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그래도, 여름휴가 다녀왔습니다


풍랑주의보로 인해 해수욕장에서도 쫓겨나 숙소 앞마당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다 우비 입고 있는데, 너만 수영복 입고 있는 거야? 괴리감 안 들어?”
“응. 서로 거리 두고 있어 ㅋㅋㅋ”
제주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을 단톡에 올리자 친구들이 기겁했다. 올 여름 휴가는 ‘멍 때리는 여행’을 주제로 수영복, 책 한 권만 들고 떠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수영복을 입고 책 읽는 힙한 분위기를 꿈꿨는데ㅠㅠ 날씨가 내 편이 아니었다. 우산도 막지 못하는 비바람이 여행 내내 강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가방 속에 처박힌 수영복이 아까워서 가방 맨 위에 넣어 놓았다가 비가 잦아들면, 후다닥 갈아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머리 속에는 ‘언제 바닷물 속에 들어가나’ 한 가지 생각뿐. 비바람 덕에 잡생각이 일절 떠오르지 않았다. 시커먼 하늘 아래 분홍 우비를 입은 자와 빨간 수영복을 입은 자,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요즘 휴대폰 앨범을 자주 뒤적거린다. 발리, 라오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지난 휴가 사진을 보며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 혹자는 오늘을 해외여행의 종말시대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해외여행의 기회가 다시 오긴 할까? 더 열심히 쏘다닐걸’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휴가의 완성은 아니지 않나. 여행 때 중요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유명 맛집 탐방이지만 이번 제주 여행 땐 핫스폿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코로나로 고통 받는 상인들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고 싶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지만, 휴가 내내 비가 내렸지만, 계획했던 해수욕을 완벽히 즐기지 못했지만, 올 여름휴가는 꽤 즐겁고 충분했다.


한국일보 윤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