이 큰 진실이 있는 경우라면 ‘진실의 보호구역’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을 생략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