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 임윤규의 편집단상 -


 



내 중학생 시절
아침마다 들은 말이 있었으니
오라이다
집채 만한 버스를 움직이는 12번버스 차장 누나의 우렁찬 목소리
“오라이”


우리집이 종점 직전 정거장 근처에 있었던 관계로
공부는 그렇다치고 학교 가는 건 1등 하라는 어머니의 하교가 있었던 관계로
나는 거의 첫차를 탔다


차장 누나는 언제부턴가 내 이름을 알았다
“오늘도 나의 첫손님 윤규 왕자님”
그러곤
내 등짝을 우렁차게 쳐주며
“오라이”


오라이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고
오라이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마쳤다


오라이를 그리 외치던 차장 누나는
오라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가라는 뜻이야, 일본말이야”


오라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우리 선생님도 몰랐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처럼
꼬박꼬박 전교 1등을 먹는
고등학교 다니는 옆집 누나는 알았다
“all right의 일본식 발음이야”


오라이의 뜻을 알게 된 이후
“오늘도 나의 첫손님 윤규 왕자님, 오라이”라는 말이
기분 좋을 땐 축하같았고
기분 꿀꿀할 땐 응원같았다


그리고
강산이 몇 번 바뀐 지금

제목을 출발시키고
지면을 출발시키는 편집부 차장이다


오라이
올 롸잇
이상무
다 좋아요
다 괜찮아요


출근할 때
퇴근할 때
그 시절 버스 차장 누나가 외쳤던 것처럼
가끔씩
임 차장은 맘 속으로 외친다
“나의 왕자님같은 제목들, 오늘도 오라이”


중앙일보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