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구선아 기자의 디자人 이야기



‘양장점’의 양희재 디자이너와 장수영 디자이너 그리고 만복이.


서체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


디자인은 마법이다. 마법의 힘을 빌리는 순간, 신문 지면은 상상 못한 생기를 얻어 편집자들을 감탄케 하고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디자인의 마법은 신문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책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모든 곳에 뻗어 있다. 신문 디자이너 서울경제 구선아 기자가 바깥 세상의 마법 같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찾아 나섰다. ‘핫’하고 궁금했던 디자이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재를 시작한다.

우리는 콘텐츠를 시각적으로 읽어내고 표현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제작한 서체의 도움을 받는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묻어있거나 감성이 들어간 특유의 서체들은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읽는(reading) 행위보다 보는(looking) 행위에 빠지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양장점’은 서체를 제작하는 소규모의 서체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최근 ‘펜바탕’ 시리즈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는 장수영, 양희재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장수영 디자이너는 한글을 다룬다. 강아지를 기르는 양희재 디자이너는 라틴 알파벳을 디자인한다. 둘은 작업실을 같이 쓰지 않고, 생활 습관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두 서체 디자이너를 만나보기로 했다.


Q: ‘양장점’이 시작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장: 저는 원래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서체 디자이너로 근무했고요. 독립 후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펜바탕 Regular’의 로만체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양희재 디자이너가(이하 양)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양: 그래픽 디자인을 하면서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어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다 보니 제가 주로 만든 결과물들이 활자를 위주로 한 그래픽이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를 고를 때 서체디자인이 특화되어 있던 곳을 가게 되었죠. 스위스 로잔에서 공부했습니다. 제가 장수영 디자이너(이하 장) 대학 후배예요. 학교 사람들끼리는 장이 서체 디자인을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마침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한국에서 무얼 할지 거취를 정해야 하는 시점이었죠. 서로 친하지 않은데 제가 먼저 연락했어요. 원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는데(웃음). 마침 장도 저를 필요로 했고요.
장: 양에게 한국 오지 말고 거기서 어떻게든 버티라고 했어요. 여기 힘들다고(웃음). 양이 로잔예술대 석사과정에서 진행했던 작업물들을 보고 저에겐 없는 장점들을 발견하면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서로의 니즈와 타이밍이 맞았던 거죠.


Q: 왜 이름이 ‘양장점’이죠?
: 저희 이름이 양희재, 장수영이거든요. 각자의 성을 따서 대학교 친구들이 별 의미 없이 붙여준 이름인데, ‘양’과 ‘장’이 만든 서체를 판매하는 ‘상점’이라는 저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인 것 같아 큰 고민 없이 사용하게 되었어요.


Q: 시각디자인과 출신 디자이너들 중에서 서체디자인 분야로 진출하는 디자이너들이 흔치 않은데요.
: 한국에서 서체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라틴 알파벳 디자이너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전망이 밝지 않을까 생각해요. 평소 작업물에서 개인적인 관심 분야가 드러나는 법인데 그게 저는 서체 쪽이었거든요. 결국 관심 분야로 진출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저는 학부 시절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면서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봤는데, 대부분은 몸이 힘들거나 재능이 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다가 타이포그래피가 디자인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tw’라는 학교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소모임 활동을 통해 글자를 그리는 작업에 차츰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4학년 때 서체 회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인턴 과제 겸 졸업전시 작업으로 ‘격동고딕‘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쪽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죠.


Q: ‘펜 시리즈’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 2014년도에 ‘방일영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한글 글꼴 창작지원금 수혜자 공모’에 지원하면서 ‘펜바탕 Regular’를 처음 기획하게 되었어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족 구성(공통 디자인 서체의 집합을 말한다. 보통 Weight의 개념에 따라 Light·Medium·Bold 등으로 나눠지며, 스타일에 따른 기준으로는 Condensed·Extended 등이 있다)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양한 필기도구를 기반으로 한 ‘펜바탕’ 2종과 ‘펜돋움’ 2종의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에요. 사실 ‘펜바탕’이 제 개인적인 취향과 맞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하나의 도전 같은 것이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스타일의 서체 작업을 맡아서 스스로 성장해 보고 싶었어요.


Q: ‘펜바탕’체가 잘 어울리는 매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디에 쓰였을 때 가장 인상 깊으셨는지?
: 개인적으로 ‘펜바탕’은 본문용 서체임에도 또박또박 쓴듯한 펜 글씨의 개성이 드러나는 감성적인 서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말하는듯한 성격의 작업물에 쓰인 ‘펜바탕’이 저에게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하우위아’라는 독립출판사를 운영하시는 임소라 작가님이 ‘서울, 9개의 선’이라는 책에 ‘펜바탕 Regular’를 사용하셨고요. 최근 개봉했던 ‘윤희에게’라는 영화에도 크레디트로 ‘펜바탕 Regular, Semibold’가 등장합니다. 두 작품 다 앞서 말씀드린 관점에서 콘텐츠와 서체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제가 이 서체를 만들면서 상상했던 것들이 시각적으로 구체화 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Q: 글자를 그리는 레터링에 비해 그 과정을 바탕으로 직접 타입 세트를 제작한다는 것은 들이는 품과 깊이가 매우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주어진 몇 글자를 디자인하는 레터링과는 달리 완성형 한글 서체 한 벌은 최대 1만1,172자에 해당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경험이 필요합니다.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리고 서체가 쓰이는 매체에 따라 고려해야 할 부분 역시 상당히 많죠. 그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만든 서체가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는 폰트 기술, 마케팅, 유통, CS 등 제반 사항이 많기 때문에 개인이 활동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그래도 작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Q:종이 신문에 디자이너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서체)디자이너로서 신문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면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요?
: 요즘은 종이 신문이 본래의 기능보다는 다른 매체들에 인용 혹은 재생산의 대상이 되는, 일종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온라인 보도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인쇄 매체에서는 이러한 상징성을 좀 더 드러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성 종이 신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변화가 충분히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1200분의 이름을 나열한 경향신문 1면 기사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느껴집니다. 이를 위해 시각적인 부분에서 디자이너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많은 신문사들이 본문용 서체로 사용하고 있는 ‘신문명조’ 계열의 인상을 탈피한 서체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좀 더 욕심부린다면 다양한 표정의 헤드라인 서체 시리즈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Q: 최근 서체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서체 시장의 미래는 어떨까요?
: 최근에 다양한 시각적 결과물들이 대중들의 시각에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한 결과들의 반작용으로 비교적 덜 자극적인 성향의 서체 분야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제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성격이어서 이러한 분석이 정확하게 맞는다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앞으로 서체 시장은 점점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이고요. 대중들에게도 서체디자인 분야에 대한 인식이 선명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매체가 다양해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서체 관련 콘텐츠들의 노출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관련 전시나 강의도 많이 생겼고, 기업들이 배포하는 무료 서체도 많이 늘었고요. 그만큼 서체에 관심 갖는 사람도, 서체를 디자인하려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보다 시장이 더 커져서 다양한 작업물들로 풍성해졌으면 좋겠네요.
서울경제 디자인팀 기자