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중앙일보 이혁찬 종합에디터

 





편집은 취재와 독자 중매 서는 것
종이, 페이스북 등 어떤 플랫폼이건
기사 잘 읽히게 만드는 역할해야


중앙 24면으로 감면은 가짜뉴스
디자이너와 협업 더 강화할 것







“중앙일보는 변화한다. 편집기자들의 앞길을 막는 쪽이 아닌 살리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중앙일보 이혁찬<사진> 종합에디터와 인터뷰 며칠 전 일명 ‘중앙 찌라시’가 돌았다. 내용은 이랬다. “중앙일보 다음 달부터 온라인 강화 위해 지면 24면만 찍는다. 편집 인력들은 당장 남아돌게 된다고…” 각사 편집기자들이 충분히 술렁일만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마주보자마자 사실인지 물었다.  이혁찬 에디터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중앙일보가 24면으로 줄인다는 소문이 돈다.
면을 줄이는 건 맞지만 종합섹션은 아니다. 지금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인터뷰 1주일 뒤중앙일보는 디지털 혁신안을 발표했다. 종합과 경제섹션 감면은 없었다. 대신 차별화된 지면을 만들기 위해 ‘스텝 라이터’ 10명과 디자이너 4~5명을 추가로 배치했다. 디지털 편집 강화를 위해 2~3명의 편집기자는 디지털로 파견했다.)


−내심 걱정하는 기자들이 많았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편집부 내부에서 또 다른 혁신을 꾀하고 있다고 들었다. 모듈편집을 시도하는 중이라던데 어떤 편집인지 설명해 달라.
모듈편집은 퍼즐, 마치 테트리스처럼 어떻게 조합해도 하나의 면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세로에도 단 개념이 있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신문들은 5단, 6단 가로로 딱딱 구분이 되는데 세로도 가상의 단이 있다 생각하고 판을 짜는 거다. 가디언이 대표적이다. 톱이 있고 박스가 있다면 가디언은 기사가 흐르는 높이가 항상 똑같다. 안 보이는 선이 12개쯤 된다. 이렇게 되면 기사의 양도 미리 맞출 수 있고 편집기자들이 쓸데없이 기사를 자르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 시간에 제목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편집자의 역할을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하고 콘텐츠를 출고하는 출고부서도 많은 협조를 해줘야한다. 
그래서 지금 중앙이 하는 모듈편집은 조금 다른 형태다.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협업이다. 편집자가 제목을 달고 디자이너가 레이아웃을 만든다. 일반 신문사 상황에서 편집자는 사실 2개면 이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모듈편집을 하면 레이아웃을 덜고 제목에 집중할 수 있다. 중앙선데이가 예전부터 해왔던 작업의 연장이다.


−그러나 모듈편집은 레이아웃 창의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궁금하다.
가디언을 보면 알겠지만 지루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사진을 다이나믹하게 찍고 그래픽을 다양화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시원하게 쓴다거나 해서 모듈편집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또한 모듈편집이라고 레이아웃 A, B, C 이렇게만 있는 게 아니다. 가디언엔 템플릿 전문 디자이너가 있다. 하루 종일 매일 레이아웃만 짜고 그 중에서 편집자들이 고를 수 있게 돕는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아는 거다. 우리도 하면 된다. 디자이너가 레이아웃으로 다양성을 주고 편집자는 디자이너와 소통하면서 지면에 포인트를 주는 거다. 역할이 달라지는 셈이다. 중앙일보는 강남통신 같은 지면을 전담해서 만드는 디자인 데스크와 일반 면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만드는 그래픽 데스크들이 따로 있다. 템플릿을 만들게 된다면 디자인 데스크에서 담당하게 될 거다.


−디자이너 인력이 어떻게 되나
디자인 데스크는 15명 정도(편집부에서 직접 짜지 않는 섹션을 짜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래픽 데스크도 신문과 디지털 그래픽을 다 포함해서 15명(신문에는 7명) 정도다.


−편집기자들은 총 몇 명인가
21명이다. 부록 섹션은 대부분 외주 제작이다.


−중앙일보의 구체적인 제작과정이 궁금해진다. 중앙일보의 하루는 어떤가.
편집회의가 오전 10시에 한 번, 오후 2시에 한 번 있다. 그리고 종합면 편집자들만 모여서 하는  J팀 회의가 오후 3시에 있다. 메뉴가 나오면 각 편집자들이 오늘 자신들의 면을 어떻게 만들 건지 이야기를 하는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시간이다.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서로의 지면 이야기를 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지면에 반영한다. 오후 6시에 초판을 막으면 대장회의를 한다. 신문을 처음 찍는 건 오후 9시(40판), 그 다음엔 오후 11시(43판) 이렇게 두 번 찍는다. 밤 11시 이후 상황은 종쇄(새벽 2시 30분) 야근자가 책임진다. 사건이 발생하면 돌판을 만든다. 야근자는 다음날 쉰다.


−개인적으로 헌재 판결문을 기사 대신 실은 3월 11일자 1면 <헌법, 대통령을 파면했다> 지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떤 식으로 기획된 건가. 편집기자의 아이디어였나.
여럿이 함께 고민해서 만든 지면이다. 사실 이 지면은 만들면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 지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해온 사진 중심의 편집 측면에서 봤을 땐 밋밋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판결문을 1면에 실은 이유는 탄핵에 대한 어떤 가치 판단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야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판결문 자체가 제목의 논리적인 근거가 됐다. 디자이너가 서체와 크기를 고르고 편집자가 제목과 사진을 고민했다. 판결문에만 집중한 안, 탄핵소추안 가결 때처럼 사진을 크게 키운 안 등 시안을 여러 개 만들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취재부와도 거듭 회의를 했다. 그때 최종에 올랐던 3가지 안은 아직도 편집국에 붙어있다.


−시안을 여러 개 만들었다니 그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해 달라.
좀 더 추가 설명을 하자면 이 지면은 일단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12월 10일자 <국민이 탄핵했다, 정치가 응답하라>의 세트 지면이라고 할 수 있다. 탄핵안이 가결 될 땐 사실 일주일 밖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마침 좋은 사진이 있었고, 태극기 집회 인원수가 많지 않을 때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콘셉트를 잡을 수 있었다. 시안을 여러 개 만들어 그 중에 하나를 쓰고, 남은 것 중 하나를 탄핵이 되면 쓰자고 결정을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변했다. 태극기 집회가 커지고 국론이 분열 됐다. 탄핵을 단순하게 대통령이 그만두는 것으로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메시지가 변해야하고 담아야할 게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판을 다 뒤집고 처음부터 다시 고민했다.
탄핵 판결 날짜를 가늠해보고 2주일 전부터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모여서 이야기했다. 하루는 스탠딩 회의를 하는데 누군가 판결문을 바닥에 다 깔아보자고 하더라. 상상이 안 됐다.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일 아닌가. 근데 일단 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번 탄핵의 중심엔 중앙일보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jtbc 태블릿 PC 보도가 있었다. 중앙일보에서 편집기자를 하다 뉴스룸으로 간 선배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내부에서 평가는 어떤가.
편집기자 출신들의 이동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4명이 jtbc로 갔는데 뉴스룸, 5시 정치부회의 등에서 뉴스PD로 활약 중이다. 편집기자들이 신문·디지털·TV를 막론하고 오가며 역량을 보여주는 건 좋은 것 같다. 사실 뉴스 소비에서 신문의 비중이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만 보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후배들은 방송이나 디지털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할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자신에게 가장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문과 계속 함께 하는 일부 ‘순장조’도 필요하겠지만(웃음). 우리가 해온 편집은 어디서든 통한다고 본다. 


−그래도 독자들이 신문을 떠나 디지털, TV로 가는 건 신문쟁이로 살아온 우리들 입장에선 씁쓸한 일이다. 
독자가 종이신문을 떠난다고 뉴스를 떠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신문에만 국한시키면 암울하다. 그걸 깨고 뉴스에 맞추면 길이 넓어진다. 편집기자가 누구인가 본질을 생각해 봐라. 편집기자는 취재기자가 쓴 기사와 독자들 사이에서 중매서는 사람이다. 앞으로 편집기자의 역할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시장에서 중앙일보 기사가 가장 잘 읽히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오히려 신문을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넘어왔듯, 5년 후 10년 후 또 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후배들은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또 다른 편집을 할 거다. 지금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편집기자들은 그냥 제목 다는 기자에 머물 것인지, 뉴스를 판단하고 기획·가공하는 뉴스PD가 될 것인지 기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젊은 후배들이 어떤 시도를 하고 무엇을 경험하면 좋을까
신생 미디어들이 뉴스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복스, 버즈피드를 살펴보면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뉴스를 다룬다. 기사에 트위터 내용이 들어가 있다거나 한다. 그런 감각을 키우면 지면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이 좋은 편집기자라고 생각하나.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편집기자는 아까도 말했듯 중매쟁이다. 취재부서 가서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와야 제목도 한 발 더 들어간 제목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지내보니까 그렇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과로 하는 직업이니 스스로를 잃기가 쉽다. 20~30년을 똑같은 사람을 보고 하루 종일 회사에 묶여있는 것도 스트레스일 수 있다. 나와 만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물론 나도 잘 못하고 있긴 하다.


−‘이혁찬의 편집’에 대해 말해 달라.
운명. 사실 대학 다닐 때까진 이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신문사 준비하다 우연찮게 만난 직업인데 잘 만난 것 같다. 운명처럼.



인터뷰·정리=머니투데이 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