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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훈의 제목을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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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기사가 그대를 환장하게 할 땐 ‘팩트·맥락 반반, 현장감 많이’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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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7-04-26 14: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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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28

    <3> 생동감

     

     


    2017년 2월 12일 오전 7시55분 일본 북쪽 주일미군의 사리키 레이더 기지. 졸린 눈으로 화면을 주시하던 탐지병이 하품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이게 뭐지?" 모니터에 빨간 점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북한 쪽에서 동해로 향해가는 점 주위로 수직 수평의 디지털 데이터들이 점등했다. “미사일이다.”
    그 순간 미국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간단한 정상회담을 마친 후 휘황찬란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양국 정상은 밥맛 떨어지는 보고를 받았고, 먹은 음식이 소화되기도 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전 세계 언론이 브레이킹 뉴스를 내보내는 가운데 서울 광화문의 신문사 편집국도 다음날 지면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1면은 스트레이트로 갔다. <북, 트럼프 취임 3주만에 미사일 도발>이란 제목이 정해졌다. 문제는 상세 보도와 해설이 들어가는 3면이었다. 헤드라인을 놓고 국제부와 정치부, 편집부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담당 편집자가 내놓은 제목은 이랬다. <"김정은이 쐈답니다" 보고받은 트럼프, 한밤 긴급회견>.
    "트럼프가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기사에 없는데 제목을 저렇게 달면 안 되지."
    "한밤에 회견을 열 정도면 긴박했겠죠. 북한의 도발이 예고된 상황에서 그 분위기가 제목에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맞아. 어차피 차별화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생동감이라도 나야지."
    "만찬 중이었으니 보좌관이 구두로 간단히 전했겠죠. 그래도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김정은'이란 실명을 넣었다는 건 너무 나간 듯해요."
    "아니 '그놈이 쐈답니다' 한 것도 아니고, 그랬다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되겠지만, 구두 보고를 한 건 사실일 테니 백악관에서 항의할 일도 아니잖아. 제목에서 이 정도의 융통성은 있어야지"
    "그건 그래요. ‘북 미사일 발사 보고받은 트럼프’라고 하면 너무 뻔하잖아요."
    "그럼 '김정은'을 빼고, 대신 밤 10시30분이란 구체적 시간을 넣는 걸로 합시다."
    "제목에서 김정은과 트럼프를 대비시켜야 맛이 나죠. 빼면 안 됩니다."
    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신입 편집자가 있었다. 무슨 기사인가 싶어 읽어봤다. 1면의 내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실도 없고 눈길을 끌 만한 제목거리도 없었다. 신입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종합면 지면에서 기사에 없는 문장을 제목으로 써도 될까. 제목에서 편집자의 창의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팩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는 괜찮을까. 팩트를 훼손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무미건조한 콘텐츠는 무미건조하게 독자에게 전달돼야 하는가. 2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다음날 아침, 그 신문 3면을 펼친 독자들은 <"쐈답니다" 보고받은 트럼프, 밤10시30분 긴급회견>이란 제목을 마주했다.


    생동감 있는 제목, 기사의 맥락에 숨어있다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매체의 보도 경쟁 속에서 신문이 신문다울 수 있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속보에선 승산이 없고 매일 단독기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 사람은 다 아는 기사에 뻔한 제목을 붙여 다음 날 아침에 배달하는 것도 민망하다. 돌파구가 없을까. 심층 분석기사로 승부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날그날 지면 메우기도 힘든 상황에선 머나먼 얘기다. 그러니 당장은 편집으로 차별화하는 방법밖엔 없어 보인다.
    '편집의 차별화'란 얘기가 나올 때 가장 난감한 사람들이 정치 외교 관련 지면의 편집자들이지 싶다. 리드에서 핵심을 짚어주고 시작하는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고 저기선 저런 일이 있고 누가 이러쿵 했으며 다른 누구는 저러쿵 했는데 모 대학의 아무개 교수는 뭐라고 평가했다'는 식의 기사를 마감 5분 전에 출고해 편집자를 환장하게 한다. 팩트의 나열 속에서 뭐가 뉴스인지 순발력 있게 잡아낸다면 좋은 편집자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제목이 완성되진 않는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를 가미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제목이 펄떡펄떡 살아 뛰기도 하고 힘없이 죽어버리기도 한다. '플러스 알파'란 말에 머리가 지끈해 오는 편집자들이 있겠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시길. 수많은 알파 중 비교적 간단한 알파가 있으니 바로 '현장감'이다.
    최근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지면을 살펴보자. 여기서도 트럼프가 등장한다. 4월초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제제를 돕는다면 중국에 좋을 것이다"고 했단다. '무역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언급했단다. 트럼프의 인터뷰를 계기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략을 분석하는, 어찌 보면 복잡해 보이는 이 기사의 제목은 간단명료하다.<‘北문제 나설 경우 중국의 이득은?’ 묻자… 트럼프 “무역이다”>. 인터뷰 형식에 기사의 핵심을 녹여 현장감을 살렸다. FT 기자와 트럼프 사이에 제목 그대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지는 않았다. 다만 FT가 질문한 내용과 트럼프가 “무역”이란 단어를 쓴 것을 바탕으로 편집자가 헤드라인을 묶었다. 다른 매체에선 <트럼프 "중국이 북핵 도와주면 무역 인센티브 줄 것">이란 제목을 썼다.
    비슷한 예가 4월 13일자 지면에도 보인다. <“미국이 北 때릴 것 같은가”…한국에 군사동향 캐묻는 중국>이란 제목이다. 방한한 우다웨이가 공식적인 자리서 ‘때리다’는 표현을 쓰진 않았다. 기자들 앞에서 ‘캐묻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외교부 관리들끼리 비공식적으로 말이 오갔다는 것이고, 기사의 맥락을 파악한 편집자는 그들이 사석에서 사용했을 법한 언어를 제목에 넣었다. 다소 거친 표현엔 중국 측의 다급한 심정도 묻어 있다. 그래도 눈치 없이 “우다웨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편집국에 있다면 그냥 두자. 설명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디테일 하나가 생동감을 좌우한다.
    조윤선 전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처음으로 시인했을 때 이를 다룬 많은 신문 중에 단연 눈에 띄는 지면이 있었다. <“블랙리스트 있나” 17번 묻자, 조윤선 한숨 쉬며 “있었다”>는 제목이다. 다른 신문들이 ‘버티던’ ‘마지못해’ ‘그제야’란 표현을 쓸 때 이 신문은 ‘한숨 쉬며’라고 썼다. 결정적인 동사다. TV로 생중계 됐고 거의 모든 방송 뉴스에서 재탕 삼탕 보여줬던 ‘조윤선의 한숨’이 왜 신문에선 오직 한 곳에서만 제목으로 나왔을까. 취재기자가 빠트린 걸까, 편집자가 놓친 걸까. 기사에서는 빠졌더라도 제목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잡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차별화된 편집, 현장감 있고 생동감 넘치는 제목은 편집자의 불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기사가 왜 이 모양이지?’ ‘이 제목, 2% 부족해’란 생각이 들면 팩트의 디테일을 다시 뒤진다. 그래도 뭔가 안 나오면 숨은 맥락이 있나 없나 찾고, 그것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현장감이라도 살린다. 완벽한 제목이 나오진 않지만 경험상 처음보다는 나아진다. 그렇게 나온 스타일이 일명 ‘팩트·맥락 반반, 현장감 많이’다.
    기사를 읽다 짜증이 날 때는 이 스타일을 한번 시도해 보자. 때론 맥락을 내세운 상상력이 팩트를 벗어나서 욕을 먹을지라도 밋밋해서 읽히지도 못하고 죽는 지면보다는 낫다. 시행착오를 겪고 그 경험이 쌓이다 보면 넘지 않아야 할 팩트의 선도 보이고 기사 행간에 숨은 제목들도 보일 것이다. (난 아직 안 보이지만 그러리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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